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실손보험, 다음 달 '대전환'…비정상에서 정상으로
-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다음 달부터 실손보험의 대전환이 시작된다. 4세대 실손보험 약 6만 건의 첫 만기를 시작으로 앞으로 5년간 약 600만 건이 순차적으로 5세대 실손보험으로 재가입하게 된다. 실손보험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 맞는 사실상의 '세대교체'다.
벌써부터 소비자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보험료는 꼬박꼬박 냈는데 보장은 줄었다", "이럴 거면 실손보험을 왜 가입하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로 5세대 실손보험은 도수치료를 비롯한 비중증 비급여 보장을 줄이고 자기부담률을 높였다. 소비자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변화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 개편을 단순히 '보장 축소'로만 바라보면 실손보험이 왜 바뀔 수밖에 없었는지 놓치게 된다.
실손보험은 원래 암이나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큰 사고처럼 예상하지 못한 의료비 부담으로부터 가계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 안전망'이다.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의료비를 보완해 중증 질환에 걸려도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본래 취지였다.
그러나 20여 년이 흐르면서 실손보험은 점차 다른 모습이 됐다. 일부 의료기관은 비급여 진료를 과도하게 권유했고, 일부 가입자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의료쇼핑'에 나섰다.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보다 보험 혜택을 최대한 활용하는 사람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구조가 형성됐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졌다. 실손보험 적자는 매년 커졌고, 성실하게 보험료를 납부하면서도 병원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 다수 가입자들이 과잉 이용자의 비용을 함께 부담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실손보험이 '아픈 사람을 위한 보험'이 아니라 '많이 이용하는 사람이 유리한 보험'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5세대 실손보험은 이러한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첫 번째 시도다. 암·심장·뇌혈관질환 등 중증 비급여는 기존 수준 이상으로 보장하면서도, 도수치료 등 비중증 비급여는 자기부담을 높여 꼭 필요한 치료와 그렇지 않은 치료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보장을 없앤 것이 아니라 보험이 책임져야 할 영역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운 것이다.
물론 제도 개편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입자의 자기부담만 높인다고 실손보험이 정상화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기관의 과잉 비급여 진료를 줄이고, 비급여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유도하는 구조 역시 함께 손질해야 한다. 보험 가입자에게만 희생을 요구하고 의료 공급 체계는 그대로 둔다면 같은 논란은 몇 년 뒤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실손보험 개혁의 성패는 보험료를 얼마나 낮췄느냐가 아니라, 보험을 다시 '위험을 대비하는 안전망'으로 되돌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보험은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 이익을 보는 상품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질병과 사고 앞에서 누구나 최소한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장치다.
다음 달 시작되는 5세대 실손보험은 보장을 줄이는 개편이 아니라, 오랜 시간 왜곡돼 온 실손보험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번 실손보험의 대전환은 '비정상'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다. 소비자의 불편은 최소화하면서도 중증 환자는 더욱 두텁게 보호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안착할 수 있도록 정부와 보험업계, 의료계 모두의 책임 있는 후속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jcp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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