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시즌2] 경험과 기억, 그리고 행복
(서울=뉴스1)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 경험은 중요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여행과 같은 경험을 산다. 그런데 경험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과거의 경험은 추억이 되는데 추억은 객관적일까 아니면 같은 경험이라도 서로 다른 추억을 갖고 있을까? 부부가 여행을 가면 같은 경험을 하지만 추억은 다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젊을 때의 많은 경험을 부부가 공유하지만 기억은 다르다. 경험이라는 객관은 사라지고 기억이라는 주관이 남는 셈이다.
필자는 아내와 과거의 일을 이야기 하다 보면 다른 기억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같은 경험인데 필자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너무 많다. 아내는 기억에 남아 있고 나는 까맣게 까먹고 있으니 대화를 할 때 오해가 생긴다. 같은 경험을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 역시 많다. 그렇다고 아내의 기억이 모두 옳다고 할 수도 없다. 부부 대화에서의 마찰은 이처럼 경험과 기억이 다른 데서 비롯된다.
경험과 기억이 다름은 심리학 실험에서 입증됐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1934~2024)은 수면을 하지 않고 대장 내시경을 받을 때 환자가 60초마다 고통의 정도를 말하게 했다. 환자 A는 8분 동안 내시경이 진행되었고 환자 B는 24분 동안 진행됐다. 환자 A는 8분만에 끝났지만 끝나기 직전 고통의 정도가 8에 있었다(0은 ‘고통이 전혀 없음’, 10은 ‘고통스러워 참을 수 없음’이다). 반면에 환자 B는 10분 쯤에 8의 고통을 느끼기도 했으나 끝나는 24분에는 1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 B의 대장 내시경 시간이 A의 3배 수준이다 보니 B의 고통 총량은 A보다 훨씬 많았다. A와 B 중 누가 더 고통스러웠다고 기억할까?
예상과 달리 답은 A이다. 실험에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는 고통에 대한 기억은 대장 내시경 중 최악으로 고통스러웠던 순간과 마지막 고통 수준을 합한 평균으로 결정된다. 최악의 고통은 A, B 모두 8이고 마지막 순간의 고통은 각각 7과 1이니 평균을 내면 A와 B는 각각 7.5와 4.5가 되어 A가 B에 비해 대장 내시경에 대해 나쁜 기억을 품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고통의 기억에 지속 시간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장 내시경이 고통스러운 순간에 끝나게 된 게 A에게는 불운이었던 셈이다.
경험 자아는 지금의 고통에 대해 대답하는 자아이고 기억 자아는 전체적인 느낌에 대해 기억하는 자아이다. 우리가 해외 여행을 잘 다니다가 한 가지 불쾌한 일을 경험하게 되면 ‘이번 해외 여행 완전히 망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그 순간의 즐거운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이 망가진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기억이 전체적으로 망쳤다고 느낀 것 뿐이다. 좋은 경험을 했지만 나쁜 마무리가 기억을 완전히 흩트려놓은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끝이 좋으면 다 좋아(All's Well That Ends Well)’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실제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기억 사이에 일어나는 혼동은 우리들 삶에서 나타나는 강력한 인지적 착각이다. 이런 기억 자아는 우리들의 실제 경험을 왜곡하고 우리들의 과거 경험이 엉망이라고 판단하게 한다. 많은 좋은 경험을 했지만 한 두 가지 큰 고통이나 최근의 고통이 나의 삶을 ‘모두’ 엉망이라고 판단 짓게 만든다. 평균적으로 행복했음에도 우리는 ‘내 삶은 전체가 엉망이야!’라고 단정짓는다.
이러한 심리학적 결과가 노년을 맞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다.
우선, 인생 후반에는 과거의 일을 회상하며 대화하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부부의 대화에서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같은 경험을 했더라도 기억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논쟁을 해도 누구의 기억이 옳았는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 기억의 다름을 인정해야 오해가 쌓이지 않는다.
둘째, 기억의 인지적 착각을 극복해야 한다. 나의 삶은 전체가 엉망이지 않다. 경험과 기억을 잘 검토하면서 몇 개의 기억이 전체 삶의 기억을 왜곡하지 않았는지 살펴 보고 그 왜곡을 바로잡아 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후에 좋은 경험을 하고 이를 좋은 기억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대장 내시경 실험에서 보듯이 인생 전반이 나빴더라도 인생 후반이 좋으면 모두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골프를 칠 때도 마지막 18홀을 잘 치면 그 날 헤맸던 경험을 단번에 바꿔버린다. 골프장이 마지막 홀을 아름답게 만들거나 어렵지 않게 만들어 놓은 이유다.
경험과 기억은 다르다. 이 둘은 객관과 주관이며, 객관과 왜곡이다. 인생의 전반을 끝내고 후반에 들어서면서 전반의 삶을 평가할 때 과연 내 삶의 경험과 달리 기억이 왜곡되지 않았는지 살펴 봐야 한다. 그리고 삶의 후반전에 좋은 경험과 기억을 많이 갖도록 하면 좋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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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유비무환! 준비된 은퇴, 행복한 노후를 꾸리기 위한 실전 솔루션을 욜로은퇴 시즌2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