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사랑', 봉준호·박찬욱→이창동이 탐구한 '사회와 인간' [시네마 프리뷰]

23일 개봉 영화 '가능한 사랑' 리뷰… 넷플릭스에선 11월 6일 공개

'가능한 사랑' 스틸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가능한 사랑'(감독 이창동)은 실제 사건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듯한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가 'SP 중공업 사건'으로 부르는 사건은 2009년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 사태를 암시하며 주인공 미옥(전도연 분)의 남편 호석(설경구 분)은 노동자로서, 회사의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와 파업, 그리고 공권력이 동원된 강제진압 이후에 찾아온 정신적인 트라우마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움을 겪는 인물이다.

'가능한 사랑' 스틸
'가능한 사랑' 스틸
'가능한 사랑' 스틸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라는 에피그래프로 문을 연 영화는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호석과 미옥, 그리고 아들 철의 모습을 그리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누군가의 장례식이다. 막상 장례식장 주차장에 도착하자 호석은 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리고, 미옥은 하는 수 없이 철만 데리고 가 조문한다. 빈소 안에서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 분)가 장례식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곳은 호석 옛 동료의 장례식장이었고, 영화는 미옥과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장례식의 주인공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음을 시사한다.

머뭇거리던 호석은 뒤늦게 장례식장에 들어와 인사를 한다. 이어 동료들의 옆에 앉아 술을 마시려고 뻗는 그의 손을 아내 미옥이 막아선다. 예지는 술잔을 뺏기고 빼앗는 부부의 실랑이를 촬영하고, 불쾌함을 느낀 호석은 그런 예지를 보고 "재밌느냐"고 소리를 지른다. 호석과의 실랑이 끝에 담배를 갖고 밖으로 나온 미옥은 주차 중인 차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 그러던 중 안 그래도 살이 빠진 탓에 헐겁게 끼워져 있던 결혼반지를 떨어트리고, 미옥의 앞에 주차한 상우(조인성 분)는 적극적으로 그의 반지를 찾아준다. 알고 보니 상우는 예지의 남편이었고, 그렇게 두 부부의 인연이 시작된다.

'가능한 사랑'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배경을 설명하고 앞으로 펼쳐질 네 사람의 관계를 예고하는 듯한 오프닝, 예지의 카메라에 담기는 호석과 미옥 부부의 이야기와 회상 장면이 교차하는 중반부, 호석-미옥 부부가 격렬한 감정의 파고를 일으키는 상우 별장에서의 부부 동반 휴가 시퀀스들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것은, 예지와 미옥의 관계에서 불거지는 카메라의 재현 윤리를 건드리는 지점들이다. 미옥을 대하는 예지의 태도와 그런 예지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미옥의 모습은 피사체를 대상화하는 창작자의 태도에 대한 감독의 비판적인 시각이 반영됐다.

하지만 영화가 두 여자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창동 감독은 두 부부의 캐릭터와 이들이 맺는 관계를 통해 빈부와 계급의 차이, 더 나아가 각자가 처한 위치와 상황으로 인해 발생하는 차이가 인간 사회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런 핸디캡을 가진 인간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과 연대를 이루는 것이 가능한지, 결국 자기 입장에서의 '가능한 사랑'만을 하는 것이 아닌지를 묻는다.

'가능한 사랑'은 노동자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만드는 배경을 썼을 뿐 아니라 해고 노동자들이 파업과 강제 진압의 경험으로 인해 받는 고통을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호석의 캐릭터를 통해 구체화하는데, 설경구의 묵직하면서도 섬세한 연기가 관객들에게 고통을 함께 체험하게 하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가능한 사랑'
'가능한 사랑'

더 많은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 더 큰 자유가 주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대가만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노동자는 쉽사리 소외되는 존재다.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던 감독의 베니스 국제영화제 수상 소감처럼 '가능한 사랑'이 그려낸 어느 노동자 부부의 이야기는 '가능한 사랑'의 한계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차이를 넘어 '우리'에 대해 재고할 시간을 준다. 어쩌면 AI로 인해 인간 노동의 가치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영화를 접할 대다수의 사람이 가까운 미래에 호석과 미옥, 그들의 동료들과 같은 상황에 부닥칠지 모른다.

여주인공 전도연의 연기가 마음을 지독하게 끈다. 과연 '칸의 여왕'답다. 영화 말미, 주인공 미옥의 하는 의외의 행동은 유독 절절하고 처절하게 느껴지는데, 미옥의 인생을 오롯이 짊어진 전도연의 빛나는 연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자본주의 시대 우리 사회의 계급과 빈부격차를 논하는 이창동 감독의 시각을, 앞서 나온 봉준호, 박찬욱 두 감독의 영화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상영 시간 164분. 오는 23일 극장 개봉 하며, 11월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