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손 거쳐간 자동차만 200만대…기술은 공유해야 돼"

[명장을 만나다-황희재] 현대자동차 도장작업 23년…"하루 30분 노력이 중요"

황희재 현대자동차 기술지사는 도장분야 국가품질명장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있는 20명의 대한민국 '국가품질명장' 중 유일한 도장(塗裝)분야 근무자다. 지난 20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그를 만났다. 2015.03.2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울산=뉴스1) 주성호 기자 = "기계가 아무리 자동화되고 좋아졌다고 해도 사람 손을 못따라옵니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만난 황희재(52·도장4부) 기술지사는 낮 기온이 영상 17도에 불과한데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새벽 4시에 출근해 오후 3시에 퇴근하는 주간근무조 마지막날, 황 지사는 주말 출근을 앞두고 잠시 짬을 내 인터뷰에 응했다. 수십대의 출퇴근 버스와 차들이 오가는 주야간 근무조 출퇴근 시간 진풍경이 펼쳐진 가운데 조용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황희재 기술지사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있는 20명의 대한민국 '국가품질명장' 중 유일한 도장(塗裝) 분야 근무자다. 국가품질명장은 한국표준협회가 산업현장 근로자 중 품질향상을 위해 분임조활동, 제안활동 등 품질경영 활동에 헌신한 10년 이상 경력 모범 근로자를 지칭한다. 그는 도장분야 품질명장이면서 기술사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도장 기술명장에 도전했다가 아쉽게 낙방한 뒤 올해 재도전을 앞두고 있다.

이제는 품질명장으로서 관리자 위치에 오른 황 지사이지만 1991년 입사 당시에는 원액으로 공급되는 도료를 배합하고 직접 도장하는 수작업을 담당했다. 도장부에서 다루는 도료 원액은 모두가 발화성 인화물질이다. 황 지사는 10여년 이상 근무하면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위험물 기능장도 보유하고 있다. 또 그는 고압가스로 작동되는 도료 분사용 스프레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가스 기능장이기도 하다.

그는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학교에서 배운 기술에 그닥 관심이 없었다"면서 "화려한 색을 입히고 물감으로 색칠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 도장쪽 일을 해보고 싶었던 찰나 1991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주저없이 도장인의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황 지사는 지금 도장은 완성차 업체 제조공정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어렵고 힘든 분야지만, 도장은 자동차 공정의 가장 핵심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다양한 자동차 색상(자료=현대자동차) ⓒ News1

도장은 말그대로 고철덩어리인 자동차에 다양한 색을 입혀 생명과 개성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황 지사는 "소비자들이 차를 살때 직접 엔진룸을 열어보고 실린더가 멀쩡한지 변속기가 괜찮은지를 살펴보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반문한 뒤 "대부분이 자신이 선호하는 컬러를 보고 자동차를 구매한다"고 말했다.

입사 24년차인 황 지사에게 '명장'이라는 칭호는 노력의 산물이다. 1시간에 67대의 차량이 지나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24년째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온 황 지사의 손을 거쳐간 자동차는 200만대가 넘는다. 단순 도장 업무 외에 지금도 품질 향상과 불량 공정 개선에 앞장서고 있는 황 지사는 매년 1억원~2억원 가량의 원료·공정비를 절감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스테디셀러'인 아반떼, 쏘나타 등 중소형 차량 공정의 경우 도정 작업 대부분이 자동화됐다. 황 지사가 근무하는 4공장은 스타렉스, 맥스크루즈 등 중대형 차량을 생산한다. 기계가 1차적으로 스프레이를 통해 컬러를 입힌다 하더라도 반드시 사람의 눈과 손을 거쳐야 한다. 타이어 근처나 도어 틈새같은 빈곳은 본인이 직접 처리한다고 했다.

황 지사는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입사 초기엔 2시간 일하고 10분 쉬고 그러다가 점심시간에 1시간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하루 30분씩 남들보다 덜 쉬면서 불량이 발생한 공정이나 도료 배합 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하루 30분이 1년, 2년 지나면 별 것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10년에서 15년 이상이 되면 남들은 따라올 수 없는 큰 경쟁력이 된다"면서 "그렇게 20년 이상 남들보다 30분만 더 투자하다 보니 어느새 명장의 자리에도 오르게 됐다"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선적부두 ⓒ News1

황희재 기술지사는 젊은 세대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좋은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비정규직은 늘어날텐데 이제는 누가 어떤 기술을 갖고 얼마나 잘하느냐를 기준으로 대우받는 사회"라고 말했다. 이어 "자신만의 기술 없이 단순 학벌 앞세워 회사 들어와서 3년 못버틴 신입사원들을 수두룩하게 봤다"면서 "이제 학벌이 아무 의미없어진 시대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올해 고3 수험생이 된 막내아들에게도 전문대학에 입학해 기술을 배울 것을 권했다. "건설·조리·패션·미용 등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가 될 수 있는 기술을 가지라"고 강조한 황 지사는 "노력한 사람들의 최고 수준의 기술은 기계도 따라올 수 없다"고 말했다.

황 지사는 최근 현대자동차의 내수 점유율이 하락하는 것을 두고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아 반면교사(反面敎師)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내에 외제차가 늘어나는 현상이 분명 우리 회사에는 악재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안일한 근무태도를 혁신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이같은 위기를 통해 근로자들의 의식이 바뀌고 품질을 개선하면서 현대차의 질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황 지사는 자신이 가진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매년 열리는 전국 단위 '품질분임조 경진대회'에서 도장분야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현대차의 협력 중소기업에서 기술자문 역할도 병행 중이다. 또 울산의 에너지분야 마이스터고인 울산에너지고등학교에서 미래의 명장을 꿈꾸는 학생들의 멘토이기도 하다.

"자기가 갖고 있는 기술을 죽을 때까지 혼자만 알고 있다면 진정한 기술자나 명장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한 황 지사는 끝으로 "어린 학생부터 협력사, 신입사원 등 내 기술과 지식이 필요한 모두와 공유하는 것이 기업과 지역사회 성장의 밑바탕이며 나아가 국가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신념을 밝혔다.

sho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