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우 "미국 유학 후 배우 도전…'악의 마음'으로 더 성장했다" [N인터뷰]②
- 장아름 기자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지난 12일 12회를 끝으로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극본 설이나/연출 박보람/이하 '악의 마음')에는 온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면서도 분노하게도 했던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를 잡는 범죄행동분석팀의 고군분투가 담겼다.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등 실제 범죄자들을 모티브로 한 연쇄살인마들이 차례로 등장했고, 이들을 잡기 위한 범죄행동분석팀의 프로파일러 송하영(김남길 분)과 팀장 국영수(진선규 분), 기동수사대 팀장 윤태구(김소진 분)의 치열한 공조가 그려져 시청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악의 마음'에서 4회에 걸쳐 등장하며 극의 긴장감을 더욱 높였던 범죄자는 단연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모티브로 한 구영춘이었다. 부유층 노인들을 살해하고 성매매 여성들에게 연쇄살인을 저지른 인물로, 구영춘은 배우 한준우가 연기했다. 한준우는 JTBC '멜로가 체질'에서 은정(전여빈 분)의 남자친구 홍대로 얼굴을 알리고 KBS 2TV '출사표'에서 수행비서 김민재로, 티빙 '해피니스'에서 돈 많은 백수 김세훈으로도 활약했던 배우다. '멜로가 체질'의 홍대로 익숙했던 시청자들에게 구영춘으로 변신한 한준우의 모습은 이전 작품과 캐릭터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매우 낯설게 다가왔다.
한준우는 최근 뉴스1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의미있는 작품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출연 소감을 털어놨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연쇄살인범을 연기하는 데 있어 많은 부담감이 뒤따랐지만 '악의 마음'의 원작자이자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교수의 도움으로 캐릭터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 부담감으로 저절로 살이 빠질 만큼,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확실히 '한꺼풀 벗겨졌구나'라는 느낌과 확신이 든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악의 마음'을 통해 또 한 번 한준우라는 배우의 연기력과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열연이었다. 한준우와 만나 '악의 마음'과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N인터뷰】①에 이어>
-후반부 송하영(김남길 분), 윤태구(김소진 분)와 격렬한 추격신과 액션신을 보여줬다.
▶추격신, 액션신을 촬영하기 쉽지 않았다. 추워질 때 액션신을 찍었는데 반팔 입고 촬영을 해서 추위와의 싸움이 있었다. 나름 평소 운동도 많이 했는데 이 작품의 액션신을 찍으면서 군데군데 몸이 아프더라.(웃음) 평소 안 걸리는 담도 오기도 했다. 스턴트맨 분께 실수로 얼굴을 맞기도 했는데 현장에서는 아픈 줄 몰랐다가 나중에 집에 와서 입 안이 다 헐기도 했었다. 역할과 육체적으로 아픈 부분들이 함께 갔던 과정이어서 힘들긴 했다. 정신 건강을 확실하게 지키면서 하자는 게 확실히 있었음에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김남길 선배님께서 워낙 액션을 잘 하셔서 재밌게 찍었던 기억도 있다.
-송하영과의 긴 면담신이 하이라이트였다. 김남길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김남길 선배님, 진선규 선배님과 면담신을 촬영할 때는 굉장히 긴 신이었다. 아예 하루를 통으로 면담신으로 잡고 촬영을 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는 순조롭게 촬영이 진행됐다. 딜레이도 없이 정시에 끝났다. 사실 그 정도까지 순조롭게 진행될거라 생각 못했다.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고 어려움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순조로웠고 연기 호흡이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대면신 20분은 가장 중요했다. 이 장면을 위해 3~4개월을 준비하고 고민했어서 가장 신경 쓸 수밖에 없었는데 선배님께서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생각보다 편하고 순조롭게 지나갔다.
-이번 작품에서 많은 고민을 했던 만큼, 스스로도 한단계 성장했다는 성취감이 클 것 같다.
▶확실히 '한꺼풀 벗겨졌구나'라는 느낌과 확신이 든다. 이전에는 충분히 공감하며 연기할 수 있었는데 이번 연기는 달랐다.이 역할은 이전에 만났던 인물들과 너무 다르고 풀어가는 접근 방식도 새롭게 찾아갔다. 배우가 모든 인물에 다 공감하며 연기할 수는 없지 않나. 하루종일 우울하고 다크한 감정에 빠질 수도 없기 때문에 새로운 접근법이나 선택지를 찾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성장했다고 느꼈던 부분이 이 부분이다. 이전까지의 경험으로 연기한 것이 아닌, 다 내려놓고 처음 도전하는 방식으로 연기했다는 점에서 성장했다고 느꼈다. '단정짓지 말고 모든 걸 열어두고 하자'고 생각했고, 그 덕분에 조금 더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연기는 어떻게 하게 됐나.
▶연기는 전공을 하진 않았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다. 부모님께서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취업한 후 자리잡고 살았으면 좋겠다 하셨다. 나름 부모님의 계획이 있었는데 대학에 진학한 후 진로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원하는 게 뭔지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나도 연기를 하면 좋겠다 했지만 주변에 예술하는 사람이 없어 감히 시도를 못했었다. 그동안 용기가 안 나서 말도 못 꺼내고 고민만 하다 시간을 보냈는데 이젠 인생을 스스로 선택해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실제로 시도하고 그 인생을 살아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더라. 그러다 뒤늦게 한국에 들어와서 학원에 등록해서 연기를 배웠다. 맨땅에 헤딩을 해서 시작했지만 처음으로 제 것을 하고 싶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누군가 등을 떠밀어서 하는 게 아니었던 만큼,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설렘이나 기쁨을 더 많이 느꼈다.
-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가 컸겠다.
▶아버지께서 화를 잘 안 내시는데 화도 내셨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지만 부모님과 꿈에 대한 소통이 없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일반 직장에 취업하길 바라셔서 '나 배우 한번 해볼래'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배우가 된다고 했을 때 잠깐 지나가는 바람이겠다고 생각하시기도 하셨다. (집안의 반대가 워낙 심해서) 날 쫓아내도 상관 없다 하기도 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전에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 당황하시기도 하셨다. 길면 6개월, 1년 해보고 정신 차리지 않을까 하시더라. 그런 상황에서 저도 고민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불가항력적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 겸허하게 그만둘 수 있겠지만 주위의 시선에 흔들리지 말자 했다. 나중에는 부모님께 기다려달라 말씀드리면서도 뭔가 보여드리고 만족시켜드려야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래야 오래 버틸 수 있었다. 원하는 작품을 못하고 배우로서 유명해지지 않아도 상관 없고, 소신껏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야 부모님도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시지 않을까 했다. 지금 와서 보니 그렇게 생각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랬으면 고비의 시간을 넘길 수 없었을 것 같다.
-2014년 영화 '타짜: 신의 손'으로 데뷔한 후 원동력이 돼준 작품이 있었나.
▶'멜로가 체질'이 그런 작품이다. '멜로가 체질' 이후로 작품을 쉬지 않고 해왔다. 이전에는 단역을 많이 했었지만 이후에는 깊게 들어갈 수 있는 인물들을 맡을 수 있었다. 그때가 전환점이었고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다. 작가 겸 연출이셨던 이병헌 감독님은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는 분이시다. 유명해지시기 전에도 자기 색깔이 뚜렷하고 엄청난 포텐셜이 있는 분이시라 생각했고, 뭘 해도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분이셨다. 전환점을 만들어준 작품에 캐스팅해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아직 갈증을 느끼는 장르나 캐릭터가 있나.
▶장르는 조금 더 많이, 다양하게 해보고 싶다. 다만 인물의 휴머니즘이나 서사가 디테일하게 표현된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역할의 비중을 떠나서 인물의 동기나 감정선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 화려하지 않은, 소소하게 사람 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배우로서 이상향이 있나.
▶욕심 같아서는 이전 작품이 생각이 안 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이전 작품의 인물과 다르다'는 반응이 제일 감사하다.
-'악의 마음'은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역할은 연쇄살인마였지만 작품 전체적으로 배운 게 참 많다. 실제 프로파일러 형사님들의 고충을 알 수 있었고 이분들과는 반대되는 역할이었지만 촬영하면서 이분들의 삶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구영춘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근본성에 대해서도 오랜만에 고민을 많이 했다. 나 자신과 사회 분위기, 제도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작품이 어둡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싶지 않은 고민들이 담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껄끄러운 걸 피하고 싶어하는 사회 분위기도 있지만 제2의 구영춘, 제3의 구영춘이 나오지 않으려면 결코 덮어두고 갈 수 없는 사회 문제들이다. 역할을 떠나서 작품 전체를 보게 됐다는 점에서도 배우로서도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aluem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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