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고령농 농지 일괄처분 안한다…'관행 임대차'도 조건부 처분유예
상속·이농·고령으로 휴경한 농지, 농지은행에 위탁 관리
전수조사에 따른 임차농 보호…임대차 특별 정비기간 운영
-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정부가 현재 진행 중인 농지 전수조사에서 상속·이농·고령화 등 불가피한 사유로 발생한 농지법 위반은 일률적으로 처분하지 않고 농지은행 위탁 등을 통한 정상화 기회를 주기로 했다.
관행적으로 이뤄진 임대차나 미등기 상속 등 경미한 위반도 자진 정비와 농지은행 위탁을 통해 정상화할 수 있도록 하고, 실제 영농 의사 없이 농지를 취득하거나 불법 전용하는 등 투기성·중대 위반은 법에 따라 조치한다.
농지 전수조사를 두고 자칫 농지를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농촌 현장의 우려와 국민의힘 등 야권의 비판이 나온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도 선의의 농업인은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부가 제도 보완에 나선 것이다.
농식품부는 21일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농지 전수조사 추진상황 및 향후 조치계획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고 밝혔다.
우선 농식품부는 현재 진행 중인 농지 전수조사와 관련해 상속 농지나 고령 농업인의 농지를 투기 농지와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상속이나 이농으로 농지 소유 상한을 초과한 경우에는 농지은행에 임대를 위탁하는 방식으로 처분 의무를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행 관련법에는 상속·이농자가 소유한 농지가 1헥타르(ha)를 초과한 경우 농지은행에 임대 위탁하게 돼 있다.
고령 농업인이 직접 경작하기 어려워 휴경 중인 농지 역시 농지은행에 관리권을 위탁할 수 있도록 한다. 맹지나 경사지 등 현실적으로 직접 경작하거나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운 농지는 농지은행이 필요한 경우 농지로 복구해 임대하거나 영농형 태양광 등 대체 활용 방안을 검토한다.
즉, 고령이나 상속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한 농지 문제를 곧바로 처벌이나 처분으로 연결하기보다는 농지를 다시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농업인 간 편의상 농지를 바꿔 경작하거나, 마을의 여러 농지를 한 명의 농업인이 모아 경작하는 등 농촌 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임대차도 정상화 대상이다.
이 같은 임대차가 투기 목적이 아니라면 농지은행에 임대 위탁하고, 농지은행이 해당 농지를 실제 경작자에게 우선 임대하도록 해 실경작자의 영농을 계속 보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미등기 상속 등으로 소유자가 불분명한 농지는 대리 경작자를 지정하거나 재산세 납부자 등이 대표로 농지은행에 위탁한 뒤 실경작자가 임차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한 농지도 투기 목적이 아니라면 지분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거쳐 농지은행에 임대 위탁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전수조사로 인해 기존 임차농이 갑자기 농지를 떠나야 하는 상황도 막는다.
농식품부는 임차인 퇴거 등 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임대차 특별 정비기간을 오는 11월 15일까지 연장한다. 소유한 지 3년이 지난 농지를 조사 기간 중 농지은행에 위탁 임대하면 보완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농지법상 임대차 위반으로 보지 않는 방안도 추진한다.
다만 실제 농사지을 의사 없이 농지를 취득해 시세차익이나 개발이익 등을 노린 투기 행위는 예외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거짓 영농계획서를 제출해 농지를 취득한 뒤 무단 휴경·불법 임대를 하거나, 농업법인이 농지를 취득한 뒤 부동산업을 하는 경우, 경매 등을 통해 농지 지분을 공유 취득한 뒤 농사를 짓지 않고 불법 임대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인 투기 유형으로 제시됐다.
농업진흥지역에서 야적장·야영장 등 농지법상 설치가 제한된 비농업용 시설로 농지를 불법 전용하는 등 중대한 불법 행위 역시 원상회복 명령 등 법에 따른 조치를 받게 된다.
농지 전용 과정에서 발생한 경미한 위반에 대해서도 양성화 기회를 마련한다.
기존에 전용 신고·허가 절차를 거쳤다면 농지에 설치할 수 있었던 시설임에도 절차를 밟지 않아 불법 상태로 남아 있는 농업용·공공·기타 시설은 요건을 충족할 경우 농지보전부담금을 납부한 뒤 사후 전용을 추인해 합법 상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다만 비닐하우스나 버섯재배사로 위장해 식당을 운영하거나 태양광 발전에만 사용하는 등 법 위반 의도가 명백한 경우에는 본래 용도로 되돌리는 자진 정비 절차를 밟도록 한다.
농식품부는 이를 지난 1988년 이후 38년 만의 농지 불법 전용 양성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전수조사를 제재에만 활용하지 않고 전국 농지의 소유·이용 실태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농지 제도 개편과 농업 구조개혁에 활용할 계획이다.
고령화와 인구감소 등 농촌 현실에 맞춰 농지 임대차와 휴경 허용 사유를 확대하고, 그동안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였던 임차농의 권리 보호도 강화한다. 우량농지는 집적·규모화해 생산성을 높이고, 맹지·저활용 농지는 영농형 태양광 등 대체소득 창출 방안을 검토한다.
또 농지은행의 역할을 확대해 고령농에게는 공공 매입과 임대 위탁, 농지연금, 농지이양은퇴직불 등 농지의 현금화·유동화 수단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농지는 청년농과 귀농인의 영농 진입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농식품부는 처분 유예와 사후 전용 추인의 대상·절차 등을 담은 특별조치법 제정을 추진한다. 동시에 전수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농촌 현실과 현행 농지법 간 괴리를 해소하기 위한 농지법 개정도 병행할 계획이다.
현재 계획상 특별조치법 제정안을 연내 마련해 국회 의결을 추진하고, 내년 1분기 시행과 함께 위반 유형별 세부 지침을 마련한 뒤 2분기 농지법 개정안을 발의한다는 일정이다.
농식품부는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농업인은 걱정없게, 농촌은 활기차게'라는 방향 아래 명백한 투기는 바로잡되 선의의 농업인에게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농지 전수조사는 우리 농지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농지제도를 현실에 맞게 바꾸어 농업·농촌을 활성화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며 "선의의 농업인과 국민에게 불이익이나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농지 전수조사의 과도한 집행을 문제 삼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진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런 걸 하다 보면 우리 아버지가 농사를 짓다가 힘들어서 지금 농사를 못 짓는데, 그걸 강제로 팔라는 것이냐고 항의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오히려 우리가 매입해서 도와줄지언정 제재 대상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농사를 짓겠다고 써서 허가받고 실제로는 농사를 짓지 않고 다른 데 사용하는 행위"라며 "부동산 투기를 명확히 가려내기 위한 것"이라고 농지 전수조사의 취지를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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