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버틴 현대차·기아, 올해도 글로벌 톱3…피지컬 AI로 도약 예고
[제조업 르네상스]⑤1~9월 판매량 548만대…4년 연속 3위 수성 예약
관세협상 타결에도 '안주할 새 없다'…車 제조·상품 경쟁력 제고에 투자
- 김성식 기자, 이동희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이동희 기자 = 국내 대표 완성차 기업 현대자동차(005380)·기아(000270)가 올해 미국발 관세 폭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판매량 톱3를 4년 연속 굳힐 것이 확실시된다. 강력한 기초 체력을 기반으로 현지 판매 가격을 동결한 전략이 주효했다. 급변하는 시장을 확인한 현대차·기아는 '피지컬(Physical·물리적) 인공지능(AI)'에 약 57조 원을 투자해 제조 및 상품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30일 뉴스1이 올해 1~9월 글로벌 완성차 그룹별 판매 실적을 분석한 결과 현대차·기아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한 548만 대로 집계됐다. 이는 △도요타그룹(835만 대) △폭스바겐그룹(660만 대)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양이다. 4위 GM그룹(455만 대)과의 격차는 100만 대에 육박하기 때문에 양사는 2022년 첫 글로벌 완성차 톱3 진입 이후 올해까지 4년 연속 3위를 수성할 전망이다.
호실적을 이끈 건 역설적으로 미국 시장에 있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3분기 미국에서 전년 동기 대비 12.0% 증가한 48만 175대를 판매해 역대 3분기 사상 최다 판매고를 올렸다. 업체별로는 현대차(제네시스 포함)가 전년 동기 대비 12.7% 증가한 26만 538대, 기아는 11.1% 늘어난 21만 9637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제네시스만 별도로 집계할 경우 6.7% 증가한 2만 1469대였다.
이러한 판매 성과는 지난 4월부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율이 0%에서 25%로 인상된 이후에도 현대차·기아가 미국 내 판매 가격을 동결하는 전략을 썼기 때문이다. 관세를 고스란히 회사가 부담하면서 양사의 관세 손실 규모는 3분기에만 3조 550억 원에 달했다. 이로 인해 3분기 양사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8.6% 증가한 75조 4075억 원으로 역대 3분기 최대치를 기록했으나, 영업이익은 37.4% 감소한 3조 9995억 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관세를 이유로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실천해 미국 내 입지가 더욱 확고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관세 비용을 오롯이 부담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회사 재정이 튼튼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양사의 연간 영업이익은 2021년부터 매년 사상 최고를 경신해 지난해 26조 9066억 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반면 경영난을 겪고 있던 폭스바겐그룹, 스텔란티스그룹 등은 관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거나 미국 수출 물량을 생산하던 멕시코·캐나다 공장 가동을 줄이는 바람에 올해 미국 판매량이 감소했다.
현대차·기아가 자체 체력으로 버티는 사이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고 지난 14일 합의문(팩트시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부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율은 25%에서 15%로 하향 조정됐다. 종전 무관세와 비교하면 관세 부담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통상 현대차·기아의 1대당 마진율은 19%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차량을 수출해도 손해를 보는 구조에선 벗어나는 것이다.
현대차·기아는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게 바로 '피지컬 AI'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8월 50억 달러(약 7조 3000억 원)를 투입해 연 3만 대가량의 로봇을 미국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시기와 장소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폿'과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등을 생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는 피지컬 AI 생태계를 구축한다. 현대차그룹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서 125조 2000억 원을 투자한다. 이 가운데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중심 차(SDV), 전동화, 로보틱스, 수소 등 미래 신사업 분야에 약 40%인 50조 5000억 원을 쏟기로 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자율주행, 자율제조, 로보틱스 등 피지컬 AI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다품종 로봇 생산이 가능한 로봇 완성품 제조 및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피지컬 AI를 위해서는 뿌리인 데이터를 관리하는 데이터센터가 필수다. 현대차그룹의 투자액 상당수는 데이터센터 설립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로봇, 자율주행차 등에서 생성되는 AI 학습 데이터 저장이 가능한 AI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한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말 엔비디아로부터 블랙웰 GPU 5만장을 구매한다고 밝혔다. 업계는 이 금액이 30억 달러(약 4조 4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데이터를 학습한 로봇의 검증을 위한 '현대차그룹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 센터'도 설립한다. 이를 통해 로봇의 실제 산업현장 투입 전 신뢰성을 최종 검증해 피지컬 AI 생태계의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목표다. 로봇 공장도 마련한다. 피지컬 AI를 활용해 고객 맞춤형 로봇 기술을 바탕으로 '로봇 완성품 제조 및 파운드리 공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구체적인 장소를 물색 중이다. 현대차그룹 자체 로봇뿐 아니라 제조 노하우가 부족한 중소기업 제품을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의 피지컬 AI가 현실화하면 생산 공정의 자동화와 자동차의 소프트웨어화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피지컬 AI란 소프트웨어 형태인 생성형 AI 모델에 말 그대로 물리적인 하드웨어를 결합한 것이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인터넷에서 수집된 텍스트, 이미지 데이터로 훈련됐다면, 피지컬 AI는 하드웨어를 통해 현실 세계의 3D 데이터를 학습하고 이를 기반으로 스스로 판단해 움직인다. 이때 하드웨어는 기계와 로봇에서부터 자동차, 선박, 항공기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자동차 제조 공정에 피지컬 AI가 접목되면 숙련된 근로자에 의존하지 않고도 로봇이 스스로 판단해 자동차를 조립하고 검수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공장 라인별로 한 가지 차종만 생산하던 컨베이어벨트 생산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차종을 동시에 생산하는 셀(Cell·작업장) 생산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공장 내 기계와 로봇이 AI로 지능화된 만큼 차종별 맞춤형 공정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은 물론 시장 변화에 맞춰 신속하게 생산 차종을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피지컬 AI는 그간 기계 중심이었던 자동차를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차량 내외부의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학습한 생성형 AI가 무선 업데이트(OTA)를 통해 안전·편의 기능을 지속해서 개선하고,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주행 경험을 제공하는 식이다. 이는 곧 차량의 성능과 사용자 만족도가 엔진 마력이나 연비 같은 하드웨어 스펙이 아닌, AI 알고리즘 고도화와 데이터 활용 능력에 따라 결정됨을 의미한다.
피지컬 AI는 운전자의 관리·감독이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 시대를 앞당길 '게임 체인저'이기도 하다. 이재관 한국자동차연구원 자율주행기술연구소장은 "실제 도심에서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해지려면 보행자가 도로로 뛰쳐나오는 것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엣지 케이스)에도 차량이 스스로 판단해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금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은 정해진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룰-베이스' 방식이라 규칙을 벗어난 엣지 케이스 대응에는 한계가 있어 결정적인 순간에는 운전자가 개입해 차량을 제어해야 했지만, 피지컬 AI는 속도를 멈출지, 피해 갈지 등 판단과 행동 모두 알아서 한다"고 설명했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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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인공지능(AI) 시대와 미중 무역 갈등이 한국 제조업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다. AI 구현을 위한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특수를 누리고 있다. 또 막대한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소형모듈원자로(SMR)와 변압기, 전선 등을 생산하는 기업들도 슈퍼사이클(초호황)에 진입했다. 특히 미국이 중국산 제품을 공급망에서 제외하면서 기술력과 신뢰성이 보장된 한국 제조업으로 특수가 쏠리고 있다. 디지털의 정점인 AI가 ‘아날로그’ 제조업 부흥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조선, 전기·전력기기, 방산,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우리나라의 핵심 제조업의 강점을 집중 조명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