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인터뷰]① 이영진 "'민낯에 알코올중독자 엄마'라는 모험, 큰 성취감"
- 장아름 기자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배우 이영진은 어느 새 연기 경력 22년 차에 접어들었다. 1998년 모델로 데뷔한 후 배우로서 경력만 20년이 넘어선 그다. 이영진은 그럼에도 "매년 반성 아닌 반성을 하고 있다"며 "나이를 먹을수록 반성하게 되고 계속 더 마음이 쫄린다"고 고백했다. "이제는 상대가 보이고 전체적인 내용이 보이는 것 같다"며 "점점 고민의 파이가 커져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지난달 27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목표가 생겼다'도 그에겐 도전보단 모험에 가까웠다. '목표가 생겼다'는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행복 망치기 프로젝트를 계획한 19세 소녀 소현(김환희 분)의 발칙하고 은밀한 작전을 담은 드라마다. 이영진은 극 중 알코올에 의존하며 딸에게 무심한 소현의 엄마 김유미 역으로 등장했다.
그간 그가 보여줬던 도시적이고 화려한, 세련된 이미지와 달리 다크서클이 가득한 초췌한 민낯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낯설지만 새롭게 다가왔다. "배우가 모든 작품의 역할을 다 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저 배우는 대충한 적은 없다고, 가짜로 한 적은 없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이영진이 연기를 대하는 태도와도 맞닿아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영진은 "동시대, 그리고 현재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자 배우이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나이에 맞는 연기를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또 이영진은 인터뷰 말미,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선배 윤여정을 언급했다. 그는 "작품의 만족도만 생각하고 그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경험이 없었다"며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오래 연기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다"고 고백하며 배우로서 더 나아갈 미래에 대한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목표가 생겼다'가 호평 속에 종영했다. 종영을 맞이한 소감은.
▶정말 감사하다. 매번 작품 때마다 호평 받을 수 있는 건 아닌데 호응이 좋아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4부작이라 시작하자마자 작품이 끝난 것 같아 시원섭섭하다.
-배우로서 '목표가 생겼다'를 어떻게 봤나.
▶톤앤매너가 궁금했었다. 극의 경쾌함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어서 극에 잘 묻어나지 않을 것 같아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톤앤매너를 유심히 봤었다. 개인적인 연기에선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성취감이 큰 작품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 김유미 캐릭터를 어떻게 맡게 됐나.
▶먼저 의뢰가 왔다. 사실 감독님께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이기도 한데, 제가 이런 엄마 역할을 해보거나 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 역할에 저를 생각하셨는지 문득 궁금하다. 처음에는 유미가 모성애가 짙은 역할이었다. 사고뭉치 엄마이기도 하지만 딸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노력이 보였던 엄마였는데 후에 지금의 김유미로 수정이 됐다. 처음에는 모성애가 짙은 엄마 역할을 해본 적이 없어서 겁이 나더라. 그동안 해온 역할에서 모성애와 관련한 이미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시청자 분들께서 거부감이 먼저 들 것 같다 생각했다. 이후 미팅을 했는데 많은 부분에 대해 감독님과 대화 나누면서 공감한 지점이 있었고, 사실적인 사고뭉치 엄마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드라마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유미 역할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극 자체가 확실히 몰입도가 있더라. 유미 캐릭터가 많이 바뀌고 현실화된 것도 결정에 한몫했지만 드라마 자체가 주는 몰입감도 좋았다.
-김유미 캐릭터가 수정이 된 후 더 마음이 갔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대본을 받고 미팅을 하고 나서 캐릭터에 대한 많은 부분이 공감대가 형성이 됐던 것 같다. 드라마를 소현이가 끌고 가다 보니 소현이에게 포커싱 돼 있어서, 처음엔 유미 캐릭터가 의례히 생각한 엄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정본을 보고 유미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층적이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성애가 강한 엄마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살아있는 느낌의 엄마가 보이더라. 그렇다면 한 번 모험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했다.
-노메이크업으로 열연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것은 본인 의지였나.
▶제가 생각한 유미의 결은 푸석푸석하고 메말라 있는 모습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미팅을 했는데 감독님께서 '영진씨 맨얼굴이 좋은데 맨얼굴로 연기하는 게 가능하겠냐'고 하셔서 오히려 고민을 덜었다. 그게 유미한테 맞는 것 같다 생각했었고, 선크림도 바르지 않은 채로 다크서클을 그려서 알코올에 찌든 표현을 더해갔다. '똥손'이라 불려서 평소에 화장을 잘 못하기도 해서 편리함은 있었다. (웃음) 워낙 화장을 안 하고 등장해서 너무 저 같을까봐 우려했는데 작품에서 표현하고 싶은 유미의 푸석함이나 삶의 의지를 찾아볼 수 없는 느낌이 묻어나오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이렇게 꾸밈 없이 연기를 해본 적이 있었나.
▶그렇게 해볼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 작품에서 진한 화장한 경우도 많진 않았지만 기본적인 메이크업은 하고 촬영했었는데 아예 아무 것도 안한 건 처음이었다. 호감보다 비호감에 가까운 캐릭터이고 좋은 엄마가 아니라 미움 받을 수밖에 없어서 시청자분들께 더 비호감으로 비칠까봐 걱정이 되긴 했었다. 거기까진 안 가서 다행이다.(웃음)
-비호감에 가까울 수도 있는 유미 캐릭터를 설득시켜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다.
▶유미가 어떤 마음일지도 상상이 잘 안 됐다. 다만 1부부터 3부까지 소현이의 감정을 올릴 수 있는 엄마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저 엄마가 이해가 돼'까지는 아니어도 '쟤도 제 속이 아니었겠구나' 하는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소현이에게 강하게 스트레스를 주는 임팩트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죽고 불이 나고 도박하고 등 이런 것들이 점프가 돼서 설명이 된 것이 없지만 그 전에 소현이가 표현되는 것들에서 엄마가 설명이 돼야 해서 소현이에게 스트레스만 잘 주면 설득이 될 수 있겠다 했다. 그래서 감정의 빈공간, 드라마에 나오지 않는 빈공간을 찾아서 연기하려 노력했다.
-알코올중독자 엄마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실제 주량이 매우 적은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맥주를 실제로는 300cc정도 마신다.(웃음) 술을 마시는 연기를 할 때 흔히 하는 리액션이 있는데 최대한 그걸 안 하려고 했다. 알코올 중독자에겐 알코올은 거의 물이 아닐까 했다. 실제로 알코올 중독자 분들을 조사했는데 이분들은 술을 안 마셨을 때 이상 반응이 나타나지, 마셨을 때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 손떨림이나 불안정함 등 일반적이지 않는 행동을 하고, 술을 마셨을 때 차분해진다고 한다. 유미도 그런 단계에 속해 있다고 보고 연기했다.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것은 물을 많이 마셔야 했던 점이다.(웃음)
-계속 어두운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던 고충이 있었을 것 같다.
▶워낙 삶의 의지가 없는 역할이다 보니까 현장에서 연기할 때 이 감정을 갖고 가기 위해 많은 부분들을 포기하고 차단했다. 저도 현장에서 스태프들을 보면 반갑고 좋고 같이 웃고 싶고 그런 게 있지만 제 감정 못 찾고 놓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에도 감정이 다 틀어질까봐 감정을 계속 잡고 있는 게 어렵더라. 환희와도 실제로는 정말 좋았는데 서로 좋을 신이 없다 보니까 마냥 반가워할 수도 없었다. 좋은데 웃지 못하는 게 힘들고 마음을 떨궈내는 게 어렵더라.
-작품이 끝난 후엔 캐릭터에서 잘 빠져나오는 편인가.
▶그래도 잘 나오는 편인 것 같다. 실제 성격이 유미 보다는 훨씬 밝다. 많이 밝은 편이어서 누르고 역할에 집중하는 기간이 힘들었지 돌아오는 건 어렵지 않더라. 환희와 마지막 촬영 후엔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없이 끝나는 거야?'라며 사진도 같이 찍기도 했다.
-김환희와의 모녀 호흡은 어땠나.
▶너무 좋았다. 제가 이전에 엄마 역할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면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겠는데 좋았다고밖에 말을 못하겠더라. 어리지만 어리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친구다. 저는 그 나이에 그렇게 성숙하지 못했다. 어른스러운 면이 많아서 정말 친구 같았고 정말 편하고 좋더라. 환희에게는 마음처럼 밝게 말하지 못했지만 만나면 반갑고 좋고, 호흡 맞출 때도 '어떻게 연기하는 게 좋을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영진이라는 배우를 생각하면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래서 이번 역할은 시청자들에게도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성취감도 컸을텐데.
▶성취감은 당연히 컸다. 모델 출신이기도 해서 이미지로는 도시적이고 세련된 느낌이 있다고 해주시지만 실생활에서는 전혀 패셔너블하지 않다. 꾸미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보통사람과 똑같은 것 같다. 제가 아는 저와 남들이 인지하고 있는 저의 갭 차이가 큰 게 단점도 있고 장점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연기가) 이렇게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나보더라. (변신을)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전과 다르게 봐주시는 것도 같다.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배우 이영진의 이미지에 대한 생각은 어땠나.
▶데뷔하고 나서 주로 했던 역할이 무게감이 있고 어둡거나 공포물 같은 장르를 많이 했다. 그냥 저를 절 잘 모르시고 '차가울 것 같다'고 생각하신다는 얘길 들었다. 물론 차가운 면도 있을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잘 안 웃을 것 같다는 편견도 있지만 그렇다고 웃음이 아주 없는 사람은 아니다.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게 편한 것도 있긴 했다.(웃음) 어린 시절 나이가 어리다고 막대하는 건 없더라.(웃음) 이전에 '해피투게더'에 나왔을 때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인간 이영진이 어떤 사람인지 열심히 설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이 되기도 한다.
<【N인터뷰】②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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