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자사주 소각 때마다 '10%룰' 발목…"높아진 지분율 예외 둬야"
'자사주 소각' 계획 부재에 실망매물 출회
우선주 중심 소각 가능성도…'10%룰' 완화 필요성 거론
- 한유주 기자
(서울=뉴스1) 한유주 기자 = 삼성전자(005930)가 올해만 최대 110조 원 규모의 주주환원을 약속했지만 주가는 급락했다. SK하이닉스(000660)에 맞먹는 '자사주 소각' 계획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의 실망 매물이 쏟아지면서다.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자사주 소각을 뒤로 미룬 배경으로 '금산분리' 딜레마를 꼽는다. AI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 해묵은 규제가 기업의 밸류업 노력까지 주저하게 만들었다는 평이 나온다.
31일 증권가에 따르면 지난주(24~28일) 삼성전자 주가는 25만 7000원으로 마감하며 전주(21일·28만 1500원) 대비 8.7% 하락했다.
지난 21일 장 마감 이후 삼성전자가 올해 주주환원 계획을 발표한 이후 투심이 차게 식은 결과다.
삼성전자는 올해 잔여 주주환원 재원 90조~110조 원 가운데 30조 원가량을 올 3분기 현금배당 방식으로 환원키로 했다.
역대급 주주 환원 규모에도 주가가 급락한 건 나머지 재원 60조~80조 원에 대해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은 점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내년 1월 이사회를 거쳐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의 방식으로 환원하겠다는 입장을 덧붙이긴 했지만 시장에서 기대하는 자사주 매입, 소각 계획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한 점이 주가를 끌어내렸다. 40조 원 규모의 역대급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발표해 곧바로 실행한 SK하이닉스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삼성전자 주가는 실적 대비 여전히 저평가 구간에 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주당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자사주 매입·소각이 주주들에게 더 유리하다 본다. 주주 입장에서 배당은 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자사주 매입소각은 그렇지 않다.
실망 매물은 외국인 투자자들한테서 대거 나왔다. 발표 이후 첫 거래일인 24일 외국인 투자자는 3거래일 만에 순매도로 돌아서 1조 8000억 원을 던졌다. 기관 역시 합세하며 하루 만에 주가가 9% 가까이 빠졌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많은 투자자는 현재와 같이 저평가된 밸류에이션에서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주주가치 제고에 더 효과적이라고 선호할 것으로 판단한다"는 평을 내기도 했다.
개인투자자는 같은 날 3조 원 가까운 저가매수세를 보이긴 했지만, 종목토론방에선 삼성전자의 '전략적 모호성'을 비판하는 글이 잇따랐다.
삼성전자가 자사주 소각을 뒤로 미룬 배경으로는 '금산분리'라는 규제 원칙이 꼽힌다.
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뜻하는 '금산분리'는 보험사나 증권사 같은 대기업 금융계열사가 고객 예치금을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을 키우기 위해 사금고처럼 사용하는 걸 막기 위해 마련됐다. 기업(산업자본)에 부실이 났을 때 금융계열사까지 함께 흔들리며, 고객 자산에 피해를 줄 가능성도 예방하자는 취지다.
근거법인 금산법에서는 이를 '10%룰'로 규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금융계열사인 삼성생명(032830)과 삼성화재(000810)는 비금융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총 10%까지만 보유할 수 있어, 현재 각각 8.51%, 1.49% 선에서 상한을 맞추고 있다.
만약 삼성전자가 보통주를 소각하면 발행 주식 수가 줄면서 삼성생명·화재의 지분율이 자동으로 상승, 10% 상한을 넘게 된다. 규제를 맞추려면 지분율 상승분만큼 삼성전자 주식을 대량 처분해야 한다. 이 경우 오버행(잠재적인 대량 매도 물량) 이슈가 동반되기 때문에, 자사주 소각에도 주가 상승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보험계열사 주식 처분 문제는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문제와도 엮여있어 셈법이 복잡할 것이란 진단이다.
시점의 문제일 뿐, 삼성전자는 앞선 발표대로 내년 1월 이후 자사주 매입·소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배당소득 분리과세 요건과 향후 다운사이클에서 총 배당 금액의 전년 대비 10% 증가 요건 충족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배당 성향을 25% 수준에서 관리하고 초과 환원 재원을 자사주 매입 소각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며 "배당 성향 25%를 가정할 경우 주주 환원 목적의 자사주 매입 소각 재원은 2026년 약 38조원, 2027년 약 74조원으로 추정한다"고 분석했다.
'10%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우선주 위주의 소각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있다.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어 금융계열사의 삼성전자 지분율 규제에서 자유롭다. 삼성생명, 삼성화재가 삼성전자 지분을 팔지 않고도 자사주 소각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보통주 소각 시 발생하는 금산법 문제를 고려하면 삼성전자 자사주 소각 재원에서 우선주의 자사주 매입 소각량이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최소 10조~20조 원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시행할 것으로 가정하며 이 재원이 우선주에 더 많이 배분될 경우 금융계열사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 부담을 줄여주는 동시에 우선주 괴리율 축소의 명분도 생긴다"고 말했다.
주주환원 관점에서도 우선주 위주의 소각이 효과가 크다는 주장도 있다. 보통주보다 27%가량 저렴한 우선주 특성상 같은 비용을 쓰고 주당 가치 제고 효과는 더 크게 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동일한 금액을 자기주식 매입 투입 시 우선주에 집중하면 35% 더 많은 주식 수를 축소할 수 있다"며 "동일한 경제적 권리에 비해 우선주가 큰 폭으로 할인돼 있다면 우선주 매입·소각의 주당 가치 제고 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사주 소각 때마다 '10%룰'이 변수로 떠오르며, 이참에 해묵은 규제를 완화할 때란 주장도 나온다. 삼성전자 종목토론방에도 "자사주 소각으로 기계적으로 높아진 금융계열사의 지분율에는 예외를 둬야 한다", "금산법을 완화해 자사주를 소각해야 한다"는 성토가 잇따랐다.
정치권에서도 완화 움직임이 있긴 했다. 지난해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주주가치 제고 목적의 자사주 소각에 한해 계열금융사들에 적용되는 '10%룰'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내용의 금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업의 자사주 소각으로 금융계열사의 보유 지분율이 한도를 넘더라도, 당장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2년 이내의 유예기간을 주자는 내용이다. '금산분리' 취지와 밸류업 정책이 단기적으로 충돌하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했지만, 일 년째 정무위 문턱도 못 넘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와 비교해 금융사 건전성 규제가 겹겹이 마련돼있고 블록딜 이슈가 해소될 만큼의 부분적 완화도 해법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전향적 검토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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