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의무소각 '수혜'라더니…9월 지주사 주가 왜 역행했나

3차 상법 개정 앞두고 리레이팅 기대 vs 장기적 기업부담 심화
KCC 등 'EB 발행' 의무 소각 회피 지주들…투자 심리 위축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여의도 증권가. (자료사진) 2024.1.24/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박승희 기자 = 정부·여당이 기업 자사주의 원칙적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개정안을 정기국회 내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가운데, 자사주 비중이 높은 지주사 주가가 다수 하락 중이다.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는 리레이팅(가치 재평가) 효과를 기대하면서도, 장기적으론 기업 부담 심화라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30일 에프앤가이드·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자사주 보유 비중이 10% 이상인 8개 종목 중 HD현대(267250)(12.11%)를 제외하고 롯데지주(004990)(-0.17%), SK(034730)(0.72%), 티와이홀딩스(363280)(-9.81%), HDC(012630)(-17.4%), LS(006260)(-8.61%), 하림지주(003380)(-10.19%), DN오토모티브(007340)(-14.66%) 등 10개 종목이 이달 하락 중이다.

정부·여당이 지난 7·8월 1·2차 상법 개정안에 이어 9월 정기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 추진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그간 자사주 소각 수혜주로 꼽히던 지주사들 다수가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무산됐던 상법 개정은 이재명 정부 들어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지난 1·2차 상법 개정안을 통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전체 주주로 확대되고, 집중 투표제 의무화가 공포됐다. 전 정부가 추진했던 안보다 한층 강도가 높은 개정이었다.

이번에는 한층 더 강력한 3차 상법 개정이 예고됐다. 핵심은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의무 소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5건의 개정안은 신규 취득분뿐 아니라 기존 보유 자사주까지 소각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은 통상 주가 상승 요인으로 해석된다. 소각을 통해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들면 동일한 이익 수준에서 주당순이익(EPS)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주 이익을 직접적으로 늘리는 효과 덕에 자사주 소각은 곧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으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과도한 자사주 소각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지주사 구조 자체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상장사협의회가 발간한 '상장기업 자기주식 운용실태와 제도 변화의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가 의무적으로 소각해야 할 자사주 규모는 약 71조 7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 국내 연구개발(R&D) 상위 1000대 기업 투자액(83조 6000억 원)의 86%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전형민 상장협 정책연구팀 선임연구원은 '자기주식 의무소각 제도 도입안의 문제점과 대안'이라는 보고서에서 "자기주식 소각은 주주가치 상승에 기여하지만, 기업가치 향상에는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아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 저해와 성장동력 상실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일부 지주사들이 법 시행 전 회피 수단으로 자사주를 활용한 교환사채(EB) 발행에 나선 점도 투자심리를 위축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EB 발행은 자사주 소각 대신 우호 세력에 지분을 넘기는 편법적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실제로 자사주의 9.9%를 EB로 발행하겠다고 밝힌 KCC는 지난 23일 이후 13.91% 급락했다.

seungh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