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 다니엘이 비판한 히틀러…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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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온라인팀 = 1일 방송된 JTBC '비정상회담'으로 다시금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비정상회담'의 독일 대표 출연자인 다니엘이 "한국에서 가끔 나이 드신 분들이 잘 몰라서 그럴 것 같은데 '히틀러는 멋있는 사람이었다'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며 단호하게 "그런 얘기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일침을 놓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니엘은 "히틀러는 악마"라는 강한 표현도 서슴치 않았다.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히틀러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보였다. 히틀러는 누구인가?
히틀러는 독일의 정치가이며 독재자이다. 게르만 민족주의와 반 유태주의자를 내걸어 1933년 독일수상이 되었고, 1934년 독일 국가원수 자리에 올라 총통으로 불렸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히틀러는 1889년 4월 20일 독일 국경부근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히틀러를 애지중지 키웠다. 아버지는 엄격한 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업학교를 겨우 졸업한 히틀러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실패한다.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무력한 삶을 살고 있던 히틀러에게, 어머니의 죽음과 제1차 세계 대전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당시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 빈의 '카를 뤼거(Karl Lueger)'가 퍼트린 반유대주의가 널리 확산되고 있었다. 히틀러 역시 마찬가지였다. 히틀러는 '자본, 특히 거대자본의 대부분이 유대인의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나라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테러를 행하고 있다'는 뤼거의 대중 선동에 깊게 공감했다. 히틀러는 유대인이 자신이 겪은 비극의 원흉이라 믿었고, 유대인이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는 음모론에 집착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출생이었지만, 독일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독일에 대한 열망으로 히틀러는 독일군에 입대한 그는, 제대 후 대중연설가로 변모했다.
히틀러는 수려한 연설 실력을 바탕으로 조금씩 자신의 추종자를 만들어 나갔다. 연설은 대부분 유대인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유대인과 그들을 돕는 자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연설은 전쟁이 끝난 후 비참한 독일의 속죄양을 찾고 있던 독일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후 독일 노동자당에 입당한 히틀러는, 독일노동자당의 당기를 디자인하고 당명도 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NSDAP, 일명 나치스)로 바꿨다. 히틀러의 수려한 연설로 나치당은 곧 2만 명이 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1923년에는 봉기를 일으켰다 실패해 1년간 투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출옥 후에는 정치적 기반을 쌓는 데 몰두했다. 대중 선동을 통한 집단 애국주의의 발현을 시도했고, 치욕적인 베르사유 조약을 넘어서 국토 확장과 경제 번영을 독일 국민에게 약속했다.
그는 1933년 7월 '일당독재 체제'를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명실상부한 독일의 독재자가 되었고,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독일은 전쟁 초기 프랑스에서 크게 승리했지만, 스탈린그라드의 패전 후부터 패전을 거듭해 결국 패망의 길을 걸었다. 히틀러는 패색이 짙어지자, 베를린이 함락되기 직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히틀러가 생전 행했던 일 가운데, 가장 큰 비판을 받는 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관한 것이다. 그는 수용소에 유대인을 가두고 독가승 등을 이용해 유대인 400만명의 목숨을 빼앗는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다. 현재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와 제2수용소를 포함한 보호구역은 인간 존엄성을 부정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잊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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