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쏠림의 그림자…사모대출 시장에서 오는 위기 신호 [박선영의 경제 인사이트]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편집자주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거시·금융 경제학자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 주요 경제·금융 정책기관의 위원회와 자문기구에서 제도 설계와 정책 평가에 참여해 왔다. '경제 인사이트'에서는 학술 연구와 정책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숫자 이면에 놓인 경제의 논리를 독자에게 차분하고 명료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특히 환율·금리·자산시장부터 금융규제, 디지털 금융과 통화 질서에 이르기까지 주요 경제 이슈를 데이터와 이론에 근거해 분석하고, 정책 결정이 시장과 가계에 어떠한 경로로 전달되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세계 금융시장이 인공지능(AI) 혁명에 열광하는 동안, 그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조용히 균열이 번지고 있다. 글로벌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이다. 지난 18일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PIMCO)는 1조 8000억 달러 규모의 사모대출 시장에서 유동성 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같은 주에 블랙스톤의 사모대출펀드는 약 20억 달러에 달하는 환매 요청에 대응해 환매 한도를 인상해야 했다.

2월에는 블루오울(Blue Owl)이 리테일 투자자 대상 사모대출펀드의 환매를 제한했고, 아폴로(Apollo) 산하 BDC(기업개발회사)는 배당을 삭감하면서 자산을 평가절하했다. JP모건은 소프트웨어 관련 대출 자산의 가치를 선제적으로 마크다운하고 해당 분야 대출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모건스탠리, 블랙록, 클리프워터 모두 이번 분기 주요 사모대출펀드에서 환매 한도에 도달했다. 개별 사건이 아니다. 뚜렷한 패턴이 형성되고 있다.

최근 사모대출펀드의 투자자 환매 요청을 제한한 모건스탠리 뉴욕 빌딩. ⓒ 로이터=뉴스1
사모대출, 왜 이렇게 커졌나

사모대출이란 은행이 아닌 사모펀드, 보험사, 연기금 등이 기업에 직접 대출하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 은행 대출이나 공모 회사채와 달리 비공개로 협상되고 거래소에서 유통되지 않는다. 투자자에게는 국채나 회사채보다 높은 수익률을, 차주에게는 은행보다 유연한 조건을 제공하면서 급성장했다.

2000년 수백억 달러에 불과하던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은 현재 약 2조~3조 달러로 수십 배 이상 성장했다. 미국 시장만 놓고 보면 최근 5년간 5000억 달러에서 1조 3000억 달러로 2.6배 불어났다. 북미 직접대출(direct lending) 운용자산은 2015년 930억 달러에서 2025년 말 6440억 달러로 7배 증가했으며, 무디스는 2030년까지 4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이 폭발적 성장의 기원은 역설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다. 위기 이후 도드-프랭크법과 바젤III 규제가 은행의 고위험 대출 능력을 대폭 제한하자 그 공백을 사모펀드가 메웠다. 규제가 은행 시스템을 안전하게 만드는 동안, 위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규제 밖의 '그림자'로 이동한 것이다.

AI가 만드는 신용 균열

그렇다면 수조 달러 규모의 시장이 왜 지금 흔들리는가. 진원지는 다름 아닌 AI 기술 혁명이다. 사모대출의 최대 차주 그룹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전체 포트폴리오의 약 25%를 차지한다. UBS에 따르면 AI 파괴적 혁신에 취약한 업종까지 포함하면 노출 비중은 25~35%에 달한다. 지난 10년간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모델의 반복 구독수익은 안정적이고 예측할 수 있어 대출 심사에서 이상적인 현금흐름으로 간주했고, 사모자본(PE) 운용사들은 이들을 인수하면서 사모대출로 레버리지를 일으켰다.

그런데 AI가 이 공식을 깨뜨리고 있다. 생성형 AI가 코딩, 데이터 분석, 고객관리, 콘텐츠 제작 등 소프트웨어 기업이 돈을 받던 바로 그 업무를 대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업 고객 입장에서 기존 SaaS에 구독료를 내던 업무를 AI 에이전트가 더 빠르고 싸게 처리할 수 있다면, 구독을 해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올해 2월 초 AI 기업 앤스로픽이 전문 업무 수행 AI 도구를 발표하자 소프트웨어 주식이 급락했고, 아이셰어즈 소프트웨어 ETF는 올해 들어 20% 가까이 하락했다. 그러나 주가 하락은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 문제는 신용(크레딧)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의 미래 매출이 줄어들면 대출 상환 능력이 약화되고, 이는 곧 사모대출 포트폴리오의 부실로 이어진다. 1월 말 기준 투기 등급 소프트웨어 대출 중 250억 달러가 액면가의 80% 이하에서 거래되고 있었는데, 이는 시장이 이미 상당한 손실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다.

2008년 그림자금융위기와 닮은 점과 다른 점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리만 브러더스. (옛 리만 브라더스 홈페이지 갈무리)

여기서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의 사모대출 위기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의 재판인가?

닮은 점이 상당하다. 2000년대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대출 심사기준이 무너졌듯이, 사모대출도 자금이 밀려들면서 차주 친화적 조건이 확산했다. 불투명성(opacity)이라는 구조적 취약점도 공통된다. 서브프라임 위기 당시 CDO의 기초자산 구성을 투자자가 알 수 없었듯이, 사모대출도 비공개이고 신용등급이 부여되지 않으며 유통시장이 없어 시장가격이 형성되지 않는다. 펀드 운용사가 자체 내부 모형으로 자산 가치를 평가하는 '모형기반평가'(mark-to-model) 방식은 실질적인 부실을 은폐할 수 있다. 최근 미국 법무부가 사모대출 포트폴리오의 "창의적 가치평가"에 대해 경고했고 SEC는 신용평가사 이건존스(Egan Jones Ratings)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과의 연결고리 역시 전염 경로를 만든다. 2008년에는 은행들이 부외(off-balance-sheet) 구조인 SIV와 ABCP 도관을 통해 서브프라임에 노출돼 있었고, 지금은 은행들이 사모대출 펀드에 대출 라인(credit facility)을 제공하는 형태로 연결돼 있다. 연방준비제도 자료에 따르면 미국 대형 은행들이 사모대출 펀드에 제공한 여신 한도는 2020~2024년 사이 145% 증가해 약 950억 달러에 달한다. BDC의 레버리지(총부채/총자산)는 같은 기간 40%에서 53%로 상승했다. 2008년에 위험을 은행 밖으로 밀어냈지만, 그 위험에 자금을 대는 것은 다시 은행이 된 셈이다.

다른 점도 있다. 사모대출 시장의 절대 규모(약 2조 달러)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약 1조 3000억 달러)보다 크지만, 글로벌 금융시스템 전체 대비 비중은 아직 작고, CDO처럼 다단계 증권화를 거치지 않아 복잡성은 덜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2008년에 연준은 은행 시스템에 직접 유동성을 주입할 수 있었지만, 사모대출은 말 그대로 '사적'(private) 시장이어서 연준이 사모펀드에 직접 공적 자금을 투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 개입을 정당화하려면 먼저 은행이나 채권시장으로 전염이 확산하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데, 그때는 이미 늦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금융당국의 딜레마다.

물론 사모대출이 곧바로 시스템 위기로 번질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시장 규모 자체는 아직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고, 2008년의 교훈이 완전히 잊힌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역사가 가르치는 것은 명확하다. 위기는 모두가 안전하다고 믿을 때, 그리고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시작된다. 사모대출은 지금 그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 AI 붐의 화려함에 취해 있을 때, 그 이면의 신용 균열을 읽는 눈이 필요하다.

opini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