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확정'이라는데…한미 팩트시트엔 아직 '검토'인 알래스카 LNG

확정 사업은 '텍사스주 가스복합화력발전'
원전·알래스카 LNG는 '조건부 추진 여부 판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가운데)이 30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왼쪽 위), 더그 버검 내무장관, 댄 설리번 연방 상원의원과 함께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집무실)에서 한국의 대미투자를 발표하고 있다. ⓒ AFP=뉴스1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전략투자 사업으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사실상 확정된 사업인 것처럼 발표했지만, 정작 한미 양국이 공개한 공동 팩트시트에는 알래스카 LNG의 추진 여부가 여전히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법적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따져 결정해야 하는 사안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팩트시트란 외교·정책 분야에서 협상·합의 결과를 압축해 발표하는 공동 설명자료다.

트럼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발표한 '한국의 알래스카 LNG 투자'와 실제 한미 간 합의된 사업의 확정 수준 사이에 차이가 있는 셈이다. 특히 이번 발표가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투자 성과를 부각하는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서, 알래스카 LNG를 둘러싼 미국 측 발표에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알래스카에서는 공화당 현역 상원의원이 재선에 도전하고 있어 대규모 투자 발표가 지역 표심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반면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는 구체적인 사업 규모와 일정, 사업 구조 등이 공동 팩트시트에 담기면서 양국이 합의한 첫 번째 전략투자 사업으로 사실상 확정됐다. 원전 사업 역시 8기 건설이라는 큰 틀은 합의됐지만 개별 원전의 부지와 일정, 상업적 조건 등은 후속 절차를 거쳐 확정하기로 했다.

대미 투자 1호 사업, 텍사스 가스복합화력은 '확정'

한미 공동 팩트시트에서 구체적인 개별 사업으로 가장 명확하게 확정된 것은 'Project Star'인 텍사스주 가스복합화력발전소다.

텍사스 라살 카운티 엔시날에 총 223억 달러를 투입해 6472메가와트(MW) 규모의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운영하는 사업이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은 인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에 공급하며, 1단계 상업운전은 2029년, 전체 설비 가동은 2032년을 목표로 한다.

한국 정부는 이미 사업관리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심의·의결, 국회 보고 등 국내 절차를 거친 뒤 상업적 합리성을 충족하는 사업으로 판단해 이를 대미 전략투자 1호 사업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의 참여 범위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발전 기자재 공급뿐 아니라 설계·시공, 장기 운영·정비 등 사업 전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참여를 확대하고, 미국 측도 향후 미국 내 유사 프로젝트에서 한국산 기자재와 터빈 공급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대미 투자 가운데 텍사스 사업은 양국 간 합의문에 담긴 내용과 실제 사업 확정 수준이 대체로 일치한다.

알래스카 LNG, 트럼프는 '투자' 발표했지만 팩트시트는 여전히 '조건부'

차이는 알래스카 LNG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국 정부가 앞서 공개한 대미 전략투자 추진계획에서 알래스카 LNG는 텍사스 엔시날 가스발전소와 달리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법상 조건을 충족하는지를 추가로 검토한 뒤 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사업으로 분류됐다.

당시 한국 정부 발표안에는 미국 측이 한국 기업과 공급업체의 우호적인 참여 여건을 조성하고, 사업에 필요한 기자재에 대한 관세 인하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경제성이 확보되는 조건의 장기 LNG 구매계약(offtake)과 한국에 대한 우선적 접근권을 보장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한미 양국이 이번에 공개한 공동 팩트시트에서는 이 가운데 관세 인하와 관련한 구체적인 문구가 빠졌다. 대신 미국은 한국 기업의 우호적인 참여를 지원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경제성이 확보되는 가격의 LNG 구매계약에 대한 보증과 한국의 우선적 접근권을 제공할 의향을 밝히는 수준으로 정리됐다.

무엇보다 사업의 확정 수준에서 차이가 난다. 공동 팩트시트에서 알래스카 LNG는 텍사스 발전소처럼 구체적인 투자 결정이 내려진 개별 프로젝트로 명시되지 않았다.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법적 요건 등을 검토한 뒤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사업이라는 기존의 조건이 남아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알래스카 LNG의 상업적 타당성을 추가로 검토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표에서는 분위기가 크게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과 함께 한국의 대미 투자계획을 직접 발표하면서 "대형 원자력 발전소 8기와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도 한국의 대미 투자 가운데 원전 8기에 1200억달러, 알래스카 LNG에 500억달러 이상, 텍사스 엔시날 가스발전소에 220억달러가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알래스카 LNG 투자액은 앞서 외신이 보도한 540억달러와도 연결된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2000억달러 투자계획 가운데 540억달러를 알래스카 LNG 사업에 투입한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체적인 금액이나 사업 규모, 알래스카 내 구체적인 사업 지역에 관한 내용은 한미 공동 팩트시트에 담긴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팩트시트가 사업 추진의 조건과 원칙을 제시하는 데 그친 반면, 트럼프 대통령과 러트닉 장관의 발표에서는 마치 한국의 자금 투입과 사업 추진이 확정된 것처럼 구체적인 숫자와 사업 내용이 제시된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중간선거란 정치적 배경이 작용한 것이란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에너지·인프라 투자 성과를 잇달아 부각하고 있는 데, 알래스카 LNG는 특히 알래스카의 오랜 숙원사업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상징성이 큰 사업이다. 로이터통신 역시 이번 발표가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적 성과를 강조하는 행보의 하나라고 분석했다.

미국 알래스카주 페어뱅크스의 액화천연가스(LNG) 파이프라인. 2019.8.28. ⓒ 뉴스1 ⓒ 로이터=뉴스1
원전 8기도 '큰 틀 합의'와 개별 사업 확정은 달라

원전 사업도 비슷한 차이를 보인다. 양국은 APR1400 2기와 AP1000 6기 등 모두 8기의 대형 원전을 건설한다는 큰 틀에 합의했다. 전체 사업 규모는 최대 1200억달러(약 162조원)다.

다만 한국 정부가 기존 추진계획에서 제시했던 구체적인 건설 순서와 단계별 EPC 계약 시차 등은 이번 공동 팩트시트에서 빠졌다.

공동 발표에서는 부지와 일정, 상업적 조건 등이 확정되는 대로 개별 원전 프로젝트를 별도로 확정·발표한다는 구조가 제시됐다. 따라서 '8기 건설'이라는 사업 프레임워크가 마련된 것과 8개 원전 사업에 대한 최종 투자 결정이 모두 끝났다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다만 원전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 연말까지 최대 100억달러 규모의 선급금을 활용해 원자로 용기와 증기발생기 등 장주기 품목을 조기에 확보하는 방안은 제시됐다. 이 역시 국내법적 요건 충족을 전제로 한다.

이런 가운데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이날 공동 팩트시트에 담긴 내용보다 한층 구체적인 사업 구상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러트닉 장관은 "가장 큰 규모는 1200억 달러(약 162조 원) 규모의 초대형 원자력 발전소 8기를 건설하는 것"이라며 "오하이오, 테네시, 사우스캐롤라이나, 켄터키 등 미 전역에 원전이 건설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트닉 장관이 언급한 구체적인 건설 지역은 이번 공동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은 내용이다. 공동 문서가 개별 원전 프로젝트에 대해 부지와 일정, 상업적 조건 등이 확정된 이후 별도로 발표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것과 비교하면, 미국 측 고위 당국자가 향후 사업의 구체적인 모습을 앞서 공개한 셈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내 원전 건설과 투자 확대 성과를 부각하려는 정치적 메시지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러트닉 장관이 한국의 대미 투자 성과를 설명하면서 주별 건설 지역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한 만큼, 아직 개별 사업의 최종 조건이 확정되지 않은 단계에서 미국 내 유권자들에게 투자와 일자리 창출 효과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러트닉 장관의 발언 배경에 대한 해석인 만큼, 실제 개별 원전 사업의 확정 여부는 향후 부지·일정·상업적 조건과 국내법적 요건 등을 충족한 뒤 내려질 최종 결정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웨스팅하우스 지분도 '추진' 단계…확정 조건은 아직

한국 기업의 웨스팅하우스(WEC) 소수지분 투자 역시 양국 간 협력 대상으로 포함됐지만 구체적인 투자 기업과 지분율, 가격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앞서 발표한 계획에서도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를 추진하되 구체적인 투자조건은 기업 간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는 계획이었다.

결국 이번 한미 공동 팩트시트에서 사업별 확정 수준은 차이가 있다.

텍사스 가스복합화력은 구체적인 사업 내용과 투자 규모, 일정까지 제시된 '1호 확정 사업'에 가깝고, 원전은 8기 건설이라는 큰 틀을 확정한 뒤 개별 사업을 후속 확정하는 단계다. 알래스카 LNG는 상업성 및 국내법적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추가로 검토한 뒤 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LNG를 한국의 확정 투자사업으로 발표한 것과 한미 양국이 공동 팩트시트에서 합의한 사업의 확정 수준 사이에는 분명한 온도 차가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알래스카 LNG 사업의 경우 우리 정부도 어쨌든 일정 부분 참여하기로 했던 사업"이라며 "결정한 만큼 협의를 이어나가면 되는 문제다. (외신 보도에서)공개된 540억 달러도 단기 투자가 아닌 장기 투자를 얘기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