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공책]'4등'이 어때서? 폭력 사이클의 아이러니
영화 '4등' 리뷰
- 장아름 기자
(서울=뉴스1스타) 장아름 기자 = 1등만 될 수 있다면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영화 '4등'(감독 정지우)은 재능은 있지만 만년 4등인 수영선수 준호(유재상 분)가 1등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로 인해 새로운 수영 코치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 '해피 엔드', '사랑니', '은교'를 연출한 정지우 감독의 신작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12번째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1등이 되기 위한 목표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의 현실적인 이야기가 그려졌다. 1등을 향한 열망, 부모의 이기심, 폭력의 정당성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사회의 단면을 펼쳐냈다.
영화는 과거에 촉망받았던 비운의 수영 천재 광수(정가람 분)의 학창 시절 이야기로 시작된다. 열아홉의 천재 수영 선수 광수는 아시안게임을 3주 남겨둔 1998년 여름, 고향에 내려갔다가 친한 형들이 벌인 도박판에 빠지고 만다. 합숙 훈련을 위해 태릉으로 출발하기 직전이었지만 도박에만 빠져 국가대표팀에 핑계를 대고 입소를 미룬다. 결국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감독은 광수를 심하게 체벌하고 말았고, 광수는 홧김에 선수촌을 뛰쳐나오고 만다. 그리고 안면이 있던 스포츠 기자에게 기사를 내줄 것을 당부하지만 거절당한다.
그 이후 어른이 된 광수(박해준 분)는 작은 구립 체육관에서 수영 코치가 돼 게임과 술에 빠져 폐인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타고난 수영 실력을 가졌지만 4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년 준호(유재상 분)가 나타난다. 준호의 엄마는 광수에게 제발 어떻게든 1등만 만들어달라며 애절하게 부탁을 하고, 광수는 처음엔 심드렁했다가 준호의 실력을 알아보고 난 뒤 본격적으로 1등 만들기에 돌입한다. 광수가 준호를 1등 수영 선수로 만들기 위해 쓴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폭력이었다. 준호는 좋아하는 수영을 하기 위해 1등을 목표로 가혹한 체벌을 견디며 훈련에 매진하다 지쳐가고 만다.
'4등'은 주요인물인 광수와 준호, 준호 엄마 세 사람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끌고 간다. 이들 사이에 폭력 사이클이 형성되면서 감독의 의도가 전해진다. 폭력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단순하게 나눌 수 없는 문제라는 것, 폭력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어떻게 유전되고 영향을 끼치는지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광수는 자신이 체벌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고도 준호에게 가혹한 체벌을 가하고, 준호는 1등을 목표로 이를 견뎌내곤 한다. 그리고 준호 엄마는 광수의 가혹 행위를 알고도 이를 묵인하고 오로지 아들의 1등을 바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각 인물이 형성한 그 폭력 사이클의 중심에는 동일한 목표가 있다. 1등이라는 목표다. 광수가 과거 엘리트 스포츠 정책의 폐해와 강압적인 체벌을 견뎌야 했던 이유도 세계대회 1등이라는 목표 때문이었고, 준호는 대한민국이라는 승자독식사회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수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1등이라는 성과를 달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매우 어린 나이에 알아버렸다. "난 준호 맞는 것 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라고 말하는 준호 엄마는 아들의 상처보다 자식을 통해 자신은 미처 이뤄보지 못한 1등의 꿈을 이뤄보고 싶은 우리 사회의 한 사람이었다.
폭력의 이유 위에는 1등이라는 목표가 있었고, 그 1등이라는 목표 위에는 승자독식사회가 군림하고 있다. '4등'은 이렇듯 우리 사회의 심층적인 문제를 깊숙하게 파고든다. 이 모든 문제 의식과 해당 문제에 대한 깊이가 116분이라는 러닝타임 내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4등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4등이 패배자가 돼 버리는 사회는 이 고질적인 문제도 개선할 수 없다는 사실도 함께 실감케 한다. 체벌 당한 아들의 엉덩이를 보면서도, "엄만 정말 내가 맞아서라도 1등을 하는 게 좋아?"라는 단도직입적인 아들의 질문에도 쉽게 1등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엄마의 마음과도 같다.
이 아이러니는 상영 시간 내내 관객들의 마음을 괴롭힌다. 초를 다투는 기록 싸움에서 단 0.001초의 차이로도 승부의 운명이 갈리고, 메달권 밖으로 밀려나는 어린 선수들의 모습은 과정 보다도 결과가 중시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었다. 그 안타까운 경계에서 준호가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수영장 내에서 빛을 받으며 자유롭게 헤엄칠 때 뭉클함도 함께 커진다. "수영장의 레인을 걷어내면 그저 동네 목욕탕 같은 전혀 다른 환경이 된다"는 감독의 말은 작은 발상의 전환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진심이다.
'스포츠 인권'이 이 영화의 화두이자 전면에 내세운 문제 의식이긴 하지만 사실상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성이 어떻게 전이되는지, 그 근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과정에 가깝다. 준호의 마지막 엔딩은 또 한 번 다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런 폭력의 사이클이 공허하게 맴도는 한국 사회에서 체벌을 견디고 1등을 할지, 보다 자신이 행복한 것을 선택을 해야 하는지 사유하게 만든다. 유쾌하고, 따뜻하게 우리의 일상처럼 문제에 접근한 연출 방식은 이 영화의 미덕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열연해준 아역배우 유재상과 배우 정가람은 이 영화가 발견한 보석이다. 오는 13일 개봉.
aluem_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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