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혁, 20대 끝자락서 연기 인생을 복기하다(인터뷰)

(서울=뉴스1스포츠) 명희숙 기자 = 20대 끝자락까지 숨 가쁘게 달렸다. 배우 최진혁은 계단 오르듯 차분하게 필모그라피를 채웠다. 그만큼 그의 20대 연기 내공은 단단했다. 인생에 있어 군대라는 중요한 선택지를 앞둔 최진혁, 잠시 배우로서 달려왔던 연기 인생을 복기(復棋)했다.

최진혁은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혈기왕성한 신임검사 구동치를 소화했다. 그는 백진희, 최우식, 이태환 등 젊은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추며 타이틀 롤로서 중심을 잡아나갔다. 또 한편으로는 최민수, 손창민 등 쟁쟁한 대선배들과 연기로서 자웅을 겨루기도 해야 했다.

"'오만과 편견'은 시청자들에게도 배우들에게도 어려운 드라마였죠. 저 역시도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 몰랐어요. 사실 입대 전 트렌디한 드라마를 하고 싶었는데 감독님을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죠. 대본을 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배우 최진혁이 최근 뉴스1스포츠와 만남을 가졌다. ⓒ 뉴스1스포츠 / 레드브릭하우스 엔터테인민트

그는 특히 작품 안에서 부장검사 문희만을 연기한 최민수와 부딪히는 장면이 많았다.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최민수의 캐릭터 앞에서 그는 자신의 연기 역시 변주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문희만하고의 관계는 스스로 잡아가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그게 배우로서의 숙제이기도 했고요. 문희만하고 제가 어떤 관계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게 대본에 그려졌죠. 저 스스로 이 사람은 롤모델 같은 느낌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배우지 말아야겠다고 설정하고 연기했어요. 최민수 선배님과 하는 신은 어려운 게 많았던 거 같아요."

쉽지 않은 배우라고 소문난 대선배 최민수. 하지만 최진혁은 그에게 더없이 많은 것을 배웠다. 최진혁은 자신의 연기 인생에 큰 가르침을 준 인연으로 주저 없이 최민수를 꼽았다. 실제로 최진혁은 인터뷰 내내 최민수와의 에피소드를 끊임없이 펼쳐내 '기승전최민수'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최민수 선배님 덕에 마인드가 많이 바뀌었어요. '오만과 편견'을 하면서 선배님이 배우가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하셨죠. 선배님은 메소드 연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아직 제가 메소드 연기를 펼치기엔 부족한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군대 다녀와서는 저만의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어요."

최민수는 최진혁에게 직접적인 언사로 배우의 덕목을 알려주는 한편 본능적인 연기로 최진혁 스스로 깨닫게 했다. 최진혁은 최민수의 연기를 보며 압도당하면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연기 색(色)을 발했다.

배우 최진혁이 뉴스1스포츠와의 만남에서 드라마 '오만과 편견' 종영 소감을 말했다. ⓒ 뉴스1스포츠 / 레드브릭하우스 엔터테인먼트

"최민수 선배님의 연기는 엄청나요. 등골이 오싹할 때도 있었고 소름이 돋을 때도 많았어요. 법정에서 대립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대본 받은 지 20분 만에 몰입하시더라고요. '저 사람의 자신감과 포스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최민수 선배님과 연기하면 저는 완벽한 구동치가 돼요. 그게 선배님이 가진 위대함인 것 같아요."

최진혁이 대선배의 포스 앞에서도 밀리지 않았던 건 구동치라는 캐릭터가 자신과 어느 정도 닿아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직의 틀 속에서 자유로웠던 구동치는 최진혁의 10대였고, 20대 중간 어디쯤이었다.

"어릴 때 반항기 있던 모습은 비슷한 것 같아요. 10대 때는 불의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면 선생님께 매를 맞더라도 할 말은 했어요. 피곤한 스타일이죠.(웃음) 하지만 또 나이를 먹을수록 단체 생활에서 모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안에는 지금 구동치가 반반 섞여있는 것 같아요. 진짜 안 되겠다 싶으면 여전히 할 말은 해요."

최진혁은 또래보다 조금 늦은 감이 있는 군입대를 앞두고도 움츠러들기보단 기지개부터 켰다. 배우로서 거침없이 달려온 필모그라피는 잠시 스톱이었지만 인간 최진혁은 인생의 또 다른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좋은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오만과 편견'을 통해 깨우친 게 많아요. 군대에서 지금 배운 점들은 반성하고 계획하려고요. 그런 게 저는 연기력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해요. 삽질하면서도 많은 걸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시간이 허투루 가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장혁 선배님도 군대에서 시간이 배우로서 묵은지가 될 수 있는 효과를 낸다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군대가기 전에 '오만과 편견'이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서 그게 더 안타깝고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죠. 그래도 군대 다녀와서 더 좋은 연기로 성장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배우 최진혁이 뉴스1스포츠와의 만남에서 군입대를 앞둔 심경을 고백했다. ⓒ 뉴스1스포츠 / 레드브릭하우스 엔터테인먼트

3월 입대 예정인 최진혁은 늦은 입대와 이른 발표 등으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런 점이 최진혁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어쩌다보니 군대에 늦게 가는 건 제가 제일 서운하죠. 그런데 그런 부분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시거나 생색내냐고 할 때는 좀 걱정되더라고요. 가기 전에 조용히 가고 싶었는데 잘 안 돼서 스트레스예요."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활어처럼 팔딱였던 최진혁은 잠시 한 발 떨어져 관찰자가 돼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아쉽다기보단 다시 달릴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20대를 꽉 채웠던 수많은 작품으로 최진혁은 이미 배우로서의 자신을 단단하게 조형(造形)했다.

"그동안 목표를 정해놓고 달려오진 않았어요. 그래도 저는 썩 만족해요. 초반에 일일드라마 등을 하면서 연기 내공을 쌓은 것도 나름대로 만족하고 최근에 작품 활동을 많이 하면서 배운 것도 많아요. 남이 이야기할 때는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뿌듯해요. 어떻게 보면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하는 작품들도 잘 됐던 편이고요. 그래서 제 나이 대에 열심히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입대 전 마지막 작품으로 '오만과 편견'을 택했던 것은 최진혁에게 있어서 가장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대선배 최민수에게 '배우가 될 수 있는 놈'이라는 인정을 받은 그 날, 최진혁의 가슴 안에는 큰 파동이 있었다고 했다. 그 먹먹함을 잊지 않겠다는 최진혁, 다시 돌아와 펼쳐낼 30대의 연기 1막 1장이 기대된다.

reddgreen3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