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반느', 아련하고 소중하다…향수 자극하는 멜로 수작 [시네마 프리뷰]

20일 공개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 리뷰

'파반느' 스틸 컷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영화화한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감독 이종필)는 80년대였던 원작의 배경을 현재로 옮겨 이야기를 진행한다. 독특한 점은 배경이 현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90년대의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점이다. 이는 오히려 보편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자 하는 영화의 본래 의도와 맞아떨어지며, 특유의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몰입을 끈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라는 경록(문상민 분)의 독백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배신으로 부모님의 사랑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목도한 경록은 표정을 잃은 채 별다른 목표나 지향점 없이 살아가는 청춘이다. 그는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록 음악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요한(변요한 분)과 친구가 된다.

'파반느' 스틸 컷
'파반느' 스틸 컷

그러던 중 경록은 '공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여직원 미정(고아성 분)과 마주치고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정직원인 미정은 취업 성적 1등으로 입사했지만, 그리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외모와 잔뜩 위축돼 있는 성격 때문에 지하로 밀려나 허드렛일을 전전하는 인물이다. "박복한 아이"라는 소개에도 불구하고, 경록은 미정에게 가는 관심을 접을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선물 배달을 해야 하는 미정을 도와주려 따라나섰던 경록은 연주장에서 문틈 사이로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감상하는 미정의 모습에 반한다.

요한은 행여 미정이 상처받을까 봐 미정을 향한 경록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경록의 마음은 확고해진다. 결국 요한은 혼자 끙끙 앓는 경록을 위해 미정을 '켄터키 호프'로 데리고 온다. 그 뒤로 경록과 미정은 친구가 되고, 조심스럽게 설레는 감정을 주고받는다. 백화점 사람들은 외톨이인 미정의 옆을 경록이 지키자, 의구심 가득한 눈길을 보낸다.

'파반느'는 '멜로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다. 거대한 블록버스터 영화나 상업용 프랜차이즈 영화가 대세로 자리 잡기 전의 멜로 영화들, 예컨대 한국에서는 '8월의 크리스마스'(1998)나 '봄날은 간다'(2001) 같은 허진호 감독의 초창기 작품들이 갖고 있던 미덕을 계승한다. 실제로 이종필 감독은 '봄날의 간다' 속 어느 대사를 '파반느'에서 오마주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만의 귀여운 애교다. 그뿐 아니라 '파반느'는 80~90년대 홍콩 영화나 일본, 대만 등 아시아권의 다양한 멜로 영화와도 맞닿아 있는 듯한 느낌을 풍긴다. 이는 전반적으로 빈티지한 미술과 색감, 아련하게 느껴지는 화면, 인물들의 비극적인 서사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 내는 모종의 분위기에서 비롯된다. 현재 시점의 이야기지만, 과거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 역시 영화 특유의 몽글하고 아련한 무드와 무관하지 않다.

'파반느' 스틸 컷
'파반느' 스틸 컷

배우들의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은 영화다. 고아성은 미정이라는 인물이 지니고 있는 고아한 영혼의 예쁨을 잘 표현했다. 초반의 헝클어진 모습은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수 있으나, 갈수록 캐릭터의 매력이 잘 보이는 연기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문상민은 '발견'이라 할만한 면모를 보여준다. 잘생긴 외모도 외모지만, 자신과 어울리는 배역을 120% 소화해 관객에게 가닿을 수 있는 순수한 청춘의 표상을 완성했다. 변요한 역시 그만이 할 수 있는 의뭉스럽고 외로운 내면을 가진 인물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순수한 사랑의 가치와 청춘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논하는 것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처럼 낡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시대다. 사랑은 연애 프로그램으로 대체되고 젊은이들은 '무기력하고 멍청하다'며 조롱당한다. 하지만 '파반느'는 용감하게도, 숨김없는 태도로 사랑과 청춘을 논한다. 사랑에 빠져 행복한 어린 남자의 얼굴 정면을 카메라 안에 담아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스킨십 장면 없이 함께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남녀의 모습만으로 두 사람의 충만한 감정을 오롯이 실어낸다. 실력파 상업 영화 감독으로 여겨졌던 이종필 감독은 다분히 "개인적인 영화"인 '파반느'를 통해 그간 꼭꼭 숨겨뒀던 자기만의 오랜 취향과 감수성의 산물을 살포시 펼쳐놓았다. 그 앞에 앉은 관객들은 미정의 아기자기한 도시락을 보고 눈을 뗄 수 없었던 경록의 시점이 되어, 영화를 가만히 음미해 보게 된다. 상영 시간은 113분이다. 20일 개봉.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