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 원+α '한국판 국부펀드' 내년 가동…AI·반도체 등 만기 없는 직접투자

산은·수은·기은 주식 16조 원 이상·물납주식 4조 원 출자
초기 현금성 재원 6000억 원…연내 법 개정 추진

재정경제부. ⓒ 뉴스1 김기남 기자

(세종=뉴스1) 임용우 기자 이상혁 수습기자 = 정부가 20조 원+α 규모의 초기자본금을 토대로 국내 전략산업에 직접 투자하는 '한국판 전략형 국부펀드'를 도입한다.

한국투자공사(KIC)에 기존 외환보유액 위탁계정과 분리된 전략투자계정을 설치한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방산, 바이오 등 전략산업을 비롯해 데이터센터·에너지 인프라와 해외 공급망 기업에 장기 지분투자할 계획이다.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 등 정부 보유 공공기관 주식 16조 원 이상과 상속·증여세 물납주식 약 4조 원을 출자해 초기자본금을 마련한다.

다만 20조 원 전체가 즉시 투자할 수 있는 현금은 아니다. 공공기관 주식에서 발생하는 배당 등을 활용해 출범 초기 약 6000억 원의 현금성 재원을 확보할 전망이다.

KIC에 별도 전략투자계정…외환보유액과 엄격히 분리

재정경제부는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본부 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한국판 전략형 국부펀드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재경부는 한국투자공사법을 개정해 KIC의 설립 목적에 '국부 증진'과 '전략산업 경쟁력 강화'를 추가한다.

현재 KIC는 외환보유액을 위탁받아 해외에서 외화로 재무적 투자를 하는 '저축형 국부펀드'다. 국내 전략산업에 직접 투자할 수 없는 만큼 별도의 전략투자계정을 설치해 전략적 투자 기능을 추가한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전략형 국부펀드 도입에 나선 것은 반도체와 피지컬AI, AI 데이터센터 등 3대 '대도약 메가프로젝트' 발표 이후 국내 전략산업에 대한 해외 투자자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해외 국부펀드와 자산운용사 등은 국내 우수기업 발굴과 투자 위험 완화를 위해 KIC 등에 공동투자를 맡을 국내 파트너를 문의해왔다. 정부는 전략형 국부펀드가 앵커투자자로 참여해 이들의 투자 수요를 국내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략산업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만 높은 비용과 불확실성으로 민간이 단독으로 투자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정부는 별도의 청산·회수 압력이 없는 국부펀드를 통해 장기 인내자본을 공급하고 잠재성장률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별도 기관을 설립하지 않고 KIC에 계정을 두기로 한 것은 KIC가 20년간 축적한 투자 전문성과 해외 국부펀드 네트워크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새 기관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줄여 투자도 조기에 시작할 수 있다.

전략투자계정은 기존 외환보유액 위탁계정과 엄격히 분리한다. 외환보유액에 대한 대외 신뢰도를 유지하기 위해 두 계정 사이에 방화벽을 설치하고 투자 결정도 별도로 진행한다.

재원은 정부의 출자·출연금과 개인·법인·단체가 기부하는 현금·증권, 운용수익 등으로 마련한다.

초기자본금은 20조 원+α 규모로 공공기관 주식 16조 원 이상과 물납주식 약 4조 원으로 구성된다. 공공기관 주식은 경영권 행사가 아닌 배당을 목적으로 보유하고 물납주식은 필요할 경우 매각해 투자재원으로 활용한다.

민경설 재경부 혁신성장실장은 "20조 원+α지만 현물출자받은 주식을 팔아서 투자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금성 재원은 초기에는 6000억 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추가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전략투자계정의 보유자산과 운용수익은 재투자와 정부 배당, 국고 환수에만 사용하고 운용수익에는 비과세 특례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부는 운영위원회를 통해 큰 틀의 전략산업 투자 방향만 제시한다. 일상적인 경영이나 개별 투자 결정에는 관여하지 않고 모든 전략투자는 KIC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심의·의결하도록 할 방침이다.

반도체 웨이퍼가 빛을 반사하고 있다. ⓒ 뉴스1 황기선 기자
AI·반도체 등에 초장기 지분투자…정책펀드 공백 보완

투자 대상은 AI와 로봇, 방산,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소재·부품·장비, 원전, 우주·항공, 양자 등 전략산업이다.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클러스터 등 전략산업 인프라와 은행·보험 등 금융 분야에도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산업의 가치사슬을 보완할 수 있는 해외 공급망 기업도 투자 대상에 포함한다. 핵심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의 지분을 확보해 기술 유출이나 외국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하는 역할도 맡는다.

투자는 대출이나 보증이 아닌 직접 지분투자 방식으로 이뤄진다. 별도의 만기나 청산 시점을 정하지 않고 전략산업 기업에 장기 자금을 공급하며 보유 지분만큼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민 실장은 "전략형 국부펀드는 단순히 재무적으로 투자하는 차원이 아니라 수익성과 함께 우리 경제·산업 발전, 잠재성장률 제고라는 전략적 목적을 포함한다"며 "필요한 경우 보유 지분만큼 경영에 참여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모태펀드와 국민성장펀드 등 기존 정책펀드가 청산할 때 유망기업의 지분을 인수하는 '이어달리기 투자'도 추진한다. 회수 기한이 있는 정책펀드의 투자 공백을 초장기 자금으로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해외 국부펀드와 글로벌 자산운용사 등의 공동·후속 투자를 유도하는 앵커투자자 역할도 맡는다. 국내 정책펀드 및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과의 협업 투자도 병행한다.

고광희 재경부 전략경제정책관은 "국민성장펀드는 정책성이 조금 더 강한 반면 국부펀드는 정책성과 수익성 가운데 상대적으로 수익성을 더 우선한다"며 "실제 투자 과정에서는 양측이 협업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8월에 한국투자공사법 개정안을 발의해 연내 국회 통과를 추진한다. 이후 시행령 개정과 투자체계 마련 등의 후속 조치를 거쳐 내년부터 전략형 국부펀드를 가동할 방침이다.

phlox@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