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배' 말고 배우 박근형(인터뷰①)

(서울=뉴스1스포츠) 장아름 기자 = 배우 박근형(76)이 영화 '장수상회'(감독 강제규)를 내놓는 심정은 비장했다. 30년 만에 상업 영화의 주연이라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도 멜로 장르의 주인공이라는 이유 때문도 아니었다. 줄곧 공석에서 국내 연극계를 이끈 노년 배우 자원 활용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결코 녹록지 않은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연령의 차이를 떠나 연기라는 본질로 많은 대중들과 공감하기를 바랐던 만큼 연극 학도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치열하게 연기를 펼쳤다.

"배우라면 100가지든 1000가지든 모든 역할을 다 해보고 싶어 해요."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님 역으로, 인심 좋은 할아버지 역으로 그리고 시니어 예능의 대표 격인 tvN '꽃보다 할배'로 우리 일상에 익숙해져 갈 때 즈음 인생의 선배가 아닌 배우로서의 박근형의 진심을 들어볼 기회는 적었다. 어느새 80세라는 산수(傘壽)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대배우의 연기에 대한 열정은 이제 막 시작하는 신인배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53년이라는 세월동안 단 한 번도 배우 아닌 다른 길은 생각지 않고 살았다는 박근형에겐 '꽃할배'라는 수식어보다 배우가 더 맞는 옷 같았다.

배우 박근형이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화 '장수상회'에서 주연을 맡은 소감을 밝혔다. ⓒ News1 스포츠 / 권현진 기자

Q. 30여년 만에 주연을 맡은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A.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노년 배우들이 주인공을 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가 아주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노년 배우들은 195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연극과 연기 발전을 이끈 아주 훌륭한 자원들인데 그런 좋은 자원들이 쓰여질 기회가 없다는 게 참 안타깝더라. 이번 계기가 노년 배우들이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콘텐츠를 위한 자양분이 됐으면 한다.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기회를 준 이 영화가 고맙다.

Q. 성칠 역을 연기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고 연기했던 부분은.

A.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사랑이라는 메시지였다. 젊은 사람들에게 통할까 싶었는데 결국 사랑이라는 건 다 똑같지 않나. 나이 문제와 별개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나이는 중요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사랑이란 건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다 통하는 주제다.

Q. 윤여정과는 1982년 드라마 '장희빈'에서도 호흡을 맞췄다.

A. 윤여정은 당시에도 정말 총명하고 영리했던 배우였다. 눈망울이 반짝이는 게 얼굴도 참 예뻤다. 당시에도 연기 호흡이 잘 맞았는데 이후 본격적으로 연기 호흡을 맞출 기회가 없었다. 단막극과 드라마 '꼭지'에서 만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연기 호흡을 맞춘 건 '장수상회'가 오랜만이다. 워낙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력의 배우고 자기 철학이 뚜렷한 배우이지 않나. 앙상블만 잘 이루면 되는 거였는데 워낙 잘 맞았다.

배우 박근형이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화 '장수상회'를 통해 바라는 점에 대해 털어놨다. ⓒ News1 스포츠 / 권현진 기자

Q. 연기할 때를 제외하면 윤여정과는 어떤가.

A. 내가 윤여정에게 야단을 맞는 편이지. (웃음) 윤여정은 사실 나와 코드가 잘 안 맞기는 한다. 진취적인 편인 반면 나는 보수적인 편이라 그렇다.

Q. 금님과의 로맨스를 연기하면서 가장 몰입했던 장면이 있었을까.

A. 윤여정이 수술실로 들어가고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 제일 몰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실제 내 아내도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우리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가던 모습과 겹쳐 보이더라. 그때 수술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의 손을 붙잡고 '아무 걱정하지 말라. 당신이 죽으면 나도 따라가겠다'고 했었다. 그런 기억 때문에 성칠의 불안감에 공감이 갔다.

Q. 반면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소모가 컸던 장면은.

A. 조진웅과 인감 도장을 갖고 다투는 장면이 어렵더라. 동선이 복잡한 건 아니었는데 서로 빼앗으려고 하고 소리를 지르는 소모적인 부분이 많았다. 폭발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연기를 하겠다고 하니까 흔쾌히 승락은 했지만 몸싸움이 격하니까 그건 말리더라.

Q. 젊은 배우들과의 호흡도 인상 깊었다.

A. 조진웅과는 호흡이 사실 굉장히 잘 맞았다. 친구의 연기에는 젊음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밝고 명쾌하지 않나. 그런 에너지가 성칠의 까칠한 성격과 잘 어우러진 것 같다. 황우슬혜라는 배우의 연기도 특히 칭찬하고 싶다. 다방 아가씨 박양이라는 캐릭터가 자칫하면 굉장히 난잡하게 표현이 될 수 있는데 그런 느낌이 없더라. 찬열이는 눈망울이 그렇게 순수할 수가 없다. 덕분에 기분 좋게 연기했다.

배우 박근형이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지난 배우 인생 53년을 돌이켰다. ⓒ News1 스포츠 / 권현진 기자

Q. 강제규 감독과 촬영 전 협의가 있었다던데.

A. 작품에 대한 협의는 없었다. 여건에 대한 협의였다. 거장은 거장이더라. 그건 분명하다. 같이 만나서 얘기를 나누려고 애를 쓰더라. 배우의 얘기를 존중해서 들어준다.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유도해준다. 불편한 것이 없는지 묻고 이에 대해 수용하고 실질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배우들 역시 이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Q. 53년 동안 배우로 살아오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적이 있었을까.

A. 단 한 번도 내 직업이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다. 지금까지 배우라는 길, 이 한 길만 바라보고 왔다. 현장에서도 젊은 배우들 못지 않게 열정을 다하고 있다. 나이가 있으니 젊은 배우들이나 감독들이 쉬는 시간마다 앉아서 쉴 자리를 마련해주는데 그렇다고 거기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건 아니다. 카메라 앞에 서 있지 않더라도 끊임 없이 내가 해야 할 연기와 맡은 연기에 대해 생각하려 한다.

Q. 향후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A. 지금의 내 나이가 이제는 배우로서 족적을 남겨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훈장님이 한 곳에 아이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는 것처럼 내가 갖고 있는 노하우와 경험들을 젊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게 내 꿈이다. 고향에 내려가 연기나 연출에 꿈이 있는 아이들의 재능을 발굴해서 세계적인 예술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바람이다. 항상 현재보다 한 단계 높이 뛰어야 문화적인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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