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다룬 '결혼 피로연' 투박하지만 정성스레 빚은 진심 [시네마 프리뷰]
24일 개봉 영화 '결혼 피로연' 리뷰
- 고승아 기자
(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이안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원작은 1993년에 개봉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지금, 앤드류 안 감독은 과감하게 리메이크를 택했다. 원작의 게이 커플에서 나아가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의 동성 결혼, 시험관 등을 다루며 2025년에 성소수자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24일 개봉한 '결혼 피로연'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두 동성 커플이 벌이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냈다. 이 작품은 동성 커플의 가짜 결혼 계획에 눈치 100단 K-할머니가 등장하며 벌어지는 예측불가 코미디 영화로, 한국계 미국인으로 '스파 나잇', '브리저튼 시즌3' 등을 연출한 앤드류 안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미국 시애틀의 한 LGBTQ+ 커뮤니티 행사에 참석한 레즈비언 커플 리(릴리 글래드스톤 분)와 안젤라(켈리 마리 트란 분)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딸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안젤라의 어머니는 행사에서 상을 받으며 자랑스러워한다. 게이인 민(한기찬 분)은 자신의 연인인 크리스(보웬 양 분)와 행복한 동거 생활 중이지만, 큰 기업의 손자이기도 하다. 부모를 잃은 민은 한국에 있는 할머니 자영(윤여정 분)에게 학생 신분이 끝난 뒤 영주권이 없으니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한다. 민은 결국 크리스에게 야심 차게 청혼하지만, 크리스는 영주권 때문이냐며 거절한다. 한편 리는 시험관으로 아이를 낳아 안젤라와 가족을 꾸리길 원하나, 거듭된 시험관 실패와 비용 문제로 지쳐가고, 안젤라는 가치관 차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던 민은 시험관 비용을 내주고, 동시에 미국 거주 연장을 위해 안젤라와의 가짜 결혼을 계획한다. 안젤라는 "말이 되냐"며 반문하지만, 리의 절박함에 동의하게 된다. 민은 자영에게 영상 통화로 결혼할 거라고 선언하고, 자영은 불쑥 미국을 찾아온다. 자영은 민과 안젤라를 보더니 단번에 '가짜 결혼 작전'을 꿰뚫어 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영은 민과 안젤라의 한국 전통 혼례를 준비해 나간다.
이번 영화는 앤드류 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만큼, 한국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결혼 피로연'에 중점을 뒀다. 이미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미국 시애틀이지만, 한국 기업의 손자인 민이 동성 결혼을 하는 것은 한국 정서상 어렵다. 영화는 이러한 한국과 미국의 문화가 교차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표현하며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설득하고자 한다. 여기에 쉽게 다루기 어려운 소재도 과감하게 차용해 여러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고자 한다. 다만 이 영화가 선택한 엔딩에 대해선 의견이 갈릴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이들의 선택에 대해 다른 이가 쉽사리 말을 얹기 어렵단 생각도 든다.
영화는 상당히 투박하다. 인물간의 갈등과 결정이 단순한 편이라 이들의 감정선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게 하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영화 곳곳에 배치된 유머가 자연스레 웃고, 울고 즐기게 한다. 특히 민과 안젤라가 폐백을 하면서 밤과 대추를 받은 뒤, 각각 무슨 성별을 상징하는지 궁금해하는데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이를 모른다. 이에 크리스의 사촌이 "논바이너리(자신의 성정체성을 주체적으로 규정하는 사람) 15명 낳나 봐!"라고 말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동시에 자영의 입을 빌려 굉장히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가장 인상 깊은 지점은 윤여정의 연기다.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지점이 일차원적인 연출일 수 있는데, 현실감 있는 연기로 극에 녹아들게 했다. 더불어 결혼식을 준비하는 동안 가만히 넋을 놓고 있는 듯한 모습이 오랫동안 포착되는데 복잡한 심경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또한 자영은 민이 자기 아들이 아닌 손주인 만큼,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으면서도 손주를 진심으로 아끼는 그 마음을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앞서 윤여정은 한 외신과 인터뷰를 통해 아들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하며, 이번 영화 대본 작업에도 참여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러한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듯하다.
두 동성 커플과 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가족의 형태에 대한 질문과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을 던지는 '결혼 피로연'이다. 24일 개봉. 러닝타임 103분.
seung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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