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애널]⑤대한민국 애널 수칙 1, No=바보=잘리는 지름길
"대세 거스르다 기관 자금이라도 빠지면…" 압박 커
외국계 "분석 타당하면 의견 달라도 OK"…그래서 돈 내고 본다
- 신건웅 기자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 지난 7일, 삼성전자가 170만원을 돌파해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올해 3분기 실적이 나쁘지 않았고,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 분할 등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한 것이 주가를 끌어올렸다.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도 호평 일색. 이미 목표가를 200만원 이상으로 올린 보고서가 돌고 있었다.
# 한 펀드매니저는 고개를 갸웃했다. 갤럭시노트7의 판매 중단 손실에 관한 분석이 빠진 것이 찜찜했다. 엘리엇의 제안만 긍정적으로 다뤘다. 당시 펀드매니저는 "삼성전자를 무조건 좋게 평가하진 않는다"면서도 "지금 분위기에선 삼성전자에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나 홀로 반대 의견을 말하면 바보가 되는 분위기"라고 했다.
◇대세면 무조건 옳다? "반대 의견 말하기 어려워"
우리나라의 대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에 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주요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가 특정 종목을 강하게 지지하면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대세와 반대로 베팅해 수익률이 올라가면 다행이다. 그러나 반대면 욕먹기 딱 좋다. 주변의 압박과 투자자 항의는 그렇다 치더라도 거액의 기관 자금이 빠져나가면 속된 말로 잘릴 수도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다 같이 수익률이 낮으면 괜찮지만, 홀로 안 좋으면 타격이 크다"고 두려워했다.
증권사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기업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업계 분위기도 살피다 보니 내용이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대형 종목일수록 쏠림은 심하다. 회사 눈치를 보느라 부정적이거나 대세와 다른 리포트를 쓰기가 쉽지 않아서다.
지난달 나온 삼성전자를 보면 '불확실성 완화, 성장 추세 유효', '오랜 디스카운트의 해소', '갤럭시노트7 단종 악재, 이미 주가에 반영' 등 제목이 비슷하다. 투자의견은 물론 목표가격도 별로 다르지 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요 보고서 2~3개만 보더라도 업계 분위기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보고서 믿은 개미투자자만 낭패
보고서를 보고 투자한 개인투자자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증권사에서 추천해 투자했는데 수익률은 형편없다.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는 정보력이 좋고, 해외 보고서도 볼 수 있어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지만, 개인은 쉽지 않다. 최근 한미약품 공매도 사례만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올해 개인투자자가 가장 많이 산 10개 종목 중 이익을 낸 곳은 한국전력이 유일하다. 가장 많이 산 LG화학은 연초부터 지난 19일까지 -28.4%다. 한미약품도 같은 기간 수익률이 -44.5%로 부진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들은 증권사 보고서를 믿고 투자하지만, 수익률은 높지 않다"며 "기관이나 외국인처럼 다른 정보를 받지 않으면 개인 입장에선 손실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외국계 "수익률만 높으면 투자의견 달라도 OK"
국내 증권사와 달리 외국계 증권사에선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한쪽으로 치우친 보고서 방향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수익률이 우선인데, 똑같이 따라가선 추가 이익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수익률이 높아지려면 미세한 차이를 정확히 드러내야 한다는 견해다.
외국계 증권사는 개별 보고서도 유료 투자자나 거액을 거래하는 투자자가 아니면 제공하지 않는다. 당연히 수익률에 기초해 의견을 낼 가능성이 높다.
한미약품을 보는 시각만 해도 그렇다. 지난해 말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이후 국내 증권사는 매수 의견을 쏟아냈다. 현대증권과 NH투자증권 등은 목표주가로 110만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씨티증권은 투자 의견을 종전 '매수'에서 '매도'로 하향 조정했다. 목표주가도 39만4000원으로 낮췄다. 김상수 씨티증권 연구원은 "현재 (국내 증권사들의) 밸류에이션은 피크세일즈(연간 최대 매출)와 신약 성공률을 글로벌 표준보다 높게 가정했다"며 개발 중인 신약 가치를 국내 증권사보다 현저히 낮게 평가했다. 현재 한미약품의 주가는 40만원 초반으로 씨티증권이 제시한 가격에 가깝다.
홍콩에 있는 외국계증권 펀드매니저는 "정확한 분석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분석 내용이 비슷할 수는 있지만, 다르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keon@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