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조' 매도?…국민연금 리밸런싱 재개 첫 사흘 '폭탄'은 없었다

1~3일 유가증권시장 2158억 순매도…3일엔 순매수 전환
증권가 "실질 매물 15조 안팎 전망…매도 충격은 제한적"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모습. ⓒ 뉴스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리밸런싱(자산 재배분) 유예 조치가 지난 6월 종료되면서 연기금 수급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리밸런싱이 재개된 이달 첫 사흘간 연기금 매매 동향을 보면 시장 일각에서 우려한 '매도 폭탄'보다는 업종·종목별 비중 조정에 가까운 흐름이 나타났다는 평가다.

5일 코스콤 CHECK 집계에 따르면 지난 3일 장 마감 기준 연기금 등은 1~3일 유가증권시장(한국거래소·넥스트레이드 합산)에서 2158억 원을 순매도했다.

리밸런싱 유예 종료 첫날인 1일에는 2181억 원을 순매도했으나, 2일 순매도액은 535억 원으로 줄었다. 3일에는 558억 원 순매수로 돌아섰다.

이 기간 연기금 등이 가장 많이 판 종목은 삼성전자였다. 한국거래소 기준 연기금 등은 지난 1~3일 삼성전자를 1970억 원어치 순매도했다. 이어 SK스퀘어 1967억 원, 삼성전기 1243억 원 등 순으로 매도 규모가 컸다.

반대로 가장 많이 담은 종목은 SK하이닉스였다. 연기금 등은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를 1089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신한지주도 각각 567억 원, 532억 원 순매수했다.

연기금 수급에는 국민연금뿐 아니라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각종 공제회 등의 거래가 반영된다. 다만 국민연금의 운용 규모가 가장 큰 만큼 시장에서는 7월 연기금 매매 동향을 국민연금 리밸런싱 재개 영향을 가늠할 수 있는 간접 지표로 보고 있다.

리밸런싱은 자산 가격 변동으로 포트폴리오 내 특정 자산 비중이 목표 범위를 벗어났을 때 자산을 사고팔아 비중을 다시 맞추는 작업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해외주식·국내채권·해외채권·대체투자 등 자산군별 목표 비중을 정해 운용한다.

올해 상반기 국내 증시가 급등하면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도 목표 비중을 크게 웃돈 것으로 추정됐다. 국민연금은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국내 주식 리밸런싱을 한시적으로 유예했지만, 해당 조치가 6월 말 종료되면서 7월부터 비중 조정 매물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일부에서는 리밸런싱 과정에서 최대 74조 원 규모의 매물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종가가 표시되어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440.25포인트(5.76%) 상승한 8088.34, 코스닥은 1.69포인트(0.19%) 오른 868.41에 마감했다. 2026.7.3 ⓒ 뉴스1 최지환 기자

증권가에서는 실제 매도 충격이 시장 우려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조정할 필요는 있지만, 전략적 자산배분(SAA)·전술적 자산배분(TAA)상 허용범위, 시장 충격을 줄이는 운용 방식 등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대규모 매물이 한꺼번에 출회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허용범위 등을 고려하면 현 수준 기준 실질적인 매물 출회 규모는 15조 원 내외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며 "국민연금의 매도 흐름은 일반적으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증시 수급이 우호적인 상황에서 포트폴리오 매도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민연금도 '매도 폭탄' 우려에 선을 긋고 있다. 지난 1일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리밸런싱에 들어가도 폭탄이 될 가능성은 제로"라면서 '74조' 매도 폭탄설을 반박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장을 맡은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2일 기금위 모두발언에서 "리밸런싱 과정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며 "지난 5월 기금위는 수익성과 안정성을 높이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할 수 있도록 1일 최대 리밸런싱 규모를 축소하는 등 규칙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코스피가 고점 대비 후퇴한 점도 리밸런싱 부담을 일부 낮추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국내 주식 평가액이 줄면 국민연금 포트폴리오 내 국내 주식 비중도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조정 규모는 주가 수준뿐 아니라 채권·대체투자 등 다른 자산 수익률과 환율, 변동성 등을 함께 고려해 결정되는 만큼 지수만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과거 사례를 봐도 연기금 매도가 곧바로 상승장을 꺾지는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2020년 12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연기금은 51거래일간 14조5000억 원을 순매도했지만, 개인이 32조4000억 원을 흡수하면서 같은 기간 코스피는 오히려 10.7% 상승했다.

이준영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민연금 리밸런싱은 상승의 결과이지 하락의 원인이 아니다"라며 "현 국면에서도 리밸런싱 규모는 우려보다 크지 않을 전망이다. 상승 추세가 꺾인다면 AI 캐팩스(설비투자) 사이클의 균열, 혹은 피할 수 없는 특이점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