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박소담, 갑상선암 이겨내고 복귀 하기까지(종합) [N인터뷰]

박소담/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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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소담아, 네가 미친 텐션을 한 번 보여주면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

이해영 감독으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에 박소담은 너무 행복했다. 이해영 감독의 전작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에 출연하며 이 감독과 한 차례 인연을 맺은 박소담은 그렇게 요시나가 유리코 역으로 '유령'에 합류했다.

"'감독님, 저한테 연락 주신 거 맞죠?'라고 되물었어요. 너무 행복했거든요. 첫 주연작이었던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서 저를 믿어주셨던 감독님인데, 시나리오를 보기 전이었지만 '미친 텐션'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고 기대가 됐죠. 어떤 에너지이길래 그런 에너지를 뿜어낼까 궁금하기도 하고…설레고 감동했어요."

설렘도 잠시, 촬영을 시작하면서 쉽지 않은 시간이 닥쳐왔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감정적으로도 어려움이 몰려왔다. '번 아웃'이 왔나 생각이 될 정도였다. 훗날 '유령'의 촬영이 끝난 후에야 박소담은 알게 됐다. 그 모든 일의 원인이 따로 있었다는 것을. '갑상선 유두암'이었다.

박소담/ CJ ENM 제공

지난 2021년 말 박소담은 소속사를 통해 갑상선 유두암 수술을 받은 사실을 알렸고,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기에 이듬해 초 개봉한 주연작 '특송'의 홍보 일정에도 나서지 못했다. 자칫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개봉을 앞두고 있었음에도 수술을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촬영 내내 저는 몸이 아픈 줄 몰랐고 그저 '번 아웃'이 온 줄 알았어요. 그런 건 처음이었어요. 매일 현장에 나가는 게 두려웠고, 그게 몸이 저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저는 그걸 정신 문제라 생각해 선배님들, 감독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면서 울기도 하고…나중에 '소담이가 아파서 그랬었구나'하고 아셨는데 저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도 굉장히 두려웠어요. 제가 잘 해냈는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거든요. 감독님이 '소담아, 나 그렇게 쉽게 오케이 하는 사람 아니야, 믿어도 돼, 충분히 잘했어'라는 말을 항상 해주셨어요."

박소담/ CJ ENM 제공

아팠던 시간이었지만 감사함도 컸다. 박소담은 조직검사를 기다리는 중에 다행히 '유령'의 후시 녹음을 할 수 있어 영화에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었다며 안도했다.

"목 안에 혹이 열 개나 있었고 임파선까지 전이가 돼 있어 정말 위험했어요. 위치가 안 좋아 조금만 늦어졌으면 목소리 신경을 잃을 뻔 했죠. 임파선 다음은 폐인데, 혹 폐까지 전이가 됐다면 항암치료를 해야했을 거예요. 유리코에 최선을 다해 에너지를 쏟아내고, 그 다음에 시기적으로 딱 맞게 아프다는 걸 알게 돼 다행이었어요. 조금만 늦었어도 후시 녹음을 다 못했을 거예요. 이렇게 회복하고 이 시기에 많은 분들을 만나고 저의 이야기를 제 목소리로 인사드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최악의 컨디션 속에서 '유령'을 촬영했다. 연기를 하며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을 이 시기에 느꼈다.

"'기생충' 때도 언니 오빠들이 매일 촬영이 끝나면 걱정하고 후회하고 그러더라고요.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렇게 잘해놓고 왜 그런 고민을 해? 이해영 감독님이 저에게 하신 말씀을 그때는 제가 언니 오빠들에게 했었어요, '감독님이 그냥 오케이 하시지 않았을 거야, 우리 너무 잘했어'하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촬영 후에 매일 밤 혼자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울기도 하고 혼자 땅굴을 파고 들어갔어요. 촬영 기간 내내 4인 이상 집합금지라 다함께 모이지 못했거든요. 그때 알았어요. 촬영이 끝나고 선배님들과 밥 먹으면서 감정을 털어놓고,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내가 그렇게 버텨온 거구나, 선배님들과 감독님, 동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구나…깨달았죠."

박소담/ CJ ENM 제공

지난 18일 개봉한 '유령'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 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리는 영화다. 박소담은 극 중 조선인임에도 총독부 실세인 정무총감의 비서 자리까지 오른 야심가인 유리코를 연기했다.

영화 속에서 차경(이하늬 분)과 유리코가 그랬듯 이하늬와 박소담은 현장에서 붙어다니며 선후배의 정을 나눴다. 특히 이하늬는 당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박소담을 살뜰히 챙겼다. 그 때문일까. 박소담은 '유령'의 언론배급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하늬와 함께 눈물을 터뜨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목이 아픈 게 갑상선 때문인지 몰랐어요. 워낙 먼지 구덩이 속에서 구르다 보니 그냥 그래서 목이 아픈가보다 했었죠. 현장에서 (이)하늬 선배님이 항상 목에 좋은 캔디를 가져와서 '너를 위해 구했다'면서 한 봉지씩 주셔서 그걸 매일 먹었어요. 최근에도 갑상선에 좋은 오일을 만들어서 가져다 주시고 목에 두르라고 스카프도 주시고요.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지만 엄마 같아요. 그러다 이번에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는데 차경의 톤으로 선배님이 '살아' 하고 대사 하시는 걸 들으니 1년 반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마이크를 잡으면 위험하겠다 싶었는데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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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하고 나서 많은 것이 변했다. 목소리를 되찾는 데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회복 중에 충분히 쉬는 시간을 갖고 운동을 열심히 해야했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을 통해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설 때도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을 만들기 위해 한 달 전부터 필라테스를 했다.

"약은 5년 이상 매일 먹어야 해요. 완치다 아니다 딱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일이에요. 때로는 힘들 때도 있고 호르몬 수치의 변화가 많아서 약 조절을 많이 한다고 해요.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없겠지만 지금은 최대한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해요. 예전보다 제 자신을 더 많이 들여봐야할 것 같아요."

지난해 말 박소담은 34일간 홀로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스페인과 영국, 스위스, 아이슬란드를 거쳐 오는 일정이었다. 런던에서 '기생충' 이정은과 봉준호 감독, 샤론 최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무계획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이 여행에서 박소담은 자신에 대해 더 알았고, 자연 속에서 홀로 지내며 또 오가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충만한 에너지를 채웠다.

"여행을 가려고 보니 연기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었구나 싶었어요. 혼자 뭘 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공항에 갈 때부터 회사 직원들이 걱정했어요. 그래도 다행히 운전을 잘해서 스위스에서 혼자 자연 속에서 다니고 아이슬란드에서도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외국에서 너무 많이 알아봐주시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융프라우 위에서 한국 동생 다섯 명을 만나 그날 같이 너무 행복했어요. 같이 밥도 먹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면서 앞으로 얼마나 잘 살아가고 싶은지 확 정리가 됐어요. 빨리 한국에 가서 '유령' 홍보를 하고 싶더라고요.(웃음)"

박소담이 경험한 34일간의 여행기는 조만간 유튜브를 통해 공개해볼 생각이다. 박소담은 타이틀을 '우당탕탕 박소담'이라고 지었다면서 "정말 계획 없이 가서 바르셀로나에서 스위스 렌터카 숙소를 예약하고 스위스에서 런던 숙소를 예약했다"고 말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해외 팬들은 박소담의 다양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생충' 뿐 아니라 드라마 '청춘기록'부터 데뷔 초기작인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들' 같은 작품까지 봤다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

박소담/ CJ ENM 제공

"드라마 너무 잘 봤다고, 몸 괜찮느냐고 묻는 분들도 많았어요. 해외에도 '기생충' 제시카가 암에 걸렸다는 기사가 나갔었대요. 혼자 왔느냐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혼자 쉬러 왔다고 말씀드렸어요. 팬분들이 저의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주기도 하셨어요."

올해 박소담은 데뷔 10주년을 맞이했다. 조금 아픈 성장통을 겪긴 했지만 그 시간을 통해 멀리 가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는 때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10년은 어떻게 보면 길고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인데 (이)순재 선생님, 신구 선생님 하시는 걸 보면 한참 남았어요. 스스로 멈추고 머물러 들여다보면서 제 상태가 어떤지, 괜찮은지 물어보면서 나아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오래 뵐 것 같아요. 신구 선생님과 이순재 선생님과는 '앙리 할아버지'를 함께 한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제가 무슨 복을 타고났는지 제 걱정을 많이 해주세요. 가장 쑥스러울 때는 통화 중에 선생님들이 '소담이 건강 괜찮니?'하고 물어보실 때예요. 물어볼 사람이 바뀐 것 같은데…'유령' VIP 시사회 때 두분 다 오셨어요. 선생님들께 '저 이제는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 있어요.(웃음)"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