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치는 고수익 미끼]① 불법 대여계좌 기승 "5천만원 옵션 증거금 없어도 돼"

대여계좌 블로그 3400건…사이트 옮기며 불법 영업
금융감독 사각지대…간헐적 단속으론 한계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서울=뉴스1) 양종곤 전민 기자 = 서울 송파구에 사는 A씨는 고액의 증거금 없이도 선물거래를 할 수 있다는 선물계좌 대여업체의 광고를 봤다. 이 업체 계좌로 100만원을 입고하고 업체가 제공하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2000만원 규모의 선물거래를 했다. 그런데 홈페이지가 갑자기 폐쇄됐고 업체 관계자는 잠적했다. A씨는 투자금 전액을 잃었다.

금융감독 사각지대에 놓인 불법 유사투자금융업체가 고수익을 미끼로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대형 포털사이트에 '대여계좌 파생상품'을 검색하면 지난 18일 기준 관련 블로그가 무려 3381개에 이른다.

블로그에 소개된 글을 보면 '안전한 대여계좌', '불법이 아니다'고 투자자를 꾀어내면서 불법 대여계좌 사이트와 상담할 수 있는 번호를 버젓이 안내하고 있다. 타인에게 계좌를 빌려주는 행위는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다.

증권사와 제휴를 맺었다는 식으로 고객을 안심시키려는 글도 부지기수다. 이 때문에 미래에셋대우는 작년 7월 '대여계좌 제공 사설업체를 주의하라'는 안내문까지 게시했다.

◇불법사이트로 폐쇄되면…다른 사이트로 버젓이 영업

D대여계좌 업체에 전화를 해봤다. 상담원은 블로그에 나온 대로 "단속 없어요. 저희 불법업체 아닙니다. B증권, C증권과 제휴를 맺었거든요. 1계약당 국내 선물은 15만원, 해외 선물은 30만원만 증거금을 내면 바로 거래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저희가 보상해드리거든요". 불법을 조장하며 투자자를 현혹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금융감독원은 2012에만 82개 불법 금융투자업체를 적발했다. 거래소에 따르면 2014년 폐쇄나 수탁거부 된 불법 선물 대여계좌는 137개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이런 조치를 받은 계좌는 659개에 달한다. 투자자 피해 사례를 보면 증거금 가로채기가 가장 많았다.

문제는 유사투자금융업체는 금융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금융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근절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불법업체로 적발돼 계좌폐쇄 조치를 받더라도 회사 이름을 바꿔 다시 계좌를 내고 영업하면 그만이다. D대여계좌 업체가 블로그에 공지한 홈페이지를 접속하면 '불법 유해 정보 사이트'로 조치돼 폐쇄된 상태다. 이 업체 상담원은 "새로 개설된 홈페이지로 접속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불법 대여계좌 업체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건 금융당국이 고위험 파생상품의 일반투자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선물계좌 증거금을 1500만원으로 크게 인상한 2003년부터다. 대여계좌를 이용하면 이런 증거금 부담 없이 고수익을 낼 수 있다고 투자자를 유혹한 것이다. 실제로 10분의 1도 안되는 증거금으로 선물 옵션 거래를 할 수 있어 수요가 꾸준하다는 것도 불법 대여계좌 업체가 사라지지 않는 주요 요인이다.

현재 파생상품 투자를 위한 증거금은 2003년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선물은 3000만원, 옵션은 5000만원이다. 여기에 일정 기간 교육까지 이수해야 한다. 이 조건을 맞추지 못하거나 맞추기를 꺼리는 투자자가 불법 업체를 찾는 것이다. 파생상품은 투자위험이 큰 대신 고수익을 올릴 수 있어 일확천금을 꿈꾸는 투자자가 이 시장을 기웃댄다.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금감원·거래소·증권사, 대여계좌 감시 '한계'상황이 이런데도 금감원이 대여계좌 업체의 불법을 파악하는 것 자체부터 한계가 있다. 금감원은 금융실명제 위반을 점검할 수 있지만 본래 금융회사를 조사하는 기관이다. 대여계좌업체처럼 비금융회사를 조사할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 2012년처럼 금융실명제 문제가 부각될 경우에만 간헐적으로 점검에 나서고 있다. 금감원 단속 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거래소의 경우도 단속 권한과 조사권이 없다. 대여계좌로 의심되는 계좌를 금융당국에 신고하거나 증권사에 모니터링 강화를 주문하는 일만 할 수 있다. 증권사와 함께 계좌를 폐쇄하는 게 할 수 있는 제재의 전부다. 업체 입장에서는 다시 계좌를 만들고 영업을 재개하면 되기 때문에 제재 효과는 거의 없다.

증권사는 불법 대여계좌를 가리기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실명으로 계좌가 개설되기 때문에 대여계좌로 활용하는지 확인할 방법이 마땅찮다. 대여 계좌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폐쇄한다면 실제로는 대여계좌와 무관한 고객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일부 증권사는 수수료 수익을 위해 대여계좌 영업을 모른채하고 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작년 시카고상품거래소로부터 제재를 받은 E증권사가 대표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와 대여계좌 업체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현실적으로 알기 어렵다"며 "이를 밝힐 수 있는 길은 내부 제보뿐이다"고 말했다.

'계좌를 대여하는 행위' 자체를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금감원에 부여하는 방안도 무산됐다. 지난 2015년 국회는 부정거래행위를 규정하는 자본시장법 178조 내에 '대여계좌'를 포함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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