"규제 지뢰밭에서 홀대받느니…" 해외로 내몰리는 韓기업들
[투자환경 개선이 먼저다]②美리쇼어링 지원으로 제조업 부활
정부, 글로벌 기업 대하듯 자국 기업 투자 유치에도 공들여야
- 최명용 기자
(서울=뉴스1) 최명용 기자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오스틴 반도체 공장을 철수하고 수원 기흥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정부는 이전 비용의 20%를 내고 법인세를 절반으로 깎아주기로 했다. 지원금은 최대 1조원에 달한다. 5만명의 고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가상 시나리오다. 정부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다면 특정기업에 특혜를 줬다며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날 일이다. 특혜시비를 가리기 위해 청문회도 열릴 것이다. 감사기관들은 관련 공무원들의 친인척 계좌까지 들춰내며 난리법석을 떨게 뻔하다.
눈을 돌려 미국을 보자. 미국 정부는 수년째 이같은 일을 하고 있다. 중국이나 인도, 멕시코로 간 자국 기업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온갖 혜택을 제공한다. 공장을 지으면 '현금'을 주고, 법인세도 깎아준다. 고용에 필요한 교육비도 대준다. 땅도 주고 세금도 깎아주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특혜시비는 일어나지 않는다.
제조업을 통해 미국 경제의 부활을 추진하는 이른바 '리쇼어링 지원 제도'다. 미국 기업뿐 아니라 전세계 어느 기업이든 미국에 투자만 하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미국 경제가 부활하고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풀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오바마 정부의 과감한 개혁이 가져온 결과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서 미국이 다시 제조업 강국으로 부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겉으로는 소비촉진과 경제활성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실상은 자국 기업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 정부 정책은 의도와 달리 시장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는 탓이다. 유치단까지 꾸려서 해외기업의 국내유치에 발벗고 나서면서 정작 자국 기업이 국내 투자는 가로막고 있다.
연구용 화학물 1컵을 수입해도 신고해야 하고, 화학물질 한컵을 실수로 흘려도 신고해야 하는 화학물규제를 비롯해 성장률은 답보상태인데 통상임금 확대로 인건비는 10% 이상 늘려야 하는 등의 노동리스크까지. 여기에 사내유보금까지 과세하겠다고 나서는 정부를 믿고 투자할 기업은 없다는 게 재계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박근혜 2기 내각은 경제 활성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의 투자없이는 경제활성화는 쉽지 않다. 이미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뛰고 있는 대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려면 압박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없애고 투자하기 좋은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해외기업들에게 특혜가 아닌 혜택을 주는 것처럼 자국 기업에게도 토지를 무상 임대해주고 인센티브를 주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투자가 늘면 부가가치도 늘고, 자연스럽게 세금도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조성된다. 투자와 경제활성화를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 정부, 美자동차 산업에 620억달러 지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12년초 연두교서에 앞서 '미국의 존립을 위한 청사진'이란 정책을 발표했다. 세제 개혁을 통한 제조업 세제 혜택 확대, 해외 기업과 공정한 경쟁을 위한 무역관행 확립, 국내 인프라 확충 사업을 통한 수요 진작 등이 주요 골자다. 인프라 확충은 재정 지출을 늘리는 방안이고, 무역관행 개선은 해외 기업과 경쟁을 위한 각종 비관세 장벽을 세우는 일이다. 눈여겨 볼 것은 제조업 육성을 위한 세제지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무부와 공동작성한 세제 개편안을 통해 제조업 부문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키로 했다. 법인세 상한선은 35%에서 28%로 낮추고 제조업체의 경우 25%의 특별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해외로 나가는 기업들을 국내로 되돌리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해외로 나가는 기업에 대해선 세금 공제를 철폐하는 한편 국내로 복귀하는 기업에겐 세제 혜택을 늘렸다. 수익의 20%에 대해 세금 공제 혜택을 제공했다. 3년간 매년 20억달러(약 2조원)의 융자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리쇼어링'은 오프쇼어링(해외로 진출한다는 의미)의 반대말로 국내로 돌아오는 유턴 기업을 말한다.
고용효과가 큰 기업에 대해선 직접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이후 파산 위기에 빠진 자동차 산업에 대해선 620억달러(약 64조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정부는 노사 문제에도 직접 관여해 노동유연성을 개선하는 노력도 벌였다. 2009년 이후 2년간 자동차 산업이 창출한 신규 일자리는 11만5000개에 달했다.
세제혜택뿐 아니라 고용의 조건으로 추가 지원금을 제공하는 패키지 인센티브도 제시했다. 자동차 부품회사인 내비스타인터내셔널은 앨라배마 주 웨스턴콜버트 카운티로 공장을 옮기면서 최대 2500만달러의 세금 혜택을 받기로 했다. 공장 신축시 767만달러 규모의 세금 혜택을 받았으나 고용에 따른 추가 인센티브를 받아 총 2500만달러의 혜택을 받았다. 900명 채용시 767만달러, 1350명엔 1534달러, 1500명 채용엔 1901만달러, 1800명 채용엔 2300만달러를 제시했다. 200만달러는 고용과 상관없이 지원된 초기 지원금이다.
◇제조업 '퍼주기 정책'덕에 美기업 100여개 'U턴'
미국 정부의 제조업 육성 정책은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제조업 고용이 늘고 제조업체의 미국 복귀가 가시화됐다.
코트라에 따르면 친환경 플라스틱 용기 생산업체인 울트라그린패키징은 2008년 중국에서 미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겼다. 인건비 및 운송비 지적재산권 보호 등이 주요 원인이지만 정부의 지원 덕에 비용을 줄일 수 있었던 게 결정타였다.
중국에 최대 규모의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던 캐터필러는 2010년 텍사스주에 총 1억달러를 투자해 굴삭기 생산시설을 증설했다. GE 가전부문은 미국 내 생산 비중을 지난해 55%에서 올해말까지 75%로 늘릴 계획이다. 인텔은 애리조나주 공장에 65억달러를 투자키로 했으며 포드도 멕시코 트럭 공장을 오하이오주로 옮겼다.
미국 정부의 리쇼어링 제도 덕에 100여개 기업들이 중국 멕시코 일본 인도 등에서 미국으로 돌아왔다. 보스톤컨설팅그룹은 2015년까지 전자·기계·가구·금속 플라스틱 기계 등 7개 산업에서 2000억달러 규모의 생산기지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옮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조업 시설 확대에 따라 고용도 늘고 있다. 미 노동통계국(BLS)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2월 당시 1147만명이었던 미국 내 제조업 종사자수는 2012년 12월 1199만명으로 증가했다.
◇"자국 기업도 해외기업 유치하는 것처럼 지원해야"
제조업 육성을 위한 국가적 지원은 미국뿐 아니다. 중국 정부는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까지 나서 경쟁적으로 한국 기업 유치에 나섰다. 현대자동차는 충칭 지역에 제4공장을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인근 지방정부가 경쟁적으로 유치에 나서 조건을 고르고 있다. LG화학은 중국 난징시로부터 파격적인 조건을 받고 배터리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주요 대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신증설하는 동안 국내 투자는 거의 없다. 새만금간척지를 비롯해 주요 지방자치단체들이 기업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없다.
재계 관계자는 "해외 기업 유치에만 공을 들일 게 아니라 한국 기업의 국내 투자도 해외 기업 유치와 같은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특혜 시비에 지레 겁먹을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투자 유치에 나서야 국내 경제활성화가 앞당겨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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