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기차 줄취소"…K-배터리 타격 현실로, 가격 경쟁력에 사활

포드 차세대 전기 상용밴 개발 취소…LG엔솔 9.6조 계약 해지
美 보조금 중단 여파…LFP·미드니켈 등 '가성비' 배터리 시급

영국 던턴의 포드 기술센터에서 포드의 전기 상용 밴 'E-트랜짓'(E-transit)이 주행하는 모습(자료사진). 2023.01.13.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여파가 'K-배터리'로 불똥이 튀고 있다.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개발과 판매 계획을 연기하면서 배터리 공장 가동이 연기되거나 공급 계약이 해지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K-배터리 입장에서는 배터리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춰 전기차가 기존 내연기관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돕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됐다.

19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최근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포드와 체결했던 9조 6000억 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납품 계약을 해지했다. 2027년 1월부터 2032년 12월까지 75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를 포드에 공급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은 상호 합의 끝에 백지화됐다.

해지 금액은 LG에너지솔루션의 2023년 연결 기준 연간 매출액의 28%에 해당한다. 해당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에서 생산된 니켈·코발트·망간(NCM) 파우치형 배터리로, 포드의 유럽 내 전기 상용 밴 '이-트랜짓'(E-Transit) 후속 모델에 탑재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109GWh 규모 양사의 전체 계약 중 남은 34GWh 물량(2026~2030년)은 유지된다.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가 계약 규모를 매우 축소한 건 최근 포드의 전동화 전략이 순수 전기차(BEV) 중심에서 내연기관을 남겨 놓은 하이브리드차(HEV) 중심으로 대폭 수정됐기 때문이다.

앞서 포드 미국 본사는 지난 15일(현지시각) 홈페이지를 통해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차세대 전기 픽업트럭(T3)과 차세대 전기 상용 밴 개발 계획을 모두 취소한다고 밝혔다. 포드가 차세대 상용 전기 밴 개발을 포기함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의 관련 납품 물량도 증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포드는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의 생산도 중단한다. 대신 포드는 F-150 라이트닝의 후속 모델로 하이브리드차의 일종인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를 개발하기로 했다. EREV는 전기 힘으로 주행하지만, 가솔린을 발전기로 이용해 배터리를 충전하기 때문에 충전 인프라 문제로부터 자유롭고 주행거리도 1000㎞까지 늘어난다. 배터리 용량은 순수 전기차 대비 30% 작아 차량 가격도 크게 낮출 수 있다.

미국 미시간주(州) 디어본에 위치한 포드 트럭공장에서 포드의 전기 픽업트럭인 'F-150 라이트닝'이 생산되는 모습(자료사진). 2024.04.11.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美 보조금 중단에 전기차 판매량 30%↓…SK온·포드, 합작사 청산하고 각자도생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철회가 포드의 전략 수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제정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개정, 지난 9월 30일을 끝으로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100만 원)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급 정책을 7년 앞당겨 조기 중단했다. 이는 전기차 판매 감소로 이어졌다.

시장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 10월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30% 감소한 7만 4835대에 그쳤다. 특히 지난 11월 F-150 라이트닝 미국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72% 급감한 1006대에 그쳤다.

SK온도 포드의 전기차 생산 감축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앞서 SK온은 포드와의 합작사인 블루오벌SK의 미국 내 생산 시설을 분리해 각각 독립적으로 소유·운영하기로 했다. SK온은 2022년 포드와 함께 블루오벌SK를 설립하고, NCM 배터리를 생산하는 테네시 공장과 켄터키 공장을 공동 운영해 왔다.

관계 당국의 승인 절차가 마무리되는 내년 1분기 말 SK온이 테네시 공장을, 포드가 켄터키 공장을 각각 소유·운영하는 형태로 바뀐다. SK온으로선 조지아 공장에 이어 미국 내 두 번째 독자 배터리 공장을 갖게 됐지만, 줄어든 포드 물량만큼 다른 고객사로부터 신규 물량을 추가로 유치해야 한다.

당분간 미국 전기차 시장은 침체 국면을 이어갈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S&P글로벌에 따르면 올해 중반 기준 미국 신차 시장에서 순수 전기차(BEV)가 차지하는 비중은 7.5%로 여기에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를 포함해도 10%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올해 말에는 10%에서 9%로 하락할 것으로 S&P글로벌은 내다봤다.

콕스 오토모티브는 관련 보고서에서 "세액 공제를 통한 전기차 보조금 지급은 미국 전기차 보급의 핵심 촉매제였다"며 "미국 전기차 시장이 자체 기반만으로 성장할 만큼 성숙했는지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평가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배터리 가격을 낮추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의 35~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 배터리 업계 최초로 지난해 7월 전기차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수주를 프랑스 르노그룹으로부터 따내 내년부터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LFP는 NCM 대비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CATL 등 중국 배터리 업계가 석권한 시장이다.

삼성SDI(006400)는 2028년 양산을 목표로 전기차용 LFP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으며, 현재 고객사와 관련 수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SK온은 기존 NCM 배터리에서 니켈 함량을 낮춰 가격 경쟁력을 갖춘 고전압 미드니켈 배터리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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