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무과실 배상' 속도내는 금융위…은행권 "2800억 부담 우려"

금융위 "개인 주의만으로 사전 예방 불가능…금융사 책임 필요"
은행권 "도덕적 해이 방지책·각 주체 종합적 대처 함께 논의돼야"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조용병 은행연합회장과 KB·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AX 시대 해킹·보이스피싱 대응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6.6.10 ⓒ 뉴스1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금융당국이 보이스피싱 피해자 구제를 위해 금융회사의 '무과실 배상책임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개인의 주의만으로는 신종 금융범죄를 막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금융회사에도 일정 수준의 책임을 부여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은행권은 피해자 보호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금융회사 과실이 없는 경우까지 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은 과도하다며 통신사와 수사기관 등 관련 주체 간 책임 분담과 도덕적 해이 방지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을 만나 보이스피싱 피해자 구제 강화를 위한 금융회사의 '무과실 배상책임제' 도입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무과실 배상책임제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할 경우 금융회사의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피해자에게 일정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다.

관련 내용을 담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은 강준현·조인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각각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금융회사가 지급해야 할 보상 한도를 사건당 1000만~5000만 원 범위에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개인의 주의만으로는 신종 금융 범죄를 예방하기 어려운 만큼 금융회사에도 일정 수준의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태훈 금융위원회 금융안전과장은 지난 4월 금융범죄예방 정책세미나에서 "현재는 개인의 주의만으로 범죄를 예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금융회사들이 일정한 책임과 부담을 지도록 해 예방 노력에 대한 유인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배상책임이 금융회사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상 한도 등 세부 사항을 조율하고 있다며 "무과실 책임제는 입장을 정리해 빠른 시일 내에 입법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금융회사에 책임이 과도하게 집중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은행권은 보이스피싱이 소비자의 경각심, 통신사의 스팸·스미싱 차단, 금융회사의 이상 거래 탐지, 수사기관의 범죄조직 검거 및 피해금 환수 등이 종합적으로 대처해야 예방과 피해 회복이 가능한 만큼 금융권만 책임을 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특히 제도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통신사 등 관련 업권 간 책임 분담이 필수적이며 업권별 책임 소재에 합당한 비용 분담 방식이 비례의 원칙 및 평등의 원칙 등 법체계에도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통신사와 정부, 수사기관 등도 일정 부분 책임을 분담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한 상태다. 보상 한도가 5000만 원으로 정해질 경우 금융권 전체가 부담해야 할 배상액은 약 28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국회 정무위원회도 지난 3월 검토보고서를 통해 우려를 제기했다. 보고서는 금융회사 과실이 없는 경우까지 피해 분담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민법상 자기책임원칙에 저촉될 우려가 있고 금융회사가 손실을 보전해 준다는 인식이 확산할 경우 이용자의 보안 경계심이 낮아지는 도덕적 해이와 허위 피해 신고나 공모 범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은행권은 보상금 반복 수령 제한, 자기부담금 부여, 신고 기한 단축 등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는 보완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해자 보호 강화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무과실 배상책임제의 적용 범위와 책임 분담 구조를 둘러싼 이견이 여전한 만큼 국회 원 구성이 끝난 후 관련 쟁점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회 원 구성이 끝난 후 추진할 주요 법안 중 하나"라며 "은행권의 우려는 법안 추진 과정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은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모습. 2025.9.8 ⓒ 뉴스1 임세영 기자

bc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