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러-우 종전…현대차, 러시아 공장 '바이백' 고민되네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재매입 시한 연말 도래…현지 언론도 관심
러시아 점유율 20% 넘겼던 현대차그룹…바이백 이후 구매 가능성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 엘멘도르프-리처드슨 합동 기지에서 열린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한 후 활주로 연단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8.15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박기범 기자 = 현대자동차(005380)그룹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다시 사들일 수 있는 '바이백' 옵션의 시한이 연말로 다가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이 여전히 불투명하고, 최근 외국 기업의 러시아 자산 회수 가능성이 더 낮아지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면서 현대차의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러시아 재진출 여부를 놓고 내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3년 12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상징적 금액인 약 1만 루블(약 14만 원)에 현지 업체에 매각하며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했다.

당시 매각 계약에는 2년 안에 공장을 다시 살 수 있는 '바이백' 조항이 포함됐다. 이 옵션을 실행하려면 올해 12월 안에 재매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현대차의 재진출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잠시 탄력을 받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조기 종식'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국제사회의 종전 기대감이 커졌다. 현대차 역시 러시아 내 상표권을 재등록한 데 이어 일부 차량·기술 관련 상표를 신규 출원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현지 사업 재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전 조치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최근 종전 분위기가 다시 불투명해지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일본 마쓰다 사례는 업계의 경계심을 키우고 있다.

마쓰다는 2022년 전쟁 이후 러시아에서 철수하며 솔레르스와의 블라디보스토크 합작회사 지분 50%를 1유로에 넘기고, 3년 내 재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으나 결국 기한 내 행사하지 못했다. 현지 언론은 이를 두고 러시아 정부가 외국 기업의 자산 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외국 기업의 복귀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여전히 현대차에 중요한 시장이란 평가다. 철수 이전 현대차·기아는 러시아 승용차 시장에서 2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했고, 현지 생산 능력과 브랜드 인지도 모두 높았다. 비록 현재 시장이 중국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됐지만, 과거 성과를 감안하면 현대차가 여전히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현대차그룹은 미국의 15% 관세 부과, 유럽의 환경 규제 강화 등으로 글로벌 생산 전략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여건을 고려할 때 러시아 공장 회수는 중장기적으로 생산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대안으로도 검토될 수 있다. 실제로 현대차는 최근 인도와 중국 등지에서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며 시장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일부 업계에서는 바이백 기한이 지나더라도 현대차가 다른 조건으로 재매입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러시아 정부 또한 전후 경제 재건 과정에서 외국 기업 유치가 필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현대차의 복귀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산업계에서도 현대차의 복귀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있다"며 "현지 정부 역시 제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외국기업 유치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 언론들은 현대차의 바이백 실행 여부를 문의하는 등 현지에서도 현대차의 향후 행보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다만 마쓰다 사례를 감안하면, 기한을 넘긴 뒤 재매입이 가능하더라도 조건이 훨씬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시장을 떠난 기업과 헐값에 자산을 매각한 기업은 똑같이 싼 가격에 재매입하도록 허용되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pkb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