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카페, 네 개의 대화…BIFF 개막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 [시네마 프리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리뷰
- 장아름 기자
(부산=뉴스1) 장아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거창한 사건도 극적인 전개도 없다. 한 카페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뒤 떠난다. 김종관 감독의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네 개의 대화로 각기 다른 관계와 삶의 한순간을 들여다본다. 대화가 남긴 짙은 여운은 그 너머의 시간까지 짐작게 만든다.
6일 개막하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하나의 계절이 흐르는 동안 한 카페에 머물다 간 낮과 밤의 대화를 담은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다. '최악의 하루'(2016) '더 테이블'(2017) '조제'(2020) 등을 연출한 김종관 감독의 신작으로 김민하, 주종혁, 한선화, 장률, 심은경, 이희준, 전소영, 김동휘가 출연한다.
영화는 '한여름밤의 꿈' '아직 나인 사람들' '이·순·불' '가을 이야기' 등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같은 카페를 배경으로 하지만 인물도 관계도 대화의 성격도 제각각이다. 다른 시간대에 카페를 찾은 유진(김민하 분)과 현오(주종혁 분), 중학교 동창인 상미(한선화 분)와 영민(장률 분), 웹소설 작가 혜진(심은경 분)과 영화감독 동남(이희준 분), 오랜 연인 나경(전소영 분)과 종수(김동휘 분)의 이야기가 차례로 펼쳐진다.
네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대화'다. 영화는 인물들의 과거를 친절하게 설명하거나 관계의 전말을 모두 보여주지 않는다. 관객에게 주어진 것은 카페에서 오가는 말과 표정, 행동이다.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고 어디로 향하려 하는지 조금씩 드러난다. 이 같은 구성은 사람간의 대화, 그 사이에 드러나는 감정과 관계 등 김종관 감독이 전작에서 꾸준히 탐색하고 변주해 온 영화 세계와 맞닿아 있다.
분위기는 챕터마다 달라진다. 첫 번째 이야기는 마치 꿈결 같다. 시계를 좋아해서 스위스 유학까지 꿈꾸는 현오와 밤의 산책을 이야기하는 유진은 같은 카페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지난다. 상미와 영민의 재회는 엉뚱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흐름의 대화로 웃음을 만든다. 혜진과 동남의 만남에서는 능청스러운 동남과 그를 경계하는 혜진 사이의 말들이 티키타카처럼 오간다. 마지막으로 오랜 연인인 나경과 종수는 서로의 새로운 꿈을 이야기하며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이처럼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하나의 카페에 서로 다른 온도의 이야기를 배치한다. 누군가는 어긋나지만 누군가는 처음 만나고, 누군가는 오랜만에 재회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래된 관계의 끝에 서 있다. 사랑이나 관계를 하나의 형태로 규정하기보다 각기 다른 시점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대화로 보여준다. 김종관 감독이 기자간담회에서 "이 영화는 4개의 대화만 있다"며 "대화라는 하나의 단면을 통해서 어디서 왔고 흘러갈 것인지 상상하게 하고 그다음에 뭔가를 관객이 그릴 수 있는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고 설명한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네 이야기가 흘러간 카페 역시 단순한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같은 공간도 누가 앉아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갖는다. 후반부에는 영화가 보여준 공간과 이야기의 경계를 달리 바라보게 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현실과 꿈, 창작된 이야기가 겹쳐지는 방식이다. 이를 명확하게 설명하거나 결론 내리기보다 관객에게 여지를 남긴다. 김 감독 역시 "영화에는 그들의 사연도 있고 이들이 만들려는 영화도 있고 꿈도 현실도 있다"며 "이런 것들이 낮과 밤처럼 대비가 되지만 연결도 돼 있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큰 사건 대신 대화와 순간을 택한 영화다. 김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두고 "작고 사소함에 대한 이야기"라고 표현한 것처럼 영화 역시 끝까지 작은 순간을 바라본다. 관계의 시작과 재회, 변화와 끝을 담담하게 펼쳐낸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작년과 제작년 개막작이 제작 규모 측면에서는 올해 작품보다 큰 작품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올해는 규모와 무관하게 작품이 갖고 있는 의미와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며 "이 작품은 한 창작자가 고심하고 꼼꼼하게 설계해서 자신만의 감성과 세계를 빚어낸 빼어난 작품"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상영 시간 80분. 11월 극장 개봉.
aluem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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