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심은경, 비일상을 통해 치유 받다…'여행과 나날' [시네마 프리뷰]
10일 개봉 '여행과 나날' 리뷰
- 고승아 기자
(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 '여행과 나날'은 고요하고 잔잔한다. 이런 고요한 일상에 '비일상적'인 경험인 여행을 넣어 스스로가 가진 '벽'을 넘어서고자 한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여행과 나날'(감독 미야케 쇼)은 어쩌면 끝이라고 생각한 각본가 '이'(심은경 분)가 어쩌다 떠나온 설국의 여관에서 의외의 시간을 보내면서 다시 시작되는 2025년 겨울, 일상 여행자들과 함께 떠나는 꿈같은 이야기다.
영화는 각본가 '이'가 쓰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이'는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우연히 한 시골에서 만나는 내용을 써 내려간다. 여자는 동네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접근이 금지된 듯한 오솔길을 찾아내 들어간다. 산골을 넘어가자 파도소리만 치는 바다가 나오고, 거기에서 남자를 만난다. 두 사람은 바다를 바라보며 "다시 살아난 느낌"이라고 말한다. 이어 한참을 걸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던 두 사람은 폭우가 쏟아지던 날 다시 만나 파도를 만끽한다. '이'는 이러한 내용이 담긴 영화를 한 학교에서 시사로 선보인 뒤 관객과 대화를 나누다 자신이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말'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고 되뇐 '이'는 혼자 '설국' 같은 동네로 여행을 떠난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눈이 휘몰아치는 한 산속에서 오래된 여관을 찾아 주인 벤조(츠츠미 신이치 분)를 만나게 된다.
'여행과 나날'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는 구성을 취한다. 1부에서는 '이'가 만든 영화를 보여주고, 2부에서는 '이'가 직접 여행을 떠나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낸다. 영화는 여행, 이방인, 낯섦 등의 키워드를 섞어 우리가 겪는 평범한 일상을 비틀고자 한다. 이에 큰 사건은 없지만 일상에 이방인들이 등장해 균열을 낸다. 그래서 영화 1부에서 등장하는 이방인 여자의 행동, 2부에서 '이'가 여행을 하며 겪는 사건들은 판타지같이, 꿈처럼 다가온다.
특히 '이'가 오두막 같은 여관에서 주인 할아버지인 벤조와 어색한 대화를 나누고, 벤조가 작품에 자기 여관을 배경으로 쓰면 손님이 더 많이 오지 않겠냐는 엉뚱한 요청을 한다. 급기야 두 사람은 눈이 펑펑 내리는 한 겨울에 같이 잉어를 잡으러 나간다. 그런데 오히려 이방인인 '이'는 이러한 비현실적인 경험을 통해 치유를 받는다. 작금의 현실, 모국어가 아닌 언어, 현대인의 불안정함을 넘어서며 한층 가벼워진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여름과 겨울, 극과 극의 계절감을 스크린에 그대로 담아냈다. 마치 ASMR 같기도 한 파도 소리, 눈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고요한 영화관을 감쌀 때, 관객들도 그곳에 서 있는 듯한 체험을 준다. 오케스트라 사운드도 여기에 힘을 보탠다.
이방인으로 분한 심은경은 마치 제 옷을 입은 느낌이다. 미케다 감독은 일본인 중년 남성이었던 원작 주인공을 한국인 여성으로 바꿔 심은경을 캐스팅했다. 특유의 담백하고 현실적인 연기로 '이'의 내면과 외면을 완벽하게 그려낸 심은경의 모습이 특히 돋보인다. 또한 심은경은 이번 작품에서 일본어와 함께 한국어로 내레이션을 하며 영화의 의미를 더해 눈길을 끈다. 영화는 제78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상영시간 89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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