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걸어 잠그는 美·EU…전기차 국내 생산→수출 전략 '흔들'
현지 생산 압박 가중, 국내 공장 가동률 관리 과제 부상
시장 규모·중국산 공세에 내수 전환 한계…'한국판 IRA' 필요
- 박기범 기자
(서울=뉴스1) 박기범 기자 =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까지 '역내 생산' 정책을 강화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전략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국내 투자를 통해 전기차 생산 기반을 구축하고 이를 수출하려는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 전개되고 있어서다.
미국의 경우 전기차 세제 지원을 축소하면서 시장 규모가 크게 줄었고 관세 장벽을 통해 수입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을 크게 떨어트렸다. EU 역시 일정 수준 이상 역내에서 생산해야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EU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요건으로 '역내 생산 비율 70% 이상' 기준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내 생산과 부품 조달 비중을 높여 중국산 전기차 유입을 견제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구체적인 시행 여부와 시점은 확정되지 않았다.
실제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산 브랜드는 약진하고 있다. 중국산 브랜드의 점유율은 2019년 0.5% 수준에서 지난해 11월 기준 12.8%까지 확대됐다. EU는 지난 2024년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5.3%의 '관세 폭탄'을 부과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역내 생산 비율'이라는 새로운 규제를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번 조치가 현대차(005380)·기아(000270)의 국내 전기차 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수요 둔화 속에서도 유럽 공략을 강화해 왔다. 그 결과 2014년 유럽 판매 시작 이후 지난해 말까지 누적 91만 5996대를 판매하며 올해 100만 대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일부 모델을 체코·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생산하지만, 아이오닉 5·6·9과 EV3·5·9, PV5 등 주력 모델 상당수를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한다. 만약 현지 생산 차량에만 보조금이 지급될 경우 현대차·기아의 주요 전기차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국내 생산 물량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대차는 이미 지난해 미국 전기차 수요 감소로 국내 전기차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전기차 수출은 전년 대비 86.8% 감소했다. 이에 따라 아이오닉 5와 코나 일렉트릭을 생산하는 울산 1공장 12라인은 지난해 총 12차례 가동을 중단하는 부침을 겪었다.
현대차는 올해부터 연 20만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 '울산 EV'를 가동한다. 기아는 광명·화성 공장에 전기차 전용 '이보(EVO) 플랜트'를 구축하며 전기차 생산 기반을 확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 물량이 감소한다면 공장 가동에 큰 부담이 생길 것이란 지적이다.
수출 부진을 내수로 만회하기도 쉽지 않다. 국내 전기차 시장 규모는 22만 대 수준에 불과한 데다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산의 공세가 거세다. 국내 중국산 전기차 비중은 2021년 1%에서 지난해 34%로 폭증했지만, 국산 전기차 점유율은 2022년 75%에서 지난해 57.2%로 떨어졌다.
업계 안팎에서는 '한국판 IRA'로 불리는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내에서 최종 생산한 제품에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내수 시장에서 국내 전기차 판매를 촉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제한적일 것이란 시선이 적지 않다.
또한 정부는 7월 세법 개정안을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제도 설계와 법 개정 절차 등을 고려하면 단기간 내 효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도 함께 나온다.
전문가들은 결국 가격 경쟁력과 생산 효율 개선이 핵심 과제라고 지적한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고정비 부담이 큰 구조에서 보조금 없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며 "현지 생산 압박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국내 생산 기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고용 유발효과가 크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판 IRA'가 특정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유지하는 정책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pkb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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