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제동에 '신속 상장폐지' 딜레마…부실기업 퇴출 장기화 우려
거래소, 형식 상폐 후속조치 착수…"조만간 구체적 내용 설명"
"시총 기준 자체보다 절차 문제…기업 권리 충분히 보장해야"
- 서한샘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가 증시 체질 개선을 위해 추진해 온 '부실기업 신속 퇴출' 정책이 법원의 제동에 난관을 맞았다. 시가총액 기준 미달 기업을 보다 빠르게 상장 폐지하기 위해 요건을 강화했지만 법원이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면서다.
6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2일 코스피 상장사 주연테크와 코스닥 상장사 케이엠제약이 한국거래소를 상대로 낸 상장폐지 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각각 인용했다.
재판부는 시가총액 미달을 부도나 자본전액 잠식과 같은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로 두면서 의견진술이나 이의신청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관리종목 지정 이후 시가총액 기준을 다시 충족하기 위한 회복 요건을 '연속 45거래일'로 강화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실증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점과 상장유지 기준의 시행 시점을 당초 계획보다 앞당긴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번 결정으로 주연테크와 케이엠제약의 상장폐지 결정 효력은 본안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정지됐다. 거래소는 같은 시가총액 미달 사유로 상장폐지가 결정돼 정리매매가 진행 중이던 세진티에스와 에이에프더블류의 정리매매도 중단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부실기업을 시장에서 신속하게 퇴출해 증시의 질적 수준을 높이겠다는 방향으로 상장폐지 제도를 개편했다. 코스닥 시가총액 상장유지 기준은 지난해 40억 원에서 올해 1월 150억 원, 지난 7월 200억 원으로 높아졌고 내년에는 300억 원으로 추가 상향될 예정이다.
거래소도 법원 판단에 따른 후속 조치 마련에 나섰다. 김성천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공시부 팀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코스닥데이에서 형식적 상장폐지 제도와 관련해 "최근 법원의 결정에 대한 후속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며 "조만간 구체적인사항에 대해 설명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결정을 시가총액 기준 금액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라기보다 기업의 절차적 권리를 충분히 보장했는지가 핵심 쟁점이라고 평가했다.
박찬호 법무법인 위온 대표변호사는 "이번 결정은 시가총액 기준 금액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기보다 기준 금액을 급격하게 상향하는 과정에서 절차와 경과조치의 설계가 비례원칙의 한계를 넘었다고 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준이 40억 원이던 시기에는 해당 기업이 거의 없어 이런 구조가 크게 문제 되지 않았지만 기준이 200억 원으로 대폭 상향되면서 상장 적격성을 충분히 갖춘 기업까지 아무런 소명 기회 없이 퇴출당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기준은 계속 조금씩 바뀔 수 있지만 갑자기 너무 많은 기업이 대상이 되면 법원도 거래소의 정책적 판단이 적절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라며 "실제 발생하는 충격의 규모라는 양적인 요소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법원 판단을 반영해 절차적 장치를 보완할 경우 당초 정책 목표였던 신속 퇴출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래소가 시가총액 미달 기업에도 이의신청이나 별도의 소명·심사 절차를 마련하면 개별 상장폐지에 걸리는 기간은 기존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관리종목으로 지정됐거나 상장폐지 결정이 내려진 기업을 새로운 절차에 어떻게 편입할지도 풀어야 할 과제다.
반대로 현행 규정을 별다른 보완 없이 유지할 경우 추가 가처분 가능성도 부담이다. 주연테크와 케이엠제약의 신청이 받아들여진 데다 거래소가 다른 기업의 정리매매까지 중단하면서 유사한 처지의 기업들이 법적 대응에 나설 유인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기업의 상장 적격성과 회복 가능성, 가처분 신청 시점, 향후 거래소의 제도 보완 여부 등에 따라 법원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박 대표변호사는 "거래소가 이의신청 절차를 신설하고 경과조치를 보완한 이후 그 절차를 거쳐 내려진 상장폐지 결정에는 이번 결정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년간 적자가 지속되거나 자본잠식 상태에 있는 기업은 같은 규정 위반을 주장하더라도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며 "결국 기업의 실적, 자기자본, 적정 감사 의견과 같은 소명자료 유무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sae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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