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은퇴 시즌3] 노년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면
김경록 옵투스자산운용 고문
예식장에 가서 저 신혼부부가 이혼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를 추론하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2명의 관상을 보고 혹은 나의 직감을 믿고?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우리나라의 이혼율 데이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 이혼율을 중심으로 조금 수정하면 된다. 이를 기저율(base rate)을 출발점으로 하는 추론 방식이라 한다.
이를테면, 춘천시에 있는 미용실 개수를 추정한다고 하자. 먼저 '대한민국의 인구 대비 미용실 밀도'라는 기저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인구 1000명당 3개라고 하면 인구 30만 명인 춘천시는 약 900개의 미용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추가 정보를 반영한다. 춘천이 관광 도시이자 대학 도시이며,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낮아 자영업 진입이 쉬우므로 밀도를 3.5~4개 수준으로 상향한다. 이 경우 약 1050~1200개라는 보다 정교한 추정이 나온다.
그런데 춘천시의 미용실 개수가 실제로는 1400개였다고 하자. 오차의 이유를 알아보니 고령자들이 동네 미용실에 가서 염색을 자주 하고 사랑방처럼 활용하면서 대한민국의 인구 대비 미용실 밀도가 올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 과거의 기저율을 이제 업데이트하게 된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서 오차가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기저율을 수정한 것이다.
이것이 인간 사고의 메커니즘이다. 이러한 구조를 18세기에 살았던 목사이자 통계학자였던 베이즈(T. Bayes)의 이름을 따서 '베이지안(Bayesian) 추론'이라 한다. 인간의 의사결정, 뇌의 인지 과정, 그리고 인공지능의 학습 방식까지도 이 틀로 설명할 수 있다.
기저율은 객관적인 통계만 있는 게 아니라 주관적 경험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따라서 젊은 시절에는 경험의 축적이 부족하기 때문에 개인이 갖고 있는 기저율 자체가 불안정하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기존 기준이 쉽게 바뀐다. 아기들은 가진 정보가 너무 적어 아무렇게나 판단하고 움직이는 이유다. 아기의 판단은 오류 가능성은 크지만 학습 속도와 적응력은 높다. 반면 노년에는 수십 년의 경험이 누적되면서 기저율이 매우 강하게 고정된다. 이 기저율은 장기간 검증된 결과이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도 쉽게 수정되지 않는다. 노년의 완고함이다.
이 지점이 노년의 강점이자 한계다. 강점은 분명하다. 단기적 유행이나 잡음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노인은 현명하다고 하는 이유다. 동시에 이 구조는 융통성이 없는 경직적인 사고로 나타난다. 경험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정보를 접해도 기저율이 덜 변동한다. 세상이 변했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마이 웨이'를 간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부동산 가격은 결국 상승한다'는 평생의 경험을 통해 '부동산 불패'라는 기저율을 형성했다고 하자. 그러나 저성장과 인구 감소라는 새로운 구조적 변화가 등장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젊은 투자자는 새로운 정보를 반영해 기저율을 수정할 수 있지만 노년의 경우 이를 일시적 변동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동일한 정보를 보고도 판단이 달라지는 이유다. 최근에 주가가 1년 반 만에 2500에서 8000까지 오르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는데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과감하게 들어온다.
결국 핵심은 새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노년의 유연한 사고에 필요한 것은 쌓아 온 신념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기저율의 '갱신 능력'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기저율이 얼마나 강하게 고정돼 있는지 먼저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을 때 이를 예외적인 정보로 처리하지 않고 기저율을 갱신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면 세상을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지만 이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에서다. 과거에는 변화가 크지 않아 한번 형성된 기저율이 오랫동안 유효했다. 노인들에게 중요한 결정을 물어 본 이유다. 그러나 오늘날은 경제와 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내가 활동하던 때와 다른 판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기저율의 '반감기'가 짧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손주가 할아버지에게 가르쳐주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노년의 완고함은 성격이나 호르몬의 문제가 아니라 축적된 경험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렇다면 유연한 사고를 갖추는 해법도 명확하다. 자신의 판단이 틀릴 가능성을 일정 수준 인정하고, 자신의 오랜 경험으로 구축한 기저율을 체계적으로 갱신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새로운 정보에 더 많은 가중치를 둘 필요가 있다. 이는 환경 변화가 빠른 시대에 더욱 필요한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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