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강세에 다시 고개 든 '엔캐리 청산'…AI株 투자금 회수 '우려'

엔화 숏 포지션 사상 최대…기술주 추가 매도 가능성
주도주 이미 39% 하락…"수급 불안 최종 국면"

3일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와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2026.8.3 ⓒ 뉴스1 이호윤 기자

(서울=뉴스1) 손엄지 기자 한민아 수습기자 =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엔화가 강세를 띠면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엔화를 빌려 미국 기술주에 투자한 자금이 빠져나갈 경우 인공지능(AI) 관련 종목을 중심으로 추가 매도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최근 기술주 하락과 레버리지 축소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에도 엔캐리 청산 우려가 시장 조정의 후반부에 등장했던 만큼 이번 우려는 수급 불안의 마지막 고비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연중 상승세를 이어온 달러·엔 환율은 지난주 미국과 일본의 공조 아래 급락했다. 163엔을 넘어섰던 달러·엔 환율이 157엔대까지 떨어지면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가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기대수익률이 높은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거래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 빌린 엔화를 갚는 부담이 커지고, 투자자들은 보유한 해외 자산을 팔아 엔화를 되사면서 관련 포지션을 줄이게 된다.

청산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누적된 엔화 약세 베팅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글로벌 헤지펀드가 보유한 엔화 약세 베팅은 12만 4575건, 약 95억 달러 규모다. 이는 2007년 이후 최대 수준을 기록했던 지난 6월에 근접한 규모로 엔화 강세가 이어질 경우 관련 포지션이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

엔화를 빌린 자금은 AI 종목에 다수 투자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엔캐리 자금이 미국의 고금리 국채에 주로 투자된 것으로 여겨져 청산이 발생하면 미국 국채 매도와 시장금리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주요 위험으로 꼽혔지만 2023년 이후 엔캐리 거래의 성격은 달라졌다.

헤지펀드도 엔화를 빌려 미국 국채를 매수하기보다 오히려 공매도 포지션을 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투자증권은 2024년 이후 달러·엔 환율과 기술주의 투기적 레버리지 매수세가 같은 흐름을 보인 점을 근거로 엔화 차입 자금이 기술주 투자에 활용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기술주 내 주도주와 달러·엔 환율의 동행성은 나스닥 전체보다 더욱 뚜렷했다. 이는 엔화 차입과 레버리지 활용, 기술주 매수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근거로 엔화 강세가 지속되면 헤지펀드의 기술주 매수 포지션도 추가로 줄어들 수 있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일 국채 금리 차와 달러·엔 환율의 연동성은 약해진 반면 달러·엔 환율과 나스닥을 비롯한 기술주 주가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가 이어지는 동안 AI 설비투자 관련주와 동아시아 시장이 강세를 보였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엔화가 강세로 전환하면 이들 자산에 투자된 헤지펀드의 매수 포지션이 축소되면서 추가적인 수급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김 연구원은 "2024년 7월 미국 경기 부진으로 달러 약세와 엔화 강세가 나타나자 시장금리가 하락했음에도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기술주는 약세를 보였고, 경기민감 가치주는 상대적으로 강세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청산 우려가 대규모 투매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7월 초부터 투기적 자금이 줄고 주도주와 소외주 간 포지션 조정이 이어지면서 주도 기술주 그룹은 고점 대비 39% 하락했고, 관련 레버리지도 지난 두 달 동안 상당 부분 축소되면서다.

엔화 강세가 추가적인 포지션 청산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시장에 쌓여 있던 레버리지가 이미 크게 줄어든 만큼, 수급 불안은 막바지 국면일 수 있다는 평가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붕괴와 2024년 기술주 급락 당시에도 다른 악재와 주가 조정이 먼저 나타난 뒤 엔캐리 청산 문제가 제기됐다. 이번 우려가 시장 조정의 마지막 고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 연구원은 "엔화 강세가 시장에 불편한 새로운 이슈는 맞다"면서도 "다만 현재 포지셔닝과 과거 경험을 고려하면 수급 불안은 최종 국면으로 진입한 듯하다"고 말했다.

eo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