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함'서 '이븐'까지…케이타 "좌절때마다 초심 물었죠" [물 건너온 아이돌]①
그룹 이븐 일본 오사카 출신 케이타 인터뷰
- 황미현 기자
(서울=뉴스1) 황미현 기자 = 일본 오사카에서 온 소년이 한국에서 보낸 7년, 그리고 연습생 9년의 세월을 견뎠다. 그룹 이븐의 리더 케이타(24)는 서바이벌을 통해 생긴 '독기'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현재는 아티스트로서의 '확신'을 노래하는 중이다. 최근 5인조로 재편한 이븐. 그 중심에서 팀을 이끄는 외국인 리더, 케이타를 만났다.
케이타는 어머니가 보낸 오디션 영상 덕분에 K팝에 입문했다. 빅뱅을 좋아하던 부모님과 춤을 좋아하는 여동생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K팝을 접했다. 그의 어린 시절 꿈은 파일럿이었지만 가족 내 분위기와 어머니의 오디션 영상 촬영이 계기가 되어 K팝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YG엔터테인먼트에서 첫 연습생 생활을 한 케이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갔고, 201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한국에 머물며 데뷔를 위해 달려 나갔다. 연습생 생활 중 'K팝 아티스트'에 대한 케이타의 꿈은 점점 몸집을 키웠다. 무대 위 반짝이는 K팝 선배들의 모습은 케이타의 마음 속 무언가를 건드렸고, 좌절 앞에서도 주저앉지 않는 힘이 됐다.
YG엔터테인먼트 연습생 6년 차에 'YG보석함'에 출연했던 케이타는 최종 데뷔조에 들지 못하면서 첫 좌절을 맛봤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는 대신 '해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다시 일어섰다. 그렇게 2년의 연습 기간을 더 거쳐 레인컴퍼니에서 싸이퍼로 데뷔했고, 2년이 지난 후에는 엠넷 '보이즈플래닛'에 도전했다. 케이타는 이 프로그램 덕분에 2023년 이븐으로 데뷔에 성공, 현재까지 큰 사랑을 받으며 활동 중이다.
최근 뉴스1을 찾은 케이타는 지난 2024년 한복 인터뷰를 떠올리며 "이 장소 기억난다, 그때 갈비찜을 제일 좋아한다고 인터뷰했었다"라며 웃은 뒤 "오늘은 내 이야기를 풀어낼 생각에 조금은 긴장되지만 잘해보겠다"라고 말했다.
-자기소개를 부탁해요. 한국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한국어를 잘하네요.
▶안녕하세요. 이븐의 케이타입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왔고 2001년생, 만으로 24살이에요. 사실 오사카는 한국의 부산처럼 사투리가 좀 심한 편이라 평소 쓰던 언어들이 다 사투리였거든요. 가끔 행사 때문에 도쿄에 가면 "저 사투리 쓰는 애는 뭐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어요. 한국에 와서 생활하다 보니 사투리를 많이 쓰는 편이었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됐어요.(웃음)
-한국 생활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연습생 생활이 굉장히 길다고 알고 있어요.
▶한국에서 아예 생활을 시작한 건 2019년이고요. 연습생 생활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13년부터 시작했어요. 초~중학생 때는 학교에 다녀야 해서 평일에는 일본 지사 연습실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주말이나 방학 때만 한국에 와서 인사드리고 연습하는 생활을 반복했죠. 고등학교 마칠 무렵인 2019년에 본격적으로 한국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어린 나이에 타국을 오가며 연습생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잖아요. 계기가 궁금해요.
▶부모님이 빅뱅 선배님을 정말 좋아하셨어요. 여동생 두 명도 춤을 먼저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죠. 사실 제 원래 꿈은 파일럿이었는데, 어느 날 학교 다녀오니 어머니가 카메라를 들고 "춤추고 노래해 봐"라고 하셨어요. 알고 보니 그게 오디션 영상이었죠. 저도 어머니를 따라 일본에서 하는 빅뱅 선배님 콘서트를 본 적이 있는데, "음악 하는 사람들이 정말 멋있다"고 느껴서 자연스럽게 매료됐습니다.
-'YG 일본 지사 최초의 연습생'이 케이타였다고요. 이 타이틀이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일본 지사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최초로 준비한 일본인 연습생이다 보니 부담감이 분명히 있었어요. 이후에 연습생 친구들이 더 생기면서 책임감이 더 커졌죠. 특히 그 안에서 리더 역할을 자주 맡게 되면서 "내가 인정을 받아야 팀원들도 의욕이 생긴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연습생 기간만 9년이에요.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어린 시절 평가를 받다가 슬럼프가 온 적이 있어요. 저는 랩, 보컬, 춤 다 잘하고 싶은 성격인데 "다 할 거면 제대로 하든지, 아니면 아예 하지 마라"는 소리를 듣고 상처를 받기도 했죠. 하지만 그 상처가 오히려 자극됐어요. "왜 내가 포기해야 하지? 나는 다 할 거야"라는 마음으로 더 열정적으로 임하게 됐습니다.
-'YG 보석함' 탈락이 첫 번째로 맞이했던 좌절이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K-팝 생활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당시 18살이었는데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나'하는 고민이 컸죠. 고등학교 진학 대신 연습생에 올인했던 상황이라 미련도 남았고요. 그때 부모님께서 "우리가 시킨 거니까 힘들면 안 해도 된다"고 먼저 말씀해 주셨는데, 거기서 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아니다, 나는 성장하고 있고 인정받을 때까지 끝까지 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하고 레인컴퍼니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레인컴퍼니 시절에 한국어가 비약적으로 늘었다고 하던데요.
▶네, 당시 회사에 일본어 가능한 분이 한 분도 안 계셨거든요(웃음). 김밥집에 갔는데 메뉴를 읽을 줄 모르니 옆 사람이 시키는 걸 보고 따라서 "이거 하나 주세요"라고 하곤 했죠. 소통해야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절실함 때문인지 서너 달 만에 실력이 확 늘더라고요. 회사에서도 "너 갑자기 말이 왜 이렇게 늘었냐"며 놀랄 정도였죠.
-싸이퍼로 데뷔했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어요. 이미 데뷔했던 가수로서 다시 연습생 신분이 되어 서바이벌에 나가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사실 마음이 정말 복잡했어요. 데뷔만 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고, 팀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도 컸죠. 하지만 저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어요. 싸이퍼 때의 경험이 결과적으로는 아쉬울 수 있어도, 그 시간 동안 제가 배운 것들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그 소중한 경험을 헛되게 만들지 않으려면 다시 도전해서 증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습생 9년과 두 번의 데뷔, 좌절의 순간들을 버티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저를 버티게 한 건 오기였던 것 같아요. 평가가 좋지 않거나 탈락했을 때, '왜 나를 몰라줄까' 원망하기보다 '내가 가진 걸 다 쏟아부어서 반드시 인정받고야 말겠다'는 독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런 단단한 마음가짐이 이븐의 리더로서도 발휘되는 것 같아요.
▶맞아요. 리더를 하다 보면 멤버들 앞에서는 울 수도 없고 속상할 때가 많잖아요.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일본에서 여기까지 왔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요. 그러면 답은 항상 정해져 있거든요. 싸이퍼 멤버들과 헤어질 때는 마음이 정말 아팠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꼭 잘 되자"고 약속했어요.
<【물 건너온 아이돌】 이븐 케이타 편②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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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요즘 K팝 아이돌 그룹에서 외국인 멤버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니, K팝 그룹들이 이젠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타깃으로 하면서 이른바 '바다 건너온' 멤버들은 팀 구성의 '필수 조건'이 됐을 정도죠. 성공의 꿈을 안고 낯선 한국 땅을 찾은 외국인 멤버들은 과연 어떤 즐거움과 고민 속에 현재를 지내고 있을까요? [물 건너온 아이돌] 코너를 통해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