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그래미가 연 '아시아팝'의 좁은 문
- 황미현 기자

(서울=뉴스1) 황미현 기자 = 최고 권위의 그래미 어워즈가 마침내 '최우수 아시안 팝 뮤직' 부문을 신설하기로 했다. 보수성과 백인 중심주의라는 오랜 비판 속에서 나온 결정이다. 그래미가 아시아 대중음악을 공식 조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 기념비적이다.
그러나 세부 조건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래미는 자격 요건으로 'K팝, J팝, C팝 등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기준을 명시했다. 아시아 팝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이 규정 이면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묘한 역설이 숨어 있다.
장벽은 다름 아닌 '언어'에서 발생한다. 글로벌 톱 반열에 오른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트와이스를 보자. 이들이 빌보드 메인 차트 상위권에 올랐을 때 내세운 주된 무기는 영어로 된 가사였다. 그러나 그래미에서 이들이 부른 영어 곡으로는 '아시안 팝 뮤직' 부문에서 수상하기 어렵다. 한국 시스템 안에서 트레이닝을 받은 한국인 멤버들이 '영어로' 노래한다는 이유로 아시아팝 부문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K팝이 '글로벌 노멀'로 영토를 확장하는 현 상황에서, 언어를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새로운 형태의 유리천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 제도의 양면성은 새로운 기회를 시사한다. 만약 이들이 현재의 전략을 수정해 한국어를 적절히 넣은 곡을 발표한다면 '아시안팝' 부문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수 외신들 역시 '첫 아시안팝'의 주인공으로 대부분 K팝 그룹을 언급하고 있다.
결국 이번 신설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래미의 변화는 시장의 속도보다 늘 한 걸음씩 느렸다. 이번 결정 역시 완벽하지 않다. 아시아 음악을 메인스트림으로 인정하기보다 특정 카테고리에 가두려는 심산이 아니냐는 의구심, 즉 '찝찝함'이 남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좁은 문을 폄하만 할 수는 없다.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팝을 위한 방이 열렸다는 점 자체는 고무적이다. 향후 시장의 지형도를 바꿀 작은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라틴팝 앨범 부문을 따로 두었던 그래미는 지난 2월 라틴 팝 스타인 배드 버니에게 대상 격인 올해의 앨범상을 수여했다. 그래미 사상 처음으로 스페인어 앨범이 대상을 타는 순간이었다. 그래미는 2025년에는 비욘세에게 '올해의 앨범상'을 줬다. 그래미에서 30차례 넘게 상을 받은 비욘세마저도 올해의 앨범상 트로피를 5번째 도전 만에 품에 안았다.
이런 흐름은 아시안 팝 부문 신설에 긍정적인 신호탄이다. 하지만 이것이 유리천장으로 남게 하지 않으려면, 이 부문을 본상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로 활용해야 한다. 지금은 제한적인 좁은 문일지라도, 그 문을 열고 들어설 아티스트들이 축적할 성과는 그래미의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하는 사다리가 되지 않을까. 찝찝한 조건 속에서도 조심스러운 낙관을 품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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