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투자 1호 발표 코앞인데…통상 수장 이어 투자책임자도 하차

한미전략투자공사 김경한 초대 전략투자본부장 두 달 만에 사임
한 달 사이 통상협상 고위급 연이어 교체…美는 협상 압박 수위↑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 7월 세종시 나성동 한미전략투자공사에서 열린 1차 한미전략투자 운영위원회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김기남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임용우 기자 = 미국 정부의 대미투자 이행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는 가운데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를 총괄하는 한미전략투자공사의 초대 전략투자본부장이 취임 두 달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미 관세협상의 실무사령탑이었던 여한구 전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전격 교체된 데 이어 대미투자 전담기구의 핵심 투자 책임자까지 중도 하차하면서 정부의 대미 통상·투자 대응 체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정부는 다음 달 대미투자 1호 프로젝트를 발표하기 위해 미국과 막판 협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상업적 합리성을 앞세워 에너지 분야를 우선 사업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미국은 반도체를 비롯해 자국 내 생산과 고용을 확대할 수 있는 사업에 강한 관심을 보이는 등 양국의 투자 우선순위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두 달 만에 떠난 초대 전략투자본부장…사임 배경은 '안갯속'

2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6월 18일 임명된 김경한 전 한미전략투자공사 초대 전략투자본부장이 이달 초 사직서를 제출했다. 김 전 본부장은 행정고시 38회 출신으로 외교부에서 국제경제국 심의관과 주베트남·브라질·미국 시카고·인도 참사관 등을 거치며 국제경제와 통상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 포스코홀딩스 글로벌통상정책 부사장, 커뮤니케이션본부 부사장, 무역통상실장 등을 역임한 글로벌 통상 전문가다.

한미전략투자공사는 지난해 한미 간 합의에 따라 추진되는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전략투자의 재원 조성과 관리·운용을 담당하기 위해 지난 6월 공식 출범했다.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 전략적투자의 운영 및 관리를 위한 특별법'에 따르면 대미투자 프로젝트는 먼저 산업부 산하 한미전략투자 사업관리위원회에서 상업성 등을 검증한다. 이후 한미전략투자공사 산하 운영위원회가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마지막으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공식 보고해야 투자를 확정할 수 있다.

당시 김 전 본부장은 전략적 투자와 글로벌 파트너십을 주도할 사실상 최고투자책임자(CIO)로 낙점됐다.

전략투자본부장은 에너지·조선·원전·방산·인공지능(AI) 인프라·핵심광물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 미국 내 투자처를 발굴하고 투자 구조를 설계하는 핵심 자리다. 특히 3500억 달러 패키지 가운데 조선 분야 1500억 달러를 제외한 2000억 달러 규모 전략투자의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발굴·구조화하고 사업성을 검토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김 전 본부장의 정확한 사임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 안팎에서는 업무 강도와 처우 문제, 공사 내부의 업무 방식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이견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산업부 출신인 박종원 공사 사장과 외교부에서 주로 경력을 쌓은 김 전 본부장 사이에 업무 방향이나 조직 운영을 둘러싼 시각차가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임 배경을 떠나 무엇보다 취임 두 달여 만에 대미투자의 핵심 실무 책임자가 교체됐다는 점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공사가 조직을 막 갖추고 1호 프로젝트를 구체화하는 시점에 핵심 투자라인에 공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박정성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통상추진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김기남 기자
여한구 교체 이어 美 압박…'에너지냐 반도체냐' 한미 이견도

대미투자를 둘러싼 정부의 내부 불안 요인은 최근 한 달 사이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 15일에는 한미 관세협상의 실무사령탑이었던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직권면직 형태로 전격 교체됐다.

산업부는 구체적인 사유를 공개하지 않았고, 정부 고위관계자는 "한미 관세협상과는 무관하다"고만 설명했다. 하지만 무역법 301조 등 대미 통상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협상 핵심 책임자를 교체한 만큼 통상라인의 연속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대미투자 이행 압박은 한층 거세지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16~19일 방미 기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이틀 연속 만나 1호 전략투자 프로젝트의 주요 쟁점을 조율했다. 김 장관은 귀국길에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실무진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은 쟁점이 남아 있음을 내비쳤다. 당초 '8월 말~9월 초'로 거론됐던 발표 시점도 현재는 '9월 중'으로 조정된 상태다.

현재 드러난 가장 큰 쟁점은 어떤 사업을 1호 프로젝트로 선정하느냐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전력 수요 증가와 국내 기업의 사업성을 고려해 에너지분야를 우선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도 최근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지금 와서 다른 분야로 바꿔 일정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미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생산 확대에 공개적으로 관심을 보여 왔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달 마이크론 행사에서 두 기업의 미국 공장 건설을 거론했다. 이를 두고 미국이 대미투자 1호 사업으로 메모리 반도체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김 장관은 최근 방미 과정에서 러트닉 장관과 반도체 관련 논의는 없었다며 선을 그었다.

최근에는 미국이 한국 정부와 한국전력에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 지분 공동 인수를 제안했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미국 내 원전 확대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의 원천기술과 한국의 원전 시공·공급망 역량을 결합하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다만 산업부는 이 같은 한미 공동 지분 인수설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공식 부인했다.

결국 3500억달러 대미투자의 핵심은 미국이 요구하는 '미국 내 산업·생산 기반 확대'와 한국이 강조하는 '상업적 합리성' 사이의 간극을 얼마나 좁히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으로서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만큼 투자 수익성과 회수 가능성을 따져야 하지만, 미국은 자국 내 생산·고용과 공급망 강화라는 정책적 효과를 더 중시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1호 프로젝트가 에너지 분야로 결정되더라도 미국이 어느 수준까지 투자 조건과 후속 사업을 요구할지가 변수다. 더욱이 협상을 담당해 온 통상 수장이 전격 교체되고, 대미투자를 직접 책임질 공사의 초대 전략투자본부장까지 두 달여 만에 사임하면서 협상의 연속성과 투자 집행 역량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다음 달 1호 프로젝트 발표를 앞두고 미국과의 이견을 좁히는 동시에 내부 투자·통상 라인의 안정성까지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3500억 달러라는 거대한 투자 패키지의 첫 단추를 끼우는 과정에서 대외 압박과 내부 불안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