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엔 누가 경력직 키우나…'신입 절벽'이 부를 '숙련 절벽'

챗GPT 이후 세대 간 일자리 '희비'…20대 28.5만개↓·30대 27.6만개↑
작년 노벨수상자도 '지식 확산·훈련' 강조…한은, 고용정책 전환 제언

서울의 한 대학교 일자리 게시판 모습. 2026.8.18 ⓒ 뉴스1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인공지능(AI)이 우리에게서 가져갈 것은 수십만 개 일자리뿐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청년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숙련 인력으로 성장할 기회까지 줄어들면서, 미래의 숙련 인력 공급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초급 업무를 AI로 대체하는 것이 비용을 줄이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사회 전체로는 숙련 인력의 씨앗을 말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8일 한국은행 조사국 소속 오삼일 고용연구팀장과 오영식 조사역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챗GPT가 출시된 2022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4년 동안 청년층(15∼29세) 일자리는 28만 5000개 감소, 같은 기간 30대와 50대 일자리는 각각 27만 6000개, 23만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 일자리 감소분 중 26만 8000개, 비율로는 94.0%가 AI 노출도 높은 업종에 집중됐다. 근래 확산한 AI로 인해 '신입 직원 퇴출' 현상이 가속화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올해 신입은 AI야"…고학력일수록 취업 '바늘구멍' 역설

AI가 단순 노동직보다 전문·지식·과학 분야에 더 널리 쓰이면서 청년층에서는 고학력자일수록 고용 여건이 나빠지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챗GPT 출시 전인 2019년 1월∼2022년 10월 대졸 이상 청년의 평균 실업률은 8.2%로, 전문대졸 이하(8.0%)와 0.2%포인트(p) 차이에 그쳤다. 그러나 2022년 11월 이후에는 대졸 이상 7.0%, 전문대졸 이하 5.4%로 격차가 1.6%p까지 벌어졌다.

30∼59세에서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30대는 AI 노출 업종의 고용 증가세가 상대적으로 부진했지만, 전체 일자리는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AI 확산기 고용 부진이 노동시장 첫 진입 단계인 청년층에 유독 집중된 양상으로 풀이된다.

연구진은 국내 약 1600만 명을 포괄하는 국민연금 자료를 이용해 연령·업종별 취업자 수를 분석했다.

ⓒ 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신입은 줄고 경력 쌓기는 어려워지고…청년 '경력 사다리' 흔들

충분한 업무 경험과 조직 특유의 암묵지(暗默知·tacit knowledge·경험으로 쌓은 노하우)를 축적한 30대 이상 경력자는 AI를 즉시 생산성 향상 도구로 쓸 여지가 많다. 반면 청년층은 자료 검색·정리, 문서 초안 작성, 기초 분석, 번역, 단순 코딩 등 기존에 맡아온 초급 업무를 대부분 AI에 내주는 모습이다.

청년 고용 부진을 MZ 세대의 활발한 이직 성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AI 노출 업종 상용직에서 실업 또는 비경제활동 상태로 이탈한 청년은 2016년 1월∼2019년 12월 월평균 3700명에서 2022년 7월∼올해 6월 4900명으로 32% 급증했다.

자발적 이탈 여부는 정확히 구분되지 않지만, 기업 간 이직이 아닌 미취업 상태로 이동한 인원을 집계한 결과이기에 일정 부분 자발적 이탈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신규 채용 감소와 고용 상태 이탈이 동시에 확대된 만큼, 세대별 성향보다는 청년이 취업 후 경험을 쌓고 경력을 형성할 기반이 불안정해진 구조적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팬데믹 맞물려 학습 기회↓…AI가 부채질한 경력 선호

재택근무와 AI의 결합은 최근 청년의 경력 형성을 더욱 어렵게 한 요인으로 지목됐다. 재택근무가 선배의 업무를 지켜보며 피드백 받을 간접학습 통로를 줄였다면, AI 확산은 청년이 일하면서 스스로 수련할 직접학습의 기회마저 축소했기 때문이다.

오 팀장은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 확산 영향과 관련해 "해외 연구를 보면 주니어 직급은 선배의 피드백을 받지 못해 생산성이 크게 떨어졌지만, 시니어는 피드백 시간에 자기 업무를 하면서 오히려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최근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은 경력 사다리를 올라갈 출발 지점부터 발판을 잃은 셈이다

연구진은 다만 청년 고용 위축을 전부 AI 효과로 단정하지는 않았다. 팬데믹 후 과잉 채용 정상화와 기업 내부 교육 약화 등이 함께 작용했으며, AI가 기존의 채용·업무 변화를 가속한 결과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엘 모키르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제학·역사학 교수 ⓒ AFP=뉴스1
기업은 비용 절감, 사회는 숙련 공백…'공유지 비극' 유사

AI로 초급 업무를 자동화하고 신규 채용을 줄이는 것은 기업에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다수 기업이 동시에 같은 선택을 할 때다.

오 팀장은 "개별 기업에는 단기적으로 노동 비용을 줄여 이윤을 극대화하는 효율적인 선택일 수 있다"면서도 "사회 전체의 후생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주니어 없이 시니어가 생기지 않는다"며 "값싼 AI로 인재 파이프라인을 훼손하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숙련 인력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은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엘 모키르 노스웨스턴대 교수의 연구 내용과도 맞닿아 있다. 노벨위원회는 모키르 교수가 경제사 연구를 통해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유용한 지식의 끊임없는 흐름이 필요하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모키르 교수는 2018년 국제학술지 계간경제학저널(QJE) 공저 논문에서 전근대 장인들이 상품·서비스와 더불어 '새로운 장인' 또한 생산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술이 주로 친족·혈연 공동체에서 전승된 중국과 달리, 서유럽에서는 비혈연 장인-제자 간 훈련 계약이 길드와 시장형 도제 제도의 뒷받침을 받아 이행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보통 자연 상태에서 숙련 인력이 담당하는 훈련은 과소 공급될 가능성이 큰데 서유럽은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완화해 숙련 인력을 꾸준히 배출, 지속적인 기술·경제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다.

"채용 확대보다 숙련 초점…도제식 훈련·지원금 개편"

결국 문제는 "AI 시대에는 누가, 어떻게 숙련 인력을 길러낼지"로 귀결된다.

우선 연구진은 국가 고용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했다. 단순히 청년 채용을 확대하는 데서 벗어나 실제 경력 형성과 숙련도 향상을 이끌어야 한다는 취지다.

대표적으로 AI 활용법만 가르치는 교육에서 탈피해 실제 업무와 AI 활용, 숙련자 지도를 결합한 도제식 훈련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용 보조금은 '경력 형성 지원금'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원 대상에 청년 임금뿐 아니라 멘토링에 투입한 시니어 근로 시간 등을 포함하는 방식이다.

AI 구입비와 함께 훈련기간 임금과 시니어 멘토링 시간, 직무 재설계 비용 등도 교육훈련 투자로 인정해 기업이 AI 인력 대체를 자제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제언했다.

AI를 우수 근로자의 지식과 업무 방식을 전달하는 '디지털 코치'로 활용할 경우 청년의 학습 속도를 높이고 숙련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모키르 교수도 지난해 11월 인터뷰에서 세간의 AI 관련 비관론을 언급하면서도 "(AI를 활용해) 교육 등을 개인에 맞게 세밀히 조정할 수 있다면 인류의 삶을 크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