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조 미래대응기금, AI보다 현금지원에 1.6조 더 쏟았다
현금성·직접지원 7조369억…AI 경쟁력 강화 예산보다 1조6318억 많아
반도체 호황 꺾여도 지출은 남아…"일시적 재원으로 항구적 지출"
- 임용우 기자, 이강 기자
(세종=뉴스1) 임용우 이강 기자 = 미래 대응을 명분으로 신설한 45조 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에 아동기본수당과 청년미래적금, 농어촌 기본소득 등 현금성·직접지원 사업 예산만 7조 원 넘게 편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기금의 15% 이상을 복지·소득지원 성격의 사업에 투입하는 셈이다.
잠재성장률 반등의 핵심으로 꼽히는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분야보다도 1조 6000억 원 이상 많다. 반도체 호황의 낙수 효과를 세대·계층·지역으로 확산하겠다는 취지지만, 미래 산업 투자보다 현금성 지원에 더 많은 예산이 배정되면서 기금의 성격이 당초 취지와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반도체 호황과 초과세수에 기대는 기금 재원과 지출의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업황이 꺾여 재원이 줄더라도 한 번 도입한 아동수당·청년지원·기본소득 등을 축소하기는 쉽지 않아, 일시적 재원으로 항구적 성격의 지출을 떠받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내년도 미래대응기금 45조 3858억 원 가운데 아동기본수당 지급, 청년미래적금,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출산지원금 지원, 청년월세지원, 혼인지원금, 우리아이자립펀드 등 7개 사업에 7조 369억 원이 편성됐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의 낙수 효과를 세대와 계층, 지역으로 확산하기 위해 대규모 현금성 지원에 나섰다. 지원 대상과 지급액을 대폭 확대하면서 일부 사업은 올해보다 4배 가까이 예산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동기본수당 지급 예산은 내년 2조 9272억 원으로 올해 아동수당 지급 예산(2조 4822억 원)보다 17.9% 늘었다. 기본 지급액을 월 20만 원으로 높이고 지역에 따라 최대 30만 원까지 지급하는 한편 지원 연령을 단계적으로 만 12세까지 확대하기로 한 영향이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예산은 내년 1조 1658억 원으로 올해(2341억 원)보다 398.0% 급증했다. 사업 대상 지역을 17개 군에서 35개 군으로 늘리고 국고보조율도 40%에서 50%로 높이면서 예산이 5배 가까이 불어났다.
청년미래적금 예산은 내년 1조 7011억 원으로 올해(7446억 원)보다 128.4% 증가했다. 개인·가구소득 요건을 폐지해 가입 대상을 넓히고 우대형 정부 기여율을 12%에서 15%로 높였다. 지방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에게 기여율 25%를 적용하는 유형도 신설했다.
청년월세지원 예산도 내년 2319억 원으로 올해(1300억 원)보다 78.4% 늘었다. 출산지원금 지원에는 6981억 원, 혼인지원금에는 1663억 원, 우리아이자립펀드에는 1465억 원이 각각 편성됐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고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놓인 농어촌에 성장의 과실을 나누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미래 산업을 육성해야 할 기금이 사실상 기존 복지·소득지원 사업을 확대하는 통로로 활용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금성 지원을 하다 보면 미래산업과 신기술에 대한 투자가 줄어드는 측면이 있다"며 "앞으로 세수가 줄어들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비까지 해 지출 규모를 책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도 "농어촌 기본소득 등은 전형적인 소득 보조이자 이전지출로 미래대응 성격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년에게 적금을 지원하기보다 AI 시대에 필요한 교육·훈련과 인적자본 축적에 투자하는 것이 기금 취지에 더 적합하다"고 비판했다.
직접지원 7개 사업 예산은 미래대응기금 전체 지출의 15.5%를 차지했다.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해 필수적인 과제로 꼽히는 AI 경쟁력 강화 분야 4개 사업 예산 5조 4050억 원보다 1조 6318억 원, 30.2% 많았다.
정부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내세운 AI보다 아동수당과 청년 적금, 기본소득 등 현금성 지원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한 셈이다.
AI 경쟁력 강화 분야 가운데 AI컴퓨팅 자원 활용 기반 강화 사업 예산은 내년 4조 2752억 원으로 올해(2조 1087억 원)보다 102.7% 늘었다. 국가 플래그십 초고성능컴퓨팅 인프라 고도화와 전 국민 AI 서비스 보편적 활용 지원, 프론티어급 AI 개발을 위한 데이터 경쟁력 강화 지원 등 나머지 3개 사업을 모두 더해도 직접지원 예산에는 미치지 못했다.
다른 회계·기금에서 미래대응기금으로 옮겨온 기존 사업에도 대규모 증액이 이뤄졌다. AI컴퓨팅 자원 활용 기반 강화, 청년미래적금,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청년취업진로 및 일경험 지원, 창업사업화지원 등 올해와 세부사업명이 같은 48개 사업의 내년도 예산은 16조 3458억 원으로 올해 국회 확정액(9조 3396억 원)보다 75.0% 증가했다.
증액 규모만 7조 63억 원으로 전체 미래대응기금 지출의 36.0%에 달했다. 미래대응기금이 신산업 투자를 위한 별도 재원이라기보다 기존 사업을 옮겨 예산을 대폭 불리는 수단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지출과 재원의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접지원 사업은 일단 시행하면 지급액이나 대상을 줄이기 어렵지만 기금 재원은 반도체 업황과 세수 여건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반도체 호황이 꺾여 초과세수가 사라져도 복지 지출은 그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래대응기금은 단기성 기금인데 장기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사업을 담으면 기금이 고갈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며 "이런 사업은 일반회계로 돌리고 기존 사업을 구조조정해 필요한 재원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철 교수는 "미래대응기금은 예외적으로 늘어난 일시적인 세수를 재원으로 하지만 현금성 지원은 대부분 한 번 도입하면 계속 지급해야 하는 항구적 지출"이라며 "일시적 재원으로 항구적 지출을 떠받치는 것은 재정 운용 원칙에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반면 복지 수준 향상을 위한 투자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복지 수준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다"며 "국민 세금으로 반도체 산업을 지원해 온 만큼 호황의 성과를 국민과 나눌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 호황으로 확보한 재정 여력이 특정 산업이나 계층에만 머물지 않고 세대와 지역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직접지원 사업을 확대했다"며 "출산·양육과 청년 자산 형성, 지역 정주 여건을 지원하는 사업도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응한다는 점에서 미래를 위한 투자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박홍근 기획처 장관은 최근 "미래대응기금이 언젠가는 소진되겠지만, 소진되더라도 필요한 사업은 일반회계나 다른 기금을 통해 계속 지원할 수 있다"며 "반도체 사이클이 어떻게 흘러갈지, 포스트 반도체 등 차세대 성장동력이 얼마나 형성돼 세수 여건이 나아질지, 그리고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소진 시점이 달라지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예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phlox@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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