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밑 가시' 뺐다…자본규제 손질, 돈 흐름 바꾼다[성장엔진 금융]③

은행권 과징금 리스크 10년→3년…은행 자본규제 '대수술'
98.7조 자금여력 확보…금융지주들 1분기 생산적금융 집행률 46.6%

편집자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금융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해지고 있다. 금융은 중동 리스크라는 거친 파도 앞에서 기업의 유동성을 지키는 방패이자, 미래 먹거리 산업을 키우는 성장 엔진으로 부상했다.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생산적 금융’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일회성 처방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들기 위한 과제를 짚어본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5차 생산적금융 대전환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6.4.16 ⓒ 뉴스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금융권의 자금 흐름이 부동산·가계대출 중심에서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으로 이동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보험업권의 자본규제라는 '손톱 밑 가시'를 걷어내며 생산적 금융으로의 대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2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제5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열고 은행·보험업권의 자본 규제를 손질해 최대 98조 7000억 원의 추가 자금공급 여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금융권 자금이 부동산 금융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 산업으로 흐를 수 있도록 물꼬를 트겠다는 취지다.

핵심은 은행권 자본 부담 완화다. 금융위는 재발 우려가 낮은 대규모 손실 사건에 대해 자본비율 산정 시 운영리스크를 반영하는 기간을 최장 10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5대 금융지주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최대 26bp 상승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례없는 조치다. 과거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라임펀드 사태 등 대형 금융사고 이후 막대한 과징금과 손실 부담이 장기간 자본비율에 반영되면서 신규 투자 여력을 제약해 왔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과거 사고 부담은 덜어주고 미래 투자 여력은 키워주겠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보험업권에는 위험계수 합리화를 통해 생산적 금융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위험계수는 상품과 자산별 위험도에 따라 추가로 쌓아야 하는 자본비율이다. 수치가 낮아질수록 투자 여력은 커진다.

구체적으로 위험계수는 국민성장펀드 등 정책프로그램에 투자할 경우 49%에서 20% 이하로, 적격벤처투자 위험계수는 49%에서 35%로 경감한다.

1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제5차 생산적금융 대전환 회의가 열리고 있다. 2026.4.16 ⓒ 뉴스1 김진환 기자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한 금융당국의 자본규제 합리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금융당국은 이미 △비상장 주식 위험가중치 400%→250% 조정 △정책목적 펀드 위험가중치 특례 요건 명확화 △신규 주담대 위험가중치 하한 상향 △해외점포 출자금 구조적 외환포지션 승인 등 4개 과제를 순차적으로 완료했다.

이번 달 중에는 구조적 외환포지션 승인 대상을 해외 장기 지분 투자와 해외점포 이익잉여금까지 넓히는 추가 조치도 예정돼 있다. 지주별 CET1은 최대 12bp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조치를 '자본의 방향 전환'으로 해석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규모 사건이 나면 운영 위험가중자산(RWA)이 커져서 자기자본비율(BIS)이 안 좋아지는 구조인데 운영리스크 완화는 RWA를 낮춰 건전성 비율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며 "비상장 주식 위험가중치를 낮추고 정책펀드도 하향해 주면 공급은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생산적 금융 확대 기조 속에서 기업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는 것에 대해서는 "현재 상황에서는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제조업 침체가 우려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의 물꼬가 트이자 금융지주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4대 금융지주의 올해 생산적 금융 목표치는 총 64조 1000억 원이다. 4대 금융지주는 1분기에만 총 29조 9000억 원(46.6%)을 집행했다. 다만 증권사 등 일부 금융그룹 자회사의 실적은 집계에 한계가 있어 전체 규모가 완전히 반영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각 지주사의 전략도 구체화하고 있다. KB금융은 지난달 '제3차 그룹 생산적금융 협의회'를 중심으로 세부 추진 계획을 수립했다 KB금융은 △국민성장펀드(2조 원) △그룹자체투자(3조 원) △기업대출(12조 원)로 나눠 집행할 예정이다. 하나금융은 AI·반도체·에너지·바이오의약품·로봇·모빌리티·방산 등 핵심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모험자본과 민간펀드를 통해 유망 혁신기업을 발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새로운 방식의 시도들도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은 기술보증기금과 MOU를 맺고 '기업 승계 관점의 맞춤형 인수합병(M&A) 금융지원 모델'을 구축했다. 자녀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전통적 승계가 아니라 해당 산업에 역량 있는 외부 경영자가 기업을 승계할 때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규제 합리화에 따라 생산적 금융 추진에 속도가 붙고 있다"고 설명했다. 5대 금융지주는 2030년까지 생산적 금융에 총 508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중동상황 피해업종 관련 산업ㆍ금융권 간담회(철강)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26.4.17 ⓒ 뉴스1 김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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