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신비롭고 오묘한 '가부키'의 세계…日의 '패왕별희' [시네마 프리뷰]

19일 개봉 영화 '국보' 리뷰

'국보' 캐릭터 스틸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국보'는 일본 실사 영화 역사상 두 번째 천만 영화로, 지난 10일까지 1207만 명의 관객을 돌파하며 신드롬급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다. '춤추는 대수사선 극장판 2'(2003)의 흥행 수익 173.5억 엔을 차주 중에 넘으면 실사 영화 역대 흥행 1위에 등극할 전망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는 연출자가 재일 한국인 이상일 감독인 점 때문에 관심을 받고 있다. 이상일 감독은 재일동포 3세로 '훌라걸스'(2003) '용서받지 못한 자'(2013) '분노'(2016) 등의 작품을 선보이며 일본을 넘어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연출자다.

'국보'의 소재는 일본의 전통 예술인 가부키, 그리고 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맡는 남성 배우인 '온나가타'다. 영화는 두 명의 '온나가타'가 '국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엎치락뒤치락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여성 역할을 하는 남자들을 소재로 하고 있어 자연스레 경극 배우를 소재로 한 홍콩 영화 '패왕별희'(1993)가 떠오를 수 있지만, '국보'는 '패왕별희'와 명백히 다른 길을 가며 차별화를 이뤘다.

영화는 1964년 나가사키 어느 저택에서 열린 야쿠자 신년회에 가게 된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 분)의 모습을 따라가며 시작한다. 한지로는 그곳에서 두 명의 젊은 배우가 가부키 극인 '세키노토'를 선보이는 것을 보게 되고, 거기서 공주 역을 맡은 이를 게이샤로 착각해 칭찬한다. 알고 보니 공주 역을 맡은 인물은 이 자리의 주최자인 나가사키 타치바나파의 두목 타치바라 곤고로(나가세 마사토시 분)의 아들 키쿠오(쿠로카와 소야 분)였다.

'국보' 캐릭터 스틸
'국보' 캐릭터 스틸

키쿠오는 야쿠자 두목의 아들답게 재능만큼이나 기세가 있는 소년이다. 그는 눈앞에서 아버지가 죽임을 당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난 뒤 복수를 감행했다가 여러 고초를 겪게 된다. 그리고 1년 뒤, 키쿠오의 신세를 딱하게 여긴 한지로가 그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여 아들 슌스케(코시야마 케이타츠 분)와 함께 가부키를 배울 수 있게 해준다. 키쿠오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봤던 한지로는 3대 한지로가 될(자신의 가부키 예명을 물려받게 될) 슌스케와 함께 키쿠오를 '온나가타'로 키우려고 마음 먹는다.

키쿠오는 누구보다 열심히 가부키를 익힌다. 처음에는 키쿠오를 견제했던 슌스케도 마음을 열고,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가 돼 가부키계의 유망주로 성장한다. 이들은 출중한 외모와 탁월한 실력으로 '한야 콤비'라 불리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특히 두 사람 중에서도 타고난 재능에 근성까지 겸비한 키쿠오의 연기는 놀라움을 준다. 하지만 가부키 흥행의 주관사 미츠토모의 직원 타케노(미우라 타카히로 분)는 키쿠오에게 말한다. "넌 외부인이야, 억울하게 끝나는 건 너야." 혈통이 중요한 가부키계의 문화 탓에 키쿠오의 재능이 아무리 출중해도 슌스케의 입지를 뛰어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영화는 외부인인 키쿠오가 '국보'라 불리는 경지의 가부키 배우로 인정을 받기까지의 삶을 조명한다. '국보'의 가장 큰 매력은 일본만의 독특한 색깔로 가득한 가부키 극이다. 영화는 신비로운 비주얼과 기묘한 음악, 흥미로운 이야기가 어우러진 가부키 극의 일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관객의 몰입을 끈다. '세키노토'를 비롯해 '도죠지의 두 사람' '두 명의 등나무 아가씨' '소네자키 동반자살' '백로 아가씨' 등의 전통 가부키 레퍼토리가 두 주인공의 서사와 겹치고 반복돼 의미를 생성한다.

'국보' 캐릭터 스틸
'국보' 캐릭터 스틸
'국보' 스틸 컷

3시간에 육박하는, 175분이나 되는 긴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간다. 볼거리가 많은 덕이다. 다소 도식적인 구조 속에서도 이상일 감독은 클리셰를 벗어나려는 듯한 뉘앙스를 자주 보여준다. 특히 상대에 대한 격렬함 대신 존중과 예의를 쌓아가는 키쿠오와 슌스케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각자의 방황을 하지만, 결국 예인으로서 가야 할 길에 집중하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두 사람의 모습은 '장인정신'과 '신념'을 중시하는 일본답다.

"가부키가 싫고 원망스러워 죽겠지? 허나 그래도 돼, 그래도 계속 서야 돼, 그래도 무대에 서는 게 우리 배우의 운명이야"라고 말하는 극중 최고의 온나가타이자 인간 국보 오노가와 만기쿠(타나카 민 분)의 말에 영화의 메시지가 담겼다. 오는 19일 개봉한다.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