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진심, 연기와 이보영 그리고 딸(인터뷰)

(서울=뉴스1스포츠) 장아름 기자 =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는 줄곧 '만약'이라는 가정(假定)이 뒤따랐던 드라마였다. 만약 지성이 '킬미, 힐미'에 출연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지성과 황정음이 '킬미, 힐미'에서 재회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드라마로 남게 됐을지 많은 이들은 상상하곤 한다. '킬미, 힐미'는 본래 지성에게 가장 먼저 제의가 갔던 드라마가 아니었다. 다수의 남자 배우들의 잇따른 정중한 고사로 '불운의 드라마'가 될 뻔 했지만 지성을 만나 날개를 달았고 곧 '행운의 드라마'가 됐다.

배우 지성(39)의 재발견이었다. 단순히 7개 인격 연기에 도전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차도현, 신세기부터 안요나, 미스터 엑스까지의 다양한 인격들을 오롯이 연기력 하나만으로 조형해냈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쏟는 연기에 작품을 향한 배우의 진심이 묻어났던 까닭이다. 그 어느 인격 하나 등한시 하지 않고 캐릭터의 모든 깊이를 연기하는 모습에 차도현을 향한 연민도, 신세기를 향한 애정도 가능했던 셈이다.

최근 강남구 신사동 모처에서 지성을 만났다. 지성은 드라마 종영 소감과 더불어 기억에 남는 촬영 에피소드, 연기에 대한 생각 등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특히 그는 작품으로 높아진 인기와 연기 호평에 대해 "내 길은 한참을 달려 돌아가야 하는 길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한참을 돌아온 길에서 얻을 수 있었던 주위의 찬사인 만큼 감사함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킬미, 힐미'처럼 앞으로도 진심을 담을 수 있는 작품과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배우 지성이 최근 강남구 신사동 모처에서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 종영 소감을 전했다. ⓒ 뉴스1스포츠 / 나무액터스

Q. 드라마를 끝낸 소감이 어떤가.

A. 작품에 늦게 합류해 서둘러 캐릭터를 준비해야 했다. 어떻게 연기를 해야할지, 어떤 메시지를 담아내야 할지 고민이 컸다. 욕심을 내려놓고 결과에 기대지 않고 연기를 하려 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공감해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제작진이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줬고 현장에서 묵묵히 지켜봐줬기 때문에 내 인생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작품이 됐다.

Q. 촬영 중 급성 성대 부종에 걸렸다는 소식에 많은 시청자들이 안타까워했다.

A. 일단 강행군이 계속됐기 때문에 몸이 안 좋아졌었다. 17회에서 괴성을 지르는 촬영이 있었는데 감정에 몰입하다 보니 목이 아예 잠겨 소리가 안 나오기도 했었다. 병원에 가서 긴급 조치를 받았다. 목이 돌아오기까지 하루가 걸렸는데 나 때문에 방송 펑크나는 건 아닌지 걱정했었다. 다행히 목소리가 금방 돌아와서 촬영을 잘 마칠 수 있었다.

Q. 다수의 남자 배우들이 고사했던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출연을 결심했는데 '킬미, 힐미'의 어떤 점에 끌린 것인가.

A. 처음에 시놉시스와 대본을 우연히 보고 내게 제안을 해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실제로 내게 제안이 왔을 때 바로 결정을 내렸다. 김진민 감독님과 10년 전에 MBC 드라마 '떨리는 가슴' 한 회를 같이 촬영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정말 가슴이 따뜻해졌던 좋은 기억이 있었다. 결국 감독님 덕분에 최종 결정하게 된 셈이다.

Q. 7개 인격을 연기하면서 감정 소모도 상당했을 것 같다. 이 때문에 여러 인격과 이별하기 아쉬웠을텐데.

A. 모든 인격들이 다 소중했다. 내가 언제 안요나처럼 여자 교복을 입고, 신세기처럼 아이라인을 그리고, 페리박처럼 구수한 여수 사투리를 써가면서 연기를 할 수 있겠나. 나에게는 캐릭터가 하나하나 다 소중하게 남아 있고 정성들여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떤 캐릭터가 가장 좋았는지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Q. 7개 인격을 연기하면서 혼란을 겪진 않았을까.

A. 사실 작품이 끝나면서 많이 걱정됐다. 일상으로 잘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작품의 여파가 올 것 같아 겁이 난다. 시간이 지나서 너무 아플 수도 있고 우울증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전에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도 많아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는 생각이다.

Q. 다중 인격을 연기하는 점에 있어서 흥미로웠던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A. 차도현의 여러 인격은 각기 다른 캐릭터이지만 한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연관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분노할 때 나타나는 신세기,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는 페리박, 마음이 나약한 요섭, 항상 뛰어놀고 싶은 요나, 마지막에 등장했던 나나와 미스터엑스가 있는데 이 캐릭터들이 차도현의 어린 시절을 통해 나타나게 되면서 한 사람의 차도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때문에 나는 요나를 연기하면서도 웃기지 않았다. 이런 인물들이 차도현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보니 연기하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던 것 같다.

배우 지성이 최근 강남구 신사동 모처에서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에서 7개 인격을 연기한 소감을 털어놨다. ⓒ 뉴스1스포츠 / 나무액터스

Q. 아내 이보영은 어떤 인격을 좋아했나.

A. (이)보영씨는 요나를 가장 좋아했다. 어느날은 요나가 나오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고 해서 홍대 촬영장에 온 적이 있다. 사실 구경하는 인파가 많아서 처음엔 창피했었는데 이건 연기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뛰었다. 이 모습을 보영씨가 숨어서 지켜보면서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 우리 가장이 여자 교복을 입고 길거리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뭉클해졌다고 했다. 그 이후로 도시락도 잘 싸주고 대우가 좋아졌다. (웃음)

Q. 요나가 바르는 틴트가 완판을 기록하기도 했다.

A. 완판돼서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난 여자가 아니니까 처음엔 어이가 없더라. 그런데 틴트는 요나에게 정말 중요한 무기이지 않았나. 뛰면서도 입술에 바르기도 하니까. (웃음) 업체에서 틴트를 선물해줘서 보영씨에게 갖다주기도 했다.

Q. 황정음과는 드라마 '비밀'에 이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두 배우에게도 '킬미, 힐미'는 더욱 남다른 작품일 것 같다.

A. 사실 배우들이 두 작품을 같이 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나처럼 연달아서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배우들 간의 호흡이 정말 중요한데 (황)정음씨가 리액션을 정말 잘해줬다. 상대방이 리액션을 받아주지 않으면 내 연기도 무의미해진다. 초반에 신세기가 나타나 "기억해, 내게 네게 반한 시간"이라는 대사를 했을 때 정음씨가 재치있게 받아주지 않았다면 그 장면이 잘 살지 않았을 것 같다.

Q. 황정음은 다시 지성과 호흡을 맞추고 싶다고 하더라. 황정음과 다시 연기 호흡을 맞출 생각이 있나.

A. 물론이다. 다시 할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같이 하고 싶다. 정음씨가 본인이 결혼하고 나서 다시 작품을 같이 하자고 했는데 아마 그렇게 될 것도 같다. (웃음)

Q. 극 중 오리진을 배려하는 차도현의 매너손도 화제가 됐다.

A. 내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여자는 사랑을 받고 사는 존재라는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항상 안쪽에서 걸으셨고 나는 찻길 쪽으로 걸었다. 그러다보니 행동 하나하나가 몸에 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보영씨는 그런 걸 잘 모르더라. 방송을 보고 자기한테도 그렇게 하냐고 물었다. (웃음)

Q. 지성이 꼽는 '킬미, 힐미'의 명장명과 명대사는 뭘까.

A. 요섭이를 통해 요즘 힘들게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희망과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전하고 싶었다. 마지막 불어 대사가 생각이 났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말하는, 그 대사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눈물이 나더라. 신세기의 대사로는 '기억해, 내가 네게 반한 시간'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지금도 팬들이나 스태프들에게 이 대사를 하면 정말 좋아해주더라.

배우 지성이 최근 강남구 신사동 모처에서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로 얻은 큰 인기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 뉴스1스포츠 / 나무액터스

Q. 드라마가 아동 학대와 관련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였는데.

A. 아동 학대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연기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차도현의 잘못 때문에 오리진이 대신 폭력을 당했던 것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특히 아역 연기자들이 너무나 연기를 잘해줘서 보면서도 눈물이 많이 났다. 요즘 기사들을 보면 워낙 안 좋은 일도 많이 발생하지 않나. 어린이집 아동 학대 문제도 있었는데 아이들은 우리가 아낌 없이 사랑해줘야 하는 존재다.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드라마에 자부심을 느낀다. 앞으로도 많은 드라마들이 단순한 재미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Q. 연말 연기대상 후보으로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더라.

A. 상은 중요하지 않다. 생각해본 적도 없다. '킬미, 힐미'를 한 것만으로도 대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면 상은 중요하지 않다. 과거에 다른 배우들이 찬사를 받는 기사를 보면서 나도 저런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요즘 나에 대해 좋은 기사가 나올 때마다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더 발전하는 배우가 돼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배우로 존재해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다. 내 길이 조금 돌아가더라도 한참을 달려 와야 하는 길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킬미, 힐미'처럼 진심을 담을 수 있는 작품을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잊지 않고 발전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

Q. 동 시간대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와 소재 유사 논란이 있었다.

A. 상대 프로그램이 같은 소재 드라마다 보니 여러 얘기가 나온 것 같다. 하지만 부담되는건 전혀 없었다. 각자 비슷한 소재를 다뤘지만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표절 의혹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은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진심을 다했을 뿐이다.

Q. ' 킬미, 힐미'를 통해 10대, 20대까지 팬층이 더 넓어졌다.

A. 이번 드라마 덕분에 아이돌이 아닌데도 아이돌급 대우를 받고 있다. 오리진 아역을 했던 친구가 나를 삼촌이 아닌 오빠라고 부르더라. (웃음) 내가 또 언제 아이돌급 대우를 받아보겠나. 두 팔 벌려서 환영이고 감사히 생각한다.

Q. 팬들의 자발적 봉사가 화제가 됐다.

A. 그 얘기를 듣고 정말 뿌듯하더라. 나 또한 좋은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참여하고 싶다. 단 몇사람이라도 작품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줬다면 다행인 것 같다.

Q. 곧 아이 아빠가 될텐데.

A. 빨리 딸을 보고 싶은데 시간이 안 간다. (웃음) 아기가 커가는게 눈으로 보이니 신기하더라. 예정일이 6월말이다. 그때 또 다시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aluem_cha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