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나 "연기 욕심일 뿐, 노출 위한 노출은 없죠"(인터뷰)
- 장아름 기자
(서울=뉴스1스포츠) 장아름 기자 = 배우 강한나(27)는 영화 '순수의 시대'(감독 안상훈)를 통해 발견된 원석이었다. 신인 배우로는 파격적으로 주연배우인 신하균과 장혁 그리고 강하늘의 중심에 있는 여자로 캐스팅됐고 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톡톡히 각인시켰다. 오롯이 연기력만으로 인정 받고 있는 세 배우들 사이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제 기량을 펼치는 모습은 관객들의 뇌리에 깊이 남았다.
강한나는 '순수의 시대'에서 개선장군 김민재(신하균 분)와 이방원(장혁 분), 그리고 부마 김진(강하늘 분)을 매혹시킨 기녀 가희 역을 맡았다. 김민재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따뜻한 품을 가진 여자였고 이방원에게는 복수심에 불타는 강인한 여인이었다. 김진에게는 순수한 모습으로 기억되던 여인이었지만 후에는 그를 현혹하는 팜므파탈이기도 했다. 그렇게 각기 다른 색을 지닌 가희는 강한나만의 섬세한 연기로 스크린에 고스란히 구현됐다.
가희의 모습이 세 남자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할 수 있었던 까닭은 어떠한 역할이든 흡수 가능했던 강한나의 변형 가능한 마스크에 있었다. 강한나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두고 "이목구비가 크다거나 귀엽거나 섹시한 느낌이 없어서 일 것"이라며 "감독이 캐릭터로 새로운 색을 입히고 분장팀이 메이크업과 의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얼굴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무색무취(無色無臭)의 강한나가 특별한 배우인 것이 아닐까.
"신인인데도 캐스팅 된 이유요? 추측을 해보건대 아무래도 감독님이 생각하고 그려내고자 했던 가희의 모습과 제 생각이 일정 부분 맞았던 것 같아요. 오디션 때 가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제게 물으셨을 때 가희는 막연하게 강하거나 독한 여인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여리기 때문에 상처를 더 깊게 받아서 복수심이 생겨났다고 봤거든요. 그런 지점들이 감독님과 맞았던 것 같아요."
강한나가 가희 역을 연기하기 위해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가희라는 인물이 지녔던 슬픔과 상대역과의 관계였다. 신인이 연기하기엔 가희라는 인물의 감정 변화폭이 깊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신하균과 장혁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두 배우들의 현장 경험을 믿고 의지하면서 가희라는 인물의 심중을 풀어갈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어떤 배우가 돼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배우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감사하고 소중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가희는 중심이 있고 주체성이 있는 여자예요. 가희에게 있어서 순수했던 시절은 과거 약초를 팔았던 시절이었어요. 그 순수가 짓밟힌 건 진 때문이었는데 이 계기로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복수심이 생겨나죠. 이후 순전히 복수심 때문에 살아가게 돼요. 복수보다 선행돼야 하는 게 슬픔이었는데 그 슬픔을 정확하게 알아가는 게 힘들었어요. 또 가희는 각 상대역에 따라 달라지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상대역과의 관계도 많이 신경 쓴 부분이었죠."
'순수의 시대'는 각 인물들을 통해 '순수'에 대한 중의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가희와 김민재는 조선시대의 제도라는 틀 속에서도 뜨겁게 사랑을 나눈다. 김민재는 높은 위치에 있지만 삶의 출구가 없던 사람이었고, 가희는 김진에게 겁탈 당한 후 김진의 어머니에 의해 자신의 어머니까지 잃게 되고 남은 것은 분노 밖에 없던 여인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 사랑이라는 출구를 발견하게 되고 오롯이 사랑만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자신의 순수를 아무도 감추지 않아요. 순수한 복수심, 순수한 야망, 순수한 사랑 등 순도 100%를 향해 달려가죠. 진정으로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밀고 가는 힘이 아마 영화가 말하는 순수였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그리고 꿈을 꾸는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고 봤거든요. 순수라는 단어에 대해 단정 짓는 느낌은 아니었기 때문에 관객들마다 받아들이고 보는 지점이 다른 것도 이 영화의 재미있는 부분이죠."
배우의 길에 들어서게 된 계기를 물었다. 놀랍게도 발레리나로서의 꿈을 꿔오다 연기자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권유 덕분이었다. 발레리나가 되기엔 신체적 조건이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았다는 탓에 한계를 느꼈던 강한나에게 연기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한 것은 어머니였다고. 발레를 하면서도 연기하듯 무용을 하는 딸을 유심히 지켜봤던 어머니가 연기를 제안했고 어머니는 이후 배우의 길을 지원해주는 든든한 지원자가 됐다.
"저는 꿈에 있어서 순수한 편인 것 같아요. 매사 내 앞에 주어진 것들을 후회 없이 하자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현재가 모여서 내일이 되는 거니까. 그래서 거창한 미래만 꿈 꾸고 현재에 불만족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간 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예요.(웃음) 상대의 마음을 보려고 하기도 하고 마음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편인 것 같거든요. 어쩌면 사랑이란 감정 자체도 순수한 감정인 것 같네요."
강한나는 신하균과 장혁, 강하늘과 베드신 연기를 펼쳤다. 세 배우와 뜨거운 베드신이 영화 개봉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언제부터인가 베드신이 삽입된 영화는 종종 '신인 등용문'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강한나는 "다른 배우들도 노출 연기라고 생각하고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캐릭터가 욕심이 났거나 좋은 감독님과 작업을 하고 싶었거나 분명히 확고한 작품 선택 이유가 있었을 거다. 노출만을 위한 노출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베드신은 아무래도 어려웠어요. 어떻게 보면 몸으로 대화를 하는 것인데 체력적으로 힘들어지다 보니 감정 표현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자칫 하면 감정 표현을 놓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많이 걱정을 했었어요. 베드신을 전면에 내세워서 홍보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사화 되는 과정에서 화제가 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우리 영화가 베드신이나 노출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아셨을 거예요. 베드신이 정말 감정신이었구나라는 믿음이 있죠."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은 가희와 진이 포목점에서 만나는 장면이었다. 가희를 취하지 못해 안달이 난 진을 가희가 포목점으로 불러내 그를 유혹하기도 하고 몸이 더 달게 만드는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강한나와 강하늘 모두 정제된 이미지의 배우들이었던 만큼 두 배우가 프레임 속에서 자유롭게 연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강한나 역시 이 장면을 연기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으로 꼽았고 연기적으로 다양한 시도가 가능했다고 회상했다.
"진과 포목점에서 은밀하게 만나는 장면은 저도 연기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에요. 연기도 표현도 여러 가지 시도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장면이죠. 가희는 진에게 당했던 기억이 있는데 반대로 그 장면은 가희가 진을 갖고 노는 신이었어요. 스스로 제약을 두지 않아서 연기자로서도 분명 재미가 있었던 장면이었죠. 강하늘씨와는 대학 시절에 알던 사이라 친근함이 있었는데 현장에서 스태프들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니 배울 점도 많더라고요."
강한나는 준비된 배우 같았다. 극 중 세 남자에 따른 감정 변화를 치밀하게 계산된 연기로 보여주기도 했고 자신이 연기했던 인물에 대한 생각을 막힘 없이 정확하게 이야기할 줄도 알았다. 이는 배우가 자신이 연기하는 극 중 인물에 익숙한 탓이기도 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되돌아보면 크게 욕심을 내지 않고 단역과 조연을 넘나들며 차근차근 연기력을 쌓아왔다는 느낌이다. 강한나는 필모그래피가 인상적이라는 말에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다고 털어놨다.
"사실 저는 향후 할 작품들에 출연하기 위해 연극이나 독립 영화 출연을 발판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예요. 다 제게 필요했고 피가 되고 살이 됐던 시간들이었죠. 드디어 제게 기회가 왔기 때문에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느끼는 가희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너무 매력적인 역할이었던 만큼 이를 표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자고 생각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연기 노트였어요. 원래 분석적인 성격은 아닌데 연기를 위해 시도한 방법으로 노트를 쓰기 시작했죠."
강한나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배우가 되기보다 소박한 인간 강한나로 살고 싶다고 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그런 좋은 사람이자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자신 안에 흔들림 없는 반듯한 중심이 세워지길 바라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차기작을 고민하고 있지만 가까운 곳에라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도 말했다. '순수의 시대'를 통해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준 그의 다음 얼굴이 기대된다.
"어떤 배우가 돼야겠다라는 건 너무 큰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요. 연기자로서는 주어진 작품들에 최선을 다하고 개인적으로는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새로운 삶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직까지는 못 해본 배역들이 많아서 구체적으로 어떤 배역을 맡고 싶은지 고르는 건 어렵지만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 크고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면 언제든 출연하고 싶어요."
aluem_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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