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적자여도 '디지털 보험' 투자 멈추면 안 되는 이유

AI 보험영업 위한 상품·판매 시스템 구축…디지털 투자가 미래 경쟁력

보험설계사 AI 생성 이미지

(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보험산업은 오랫동안 사람(人)과 종이(紙)에 의존한다는 의미에서 ‘인지산업’으로 불려 왔다. 보험설계사를 중심으로 한 대면영업이 판매의 핵심을 차지하고, 가입부터 계약 관리와 보험금 청구까지 상당 부분이 서류를 기반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국내 보험산업은 소비자가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 상품을 찾기보다 설계사가 보장의 필요성을 환기하고 가입을 권유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그 결과 세계 10위권 시장으로 올라섰지만, 이제는 인구 감소와 시장 포화라는 한계에 직면했다.

새로운 돌파구로 기대를 모았던 디지털 보험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최근 교보생명은 국내 최초 디지털 생명보험사로 출범한 교보라이프플래닛을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앞서 한화손해보험도 국내 첫 디지털 손해보험사인 캐롯손해보험을 흡수합병했다.

라이프플래닛과 캐롯은 출범 이후 한 번도 연간 흑자를 내지 못한 채 독립 디지털 보험사로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아직 국내에서 흑자 전환에 성공한 디지털 보험사는 한 곳도 없다.

디지털 채널의 부진은 이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올해 상반기 생명보험사의 사이버마케팅(CM) 채널 초회보험료는 2227억 원으로 전체 초회보험료의 1.5%에 불과했다. 보험사들이 2000년대 초반부터 비대면·온라인 상품을 판매했지만 디지털 채널은 20년이 넘도록 핵심 판매망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렇다고 라이프플래닛과 캐롯의 흡수합병을 디지털 보험의 실패로 단정해 투자를 멈춰서는 안 된다. 이번 사례가 보여준 것은 ‘독립 디지털 보험사’라는 사업모델의 한계이지 보험산업을 디지털로 전환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디지털 보험은 설계사가 팔던 기존 상품을 온라인 화면으로 옮겨놓는 수준에 머물렀다. 상품은 여전히 복잡하고 가입 과정은 번거로운데 판매 창구만 설계사에서 모바일로 바뀌었다. 소비자가 디지털 채널을 선택할 유인이 크지 않았던 이유다.

디지털 보험의 경쟁력은 단순히 보험을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데 있지 않다. 소비자가 일상에서 필요를 느낀 순간 적합한 보장을 쉽게 찾고 이해한 뒤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 단기간 필요한 보장을 저렴하게 제공하거나 생활 변화에 따라 보장 내용을 조정할 수 있는 상품도 필요하다.

가입 이후의 경험은 더욱 중요하다. 계약 관리와 보험금 청구, 심사와 지급까지 끊김 없이 연결돼야 소비자는 비로소 디지털 보험의 편리함을 체감할 수 있다. 복잡한 상품을 단순화하고 분절된 업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것이 디지털 투자의 본질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도 이런 기반이 필요하다. 최근 보험업계는 AI를 상품 상담과 설계사 교육, 고객 응대 등에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상품과 데이터, 가입·심사·보상 시스템이 서로 단절된 상태라면 AI를 도입해도 상담 업무를 일부 보조하는 수준을 넘기 어렵다.

라이프플래닛과 캐롯이라는 이름은 독립 디지털 보험사의 역사에서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축적한 상품 개발 경험과 데이터, 가입·보상 시스템까지 함께 사라져서는 안 된다.

실패한 것은 디지털 보험사가 독립적으로 수익을 내는 사업모델이다. 보험의 디지털화 자체가 아니다. 독립 디지털 보험사의 시대는 저물고 있지만, 보험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jcp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