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소원 분리' 뿔난 금감원 직원들…시험대 오른 '이찬진 리더십'

'검은 옷' 출근길 시위…간담회장 앞에도 일렬로 서 항의
"임원 책임져야" 젊은 직원들 부글부글…총파업까지 저울질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 관련 전 금융권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금융감독체계 조직 개편에 반대하는 직원들이 검은 옷과 마스크를 쓰고 침묵 시위를 하는 모습. 2025.9.9/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전준우 김근욱 기자 = 정부가 금융당국 조직개편으로 금융감독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 분리를 확정·발표한 데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금감원 직원들 수백 명이 출근길 '검은 옷' 시위로 강력 반대 의사를 표출하는 등 내부 반발이 고조, 이찬진 금감원장이 취임 후 한 달 만에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검은 옷' 입은 금감원 직원들..."임원들 책임져야" 반발

1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당정의 조직개편안 발표 이후 금감원 업무는 사실상 마비 상태다.

금감원 직원들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오전 8시부터 검은 옷을 입고 금감원 로비에 집결해 "금소원 분리를 철회하라"고 집단행동에 나선다. 이틀째 수백 명의 직원들이 출근길 시위에 나설 예정이다.

직원들은 이 원장이 전날 오후 2시 전 금융권 대표이사들을 소집해 연 '금융소비자 보호' 간담회장 입구에도 일렬로 피켓을 들고 서 조직개편에 따른 항의를 이어갔다.

금감원 직원들이 대규모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은 '초유의 사태'로 집행부의 대응 반응에 대한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취임 후 중점 추진하고 있는 여러 업무의 동력을 잃게 되는 동시에 임원들이 나서서 사의 표명 등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전날 출근길 피켓을 든 직원들을 마주했으나 "조직개편 입장을 밝혀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대응 없이 사무실로 향했다. 당일 오후 2시 전 금융권 대상 '금융소비자 보호' 간담회에서도 조직개편 관련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금감원 2인자로 꼽히는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직원들도 상당수다. 노조 관계자는 "원장님은 최근에 오셨다고 쳐도 수석부원장은 1년 이상 동고동락한 분 아니냐"며 "정부의 결정을 그냥 따르라는 말은 굉장히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로비에서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 분리 및 공공기관 지정 등 최근 금융감독체계 조직 개편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2025.9.9/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금감원 직원 47%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인력'..."취업 사기" 반발

금감원 직원들이 피켓 시위 등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은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는 위기의식에서다.

금감원 전체 임직원의 절반 수준인 약 47%가 변호사, 공인회계사, 보험계리사, 박사 등 전문 인력인데 업무 피로도가 높은 소비자 보호 민원 업무를 맡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상당하다.

현재 금융소비자보호처는 부원장보 2명에 약 500명 인원이 근무하는데, 별도 법인으로 분리되는 만큼 1000명으로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법인이 분리되면 현재 인원보다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데다 검사권까지 주어진다고 하니 일부 검사 인력과 제재 인력 등도 소보원 소속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 원장이 지난 8일 내부 공지를 통해 "금감원-금소원의 기능과 역할 등 세부적인 사항을 꼼꼼하게 챙기는 한편 인사 교류, 직원 처우 개선 등을 통해 여러분들의 걱정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직원들 달래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다.

특히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취업 사기"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금소원의 지방 이전설까지 나오며 위기감이 극심한 데다, 공공기관 지정에 따른 처우 악화도 예정된 수순이라는 분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소원은 지방 배치설까지 나오는 마당에 동일한 기준 하에 인사 교류가 이뤄지기 쉽지 않고, 더욱이 공공기관 지정으로 직원 급여나 복지 등이 축소될 게 뻔하다"며 "인사 교류나 처우 개선 등 원장의 메시지가 직원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 이유다"고 말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 관련 전 금융권 간담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2025.9.9/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조직개편 대응 소극적 노조위원장 '직무정지'...총파업 저울질

일단 금감원 노조는 이 원장에게 정식 면담과 임원 직속 조직개편 관련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노조의 요구에 이 원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별다른 반응이 나오지 않을 경우 준법 투쟁을 비롯해 총파업 수순까지 밟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금감원 노조위원장은 조직개편 관련 소극적 대응에 따른 '불신임'으로 직무가 정지되고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되는 등 조직 내부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금감원 안팎에서는 '총파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시 출근-정시 퇴근' 등 준법투쟁에만 나서도 업무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10일 오후 2시로 예정된 반부패·청렴 워크숍 일정도 '생산 부서의 사정'으로 취소됐다.

이 원장이 내부 갈등을 잠재우고 직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중재 방안을 내놓지 않는 한, 금융감독 업무 차질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한 금감원 직원은 "평소 잦은 야근이 일상인데, 직원들이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 등 준법투쟁만 하더라도 상당수 업무가 마비 상태가 되고 원장이 추진 중인 중점 업무들도 당연히 동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junoo568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