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 구조조정 1호 '대산 프로젝트' 조건부 승인…5년간 가격인상 제한

LDPE·EVA 시장 4→3개 사업자로 재편…가격인상 제한·기존 제품 공급 의무
정보교환·임직원 겸임 금지…전적 인력 복귀시 1년간 관련업무 배제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김성준 기자

(세종=뉴스1) 심서현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석유화학 사업재편 제1호 기업결합인 '대산 1호 프로젝트'를 조건부 승인했다. 결합 이후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과 에틸렌 비닐아세테이트(EVA) 시장의 과점 심화로 가격 인상과 공급 축소 우려가 있다고 보고, 향후 5년간 국내가격 인상률을 수출가격에 연동하고 기존 제품의 공급을 유지하도록 했다.

공정위는 20일 롯데케미칼·롯데대산석화·HD현대오일뱅크·HD현대케미칼이 추진 중인 대산 1호 기업결합을 심사한 결과, 국내 LDPE·EVA 시장에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이 같은 시정조치를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합은 HD현대케미칼이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을 물적분할해 설립한 롯데대산석화를 흡수합병하고, 롯데케미칼이 HD현대케미칼 주식을 추가 취득하는 방식이다. 결합이 완료되면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HD현대케미칼 지분을 각각 50%씩 보유하며 공동 지배하게 된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26일 임의적 사전심사 신청을 접수한 뒤 관련 시장을 분석해 왔다. 사업재편계획은 지난 2월 25일 승인됐으며 당사회사는 지난 6월 15일 기업결합을 정식 신고했다. 이번 건은 정부가 추진하는 석유화학 사업재편의 제1호 기업결합이다.

대산 1호 '조건부 승인'…LDPE·EVA 과점 심화 우려

공정위는 양사가 동시에 사업을 영위하는 LDPE·EVA 시장에서 경쟁사업자가 기존 한화·LG·롯데·HD현대 등 4곳에서 3곳으로 줄어 과점 구조가 심화될 것으로 판단했다.

결합 후 생산능력 기준으로 3개 사업자가 약 50대 25대 25의 비율로 시장을 점유하게 된다. 판매량 기준 3사 합산 시장점유율은 LDPE가 82%, EVA는 95%에 달한다.

다만 공정위는 기업결합 자체를 불허하거나 주식 취득을 금지하는 구조적 조치가 필요할 정도로 경쟁제한성이 크지는 않다고 봤다.

전성복 공정위 기업거래결합심사국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구조적 조치에 이를 만큼의 경쟁제한성은 없었다"며 "행태적 조치를 촘촘히 설계하면 이번 결합에서 발생하는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전성복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결합심사국장이 2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석유화학 사업재편 관련 대산 1호 기업결합 건 심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6. 8.20 ⓒ 뉴스1 김기남 기자
수출가격보다 더 못 올린다…모든 기존 제품 공급 의무

공정위는 우선 앞으로 5년간 LDPE와 EVA의 국내가격 변동률을 수출가격 변동률에 연동하도록 했다.

수출가격이 직전 3개월보다 오르거나 같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국내가격 인상률은 수출가격 인상률 이하여야 한다. 반대로 수출가격이 떨어지면 국내가격 인하율은 수출가격 인하율 이상으로 책정해야 한다.

전 국장은 수출가격을 기준으로 삼은 데 대해 "가격 인상률을 제한하려면 경쟁가격에 가장 근접한 가격이 필요하다"며 "국내보다 경쟁이 훨씬 치열한 수출시장의 가격이 경쟁가격에 가장 가깝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2015년 석유화학 기업결합 사건에서도 수출가격을 기준으로 한 가격 제한 조치를 부과한 전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공급 축소도 제한한다. 기업결합 당시 생산하고 있던 모든 LDPE·EVA 그레이드에 대해 국내 수요자가 요청하는 물량을 공정하고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공급해야 한다.

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HD현대오일뱅크 간에는 가격·수량·원가·재고량 등 경쟁민감정보 교환을 금지한다. HD현대케미칼과 롯데케미칼 간 임직원 겸임도 제한하며, 사업재편 과정에서 HD현대케미칼로 전적했던 롯데케미칼 임직원이 복귀할 경우 1년간 LDPE·EVA 관련 업무에서 배제한다.

시정조치 기간은 5년이다. 공정위는 과거 기업결합 심결례와 약 3년인 사업재편 기간, 구조조정 이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본격화되는 시점, 중국 등 해외 경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전 국장은 "5년 뒤 당시 시장 상황을 보고 이번에 경쟁제한성을 판단했던 근거가 여전히 유효한지를 볼 것"이라며 "경쟁제한 우려가 계속 유지된다면 시정조치를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10년간 담합 전력도 고려…중소업체 대체거래선 부족

공정위는 이번 결합으로 신규 진입자가 만들어낸 경쟁압력이 사라지는 점도 고려했다.

HD현대케미칼은 2021년 말부터 LDPE·EVA 등을 본격적으로 생산·판매해 시장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해 왔다. 공정위는 HD현대케미칼의 제품 가격이 경쟁사보다 대략 10% 정도 낮았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결합 이후 당사회사가 제품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면서 저수익·저가 제품의 생산이나 공급을 중단할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 경우 제품 다양성이 줄어드는 동시에 시장 전반의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공정위는 LDPE·EVA 수요자가 대부분 중소 플라스틱 가공업체인 데다 공급처가 3곳뿐이고 경쟁사 가동률도 95~100%에 달해 대체 거래선 확보가 어렵다고 봤다.

두 제품이 범용제품으로 동질성이 높고 경쟁사의 생산능력이나 국제가격 등 주요 정보를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도 경쟁사업자 간 가격 협조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혔다.

LDPE는 에틸렌을 중합해 생산하는 합성수지로 농업용 필름, 식품 용기, 전선 피복, 종이컵 코팅 등에 사용된다. EVA는 에틸렌과 비닐 아세테이트 단량체를 중합해 만드는 합성수지로 신발 밑창, 글루건, 태양전지 필름, 요가 매트 등에 쓰인다.

과거 장기간 담합이 이뤄졌던 전력도 고려됐다. 공정위는 2007년 당시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등 7개 사업자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LDPE 판매가격을 담합한 사실을 적발해 과징금 541억 7500만 원을 부과한 바 있다.

현재 심사 중인 '여수 1호' 사업재편도 고려 대상이 됐다. 여수 1호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롯데케미칼을 매개로 HD현대케미칼과 여천NCC 간 지분 연계가 발생한다. 공정위는 향후 여수 1호 심사에서도 이번 대산 1호 결합 이후의 시장 구조를 반영해 경쟁제한성을 판단할 방침이다.

한편 통합 법인인 HD현대케미칼은 이번 기업결합 심사와 별도로 협력업체와의 상생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추후 공정위와 협의를 거쳐 발표한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가 석유화학 사업재편 제1호 기업결합을 신속하게 심사해 산업 구조조정을 뒷받침하면서도 경쟁제한 우려가 큰 시장에는 실효성 있는 시정조치를 부과해 중소 수요업체의 피해를 예방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seohyun.sh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