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기업 해외 수주전 달라진다…亞개발은행 "기술·친환경도 평가"

2027년 새 조달방식 전면 적용…기술·가격 점수 합산
韓기업 아프리카개발은행서 5년간 18건·1억890만달러 수주

ⓒ 뉴스1 황덕현 기자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우리는 기후 프로젝트나 환경 프로젝트를 따로 두지 않습니다. 모든 개발 프로젝트가 기후를 고려하고 환경 측면으로 설계되도록 합니다.

올루푼소 소모린 아프리카개발은행 지역수석책임은 2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5차 한-다자개발은행 그린협력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개발도상국에 도로와 전력망, 상하수도 등을 짓는 과정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성을 일부 '녹색사업'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사업 전체의 기본 조건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이 행사는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주최했다.

이 같은 변화는 실제 사업자를 채택하는 방식에도 반영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지금까지 가격이 낮은 업체가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조달방식에서 벗어나 기술과 품질, 가격을 함께 점수로 평가하는 제도를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환경·사회적 지속가능성도 평가항목에 들어간다.

아시아개발은행의 새 조달제도는 2027년 1월 전면 적용된다. 올해 1월 입찰 전 기업과 미리 접촉하는 제도를 시작한 데 이어 7월부터 기술과 가격을 함께 점수화하는 방식과 현지 인력 참여 기준을 확대했다. 내년부터는 사업 승인 시기와 관계없이 적용 대상 사업 전반에 새 기준을 적용한다.

핵심은 가장 싼 업체를 단순히 고르는 방식에서 한발 벗어난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일정한 기술 기준을 넘은 업체 가운데 가격이 낮은 곳이 유리했다. 앞으로는 기술제안과 가격에 각각 점수를 매긴 뒤 합계가 높은 업체를 고른다. 환경과 사회 등 지속가능성 요소에는 기술 점수의 최대 25%까지 배정할 수 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싸게 짓겠다'는 제안뿐 아니라 친환경 기술을 얼마나 갖췄는지, 사업을 현지에서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도 수주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셈이다. 국제입찰 공사에는 전체 노동 투입량의 절반 이상을 현지 인력으로 채우도록 하는 현지참여 기준도 포함됐다.

실제 세계은행 사업에서는 기술과 가격을 함께 따져 한국 기업이 계약을 따낸 사례도 나왔다. 수성엔지니어링과 다산컨설턴트 합작법인은 몽골 교통·물류개선사업 감리계약에서 기술 80%, 가격 20%로 평가받아 종합 94.80점으로 1위를 기록했다. 기술 점수만 보면 경쟁업체보다 낮았지만, 가격을 합친 최종점수에서 앞섰다.

기업이 입찰공고가 나온 뒤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주문도 나왔다.

장루(Jiang Ru) 세계은행(World Bank) 글로벌환경국 지식은행 매니저는 "조달은 분명 중요하고 다자개발은행 계약을 따내기 위한 경쟁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경로일 뿐"이라며 "기업이 더 일찍 참여할수록 시장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은행 사업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미경제통합은행(CABEI)도 비슷한 주문을 내놨다. 만프레드 코퍼 최고지속가능경영자는 "평가기준을 이해해야 한다"며 "기업들이 제안서에 많은 내용을 넣지만 정작 우리가 평가하는 내용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지에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고 사업 초기부터 발주기관과 접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개발은행이 조달방식을 바꾸는 것도 개도국 인프라의 가격만이 아니라 장기간의 성능과 환경·사회적 영향을 함께 보겠다는 국제개발금융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처음 건설할 때 가격이 싸더라도 유지비가 많이 들거나 환경·사회적 비용이 커지면 사업 전체로는 손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국 기업의 기반이 전혀 없는 시장도 아니다. 아프리카개발은행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최근 5년간 아프리카개발은행 사업에서 18건, 총 1억890만달러 규모 계약을 수주했다. 이 은행이 2024년 승인한 사업은 84억7000만UA 규모였고, 이 가운데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물품·컨설팅 사업기회가 39억2000만UA에 달했다. UA는 아프리카개발은행이 사용하는 회계단위다.

앞으로 사업이 늘어날 분야로는 전력망과 에너지 저장, 폐기물·수처리 등이 꼽혔다. 게이주 미쓰하시 아시아개발은행 에너지국장은 "재생에너지는 전력망에 통합되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최근 사업이 발전소 건설을 넘어 전력망과 에너지 저장 설비를 함께 구축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2035년까지 아시아 지역 전력망 연결에 500억달러를 동원하고 재생에너지 20GW를 전력망에 연결할 계획이다. 미쓰하시 국장은 "전력망은 연결만 해서는 안 되고 디지털화해야 한다"며 한국의 디지털·정보기술 역량을 경쟁력으로 꼽았다.

소모린 책임은 아프리카의 경우 아직 필요한 인프라의 약 70%가 건설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는 처음부터 다르게 지을 수 있다는 의미"라며 "처음부터 녹색으로 건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환경 기준이 개발사업의 부수적인 조건에서 사업과 업체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옮겨가면서 한국 기업의 해외 인프라 수주전도 기술과 가격뿐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함께 입증하는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제언이다.

ac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