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안 막아도 회장 바꾼 KB금융…정부 '연임 제한' 명분 흔드나

'부패한 이너서클' 직격한 李, KB금융 '세대교체'로 화답
'CEO 3연임 제한' 늦어지는 최종안…"국회 조율 마쳐야"

KB금융 여의도 사옥.

(서울=뉴스1) 전준우 기자 =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 가운데 유일하게 현직 회장의 연임 대신 '세대교체'를 선택한 곳이 나왔다. 리딩금융인 KB금융의 이사회가 역대 최대 실적을 이끈 현직 회장의 연임 대신 새로운 인물을 선택하면서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인선이 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의 연임 횟수를 법으로 일률적으로 제한하지 않더라도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작동하면 스스로 견제와 균형을 이뤄낼 수 있다는 사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해 온 ‘CEO 3연임 제한’과 같은 법적 규제의 명분은 약해진 반면, 이사회 독립성과 승계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의 제도 개선에는 오히려 힘이 실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지난 11일 이재근 KB금융지주 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양종희 현 회장과 이 부문장,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과 평가를 진행한 끝에 이 부문장을 선택했다.

조화준 KB금융 회추위원장은 “그룹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선정 배경을 밝혔다.

금융권의 예상을 뒤집은 결과다. 양 회장은 취임 후 KB금융의 역대 최대 실적과 대규모 주주환원을 이끌어 연임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로 꼽혀왔다.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의 임기는 2028년 3월까지다. 올해 3월 연임한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도 2029년 3월까지 그룹을 이끈다.

이런 상황에서 4대 금융지주 가운데 KB금융만 현직 회장의 연임 대신 교체를 선택한 것이다. 내년 2월 임기가 끝나는 이찬우 NH농협금융 회장의 후임 인선 절차는 다음 달 시작될 전망이다.

이번 인선이 주목받는 이유는 정부가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연임을 제한하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선안을 준비하는 가운데 법적 강제 없이 이사회가 먼저 현직 CEO를 교체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양 회장은 정부의 제도 개선 과정에서 논란이 된 ‘3연임’ 대상도 아니었다. 첫 번째 연임에 도전했지만 회추위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임기를 법으로 제한하지 않아도 독립적인 이사회가 경영 성과와 미래 전략 등을 기준으로 현직 CEO를 견제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정부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 논의는 이재명 대통령의 강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업무보고에서 금융지주 CEO의 장기 연임 관행을 겨냥해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멋대로 소수가 돌아가며 계속 지배권을 행사한다”고 비판하며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올해 1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CEO 선임·승계 절차의 공정성 제고, 장기 연임 방지, 성과보수 체계 개선 등을 논의했지만 당초 예고했던 시점보다 발표가 반년 넘게 늦어지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금융지주 CEO의 3연임을 어떻게 제한할지다. 3연임 때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치게 하는 방안부터 3연임 자체를 법으로 금지하는 방안까지 검토됐다.

그러나 민간 금융회사 CEO의 임기를 법률로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경영 자율성과 주주의 선택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해외에서도 일반 민간기업 CEO의 연임 횟수를 법으로 직접 제한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위헌 논란도 불거졌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지난 7월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해외 사례에서 일반 민간회사 CEO의 연임을 제한한 사례는 없었다”며 연임 제한 방안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3연임을 법으로 금지하는 대신 사외이사로 구성된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만장일치를 받도록 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단 한 명의 사외이사라도 반대하면 3연임이 무산되는 구조다.

그러나 이 역시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사외이사 한 명에게 사실상 거부권을 부여해 오히려 외부 압력이나 정치적 영향력에 취약해질 수 있어서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도 커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KB금융의 선택은 정부 개선안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회추위가 최대 실적을 낸 현직 회장을 교체한 것은 CEO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이사회를 구축해 연임을 사실상 보장받는 이른바 ‘참호 구축’이 적어도 이번 KB금융 인선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KB금융도 이번 승계 절차에서 이사회 독립성과 절차적 공정성을 거듭 강조했다. 경영승계 절차를 기존보다 한 달 이상 일찍 시작해 후보자 검증 기간을 늘렸고, 외부 후보자가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또 승계 절차 전반을 공개해 시장의 신뢰도를 높이고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선진화 기조에 맞춰 객관성과 공정성을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KB금융 한 곳의 사례만으로 금융권 전체의 자율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완성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금융지주마다 이사회 구성과 승계 절차, CEO의 영향력이 다른 만큼 현직 회장의 참호 구축을 막을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는 필요하다는 의견도 여전하다.

결국 정부 개선안의 초점도 ‘누가 몇 번까지 회장을 할 수 있느냐’보다 ‘누가 어떤 절차와 기준으로 회장을 뽑느냐’에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CEO의 연임 횟수를 법으로 정하기보다 후보군 관리와 평가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이 민간의 자율성과 이사회 견제 기능을 함께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역시 법적 연임 제한보다 이사회 독립성, 승계 절차의 투명성, 성과보수 환수 등으로 제도 개선의 무게중심을 옮길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준비 중인 개선안에는 금융사고나 대규모 손실이 뒤늦게 확인되면 이미 지급한 성과급을 환수하는 ‘클로백’ 제도와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독립성 강화, CEO 선임·연임 절차 공시 확대 등이 담길 전망이다. 사외이사의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고 독립성과 책임을 함께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안에 포함될 내용 중 상당수가 법률로 정해야 하는 사안이어서 당에서도 수용할 수 있는 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현재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junoo568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