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저당 방식 확산 조짐에도 '통계는 無'…거시건전성 관리 리스크↑
공식 지표에 안 잡히는 '집주인 대출' 매물 늘어…강남 넘어 부산에서도
"근저당도 사금융, 내몰리면 사회적 비용↑…확산 여부 확인 장치 필요"
- 이강 기자
(세종=뉴스1) 이강 기자 = 금융권 대출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매도인 대출'이 확산하면 가계가 실제로 진 빚과 정부·한국은행이 파악하는 부채 사이의 괴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제는 차주의 상환 부담이 실제보다 작게 평가돼 금융안정 점검과 통화정책 판단에 오차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은 개인 간 채무는 한국은행의 가계신용과 금융권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공식 지표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기존 통계와 행정자료만으로는 일반적인 개인 간 대여와 매도인 대출을 구분하기 어려워 정부와 금융당국도 정확한 거래 규모와 대출잔액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28일 한국은행 등 금융당국과 관계부처에 따르면 이른바 '셀러파이낸싱' 또는 '매도인 근저당'의 건수와 금액, 대출잔액을 별도로 집계하는 곳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까지 관련 통계를 새로 만들거나 기존 통계에 별도 항목을 두려는 계획도 없다.
문제는 이러한 거래가 유의미하게 늘면 금융안정뿐 아니라 통화정책 판단에도 오차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기준금리를 올리고 금융권 대출을 억제해도 자금 수요가 개인 간 대출로 옮겨가면 긴축 효과가 예상보다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금리·단기 조건의 사적 채무가 소비를 위축시켜도 금리와 만기, 상환액을 알 수 없어 원인을 제때 진단하기 어렵다.
아울러 금융권 대출과 사적 채무를 함께 진 차주의 상환 부담이 실제보다 낮게 평가돼, 부실 위험이 누적된 뒤에야 드러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셀러파이낸싱은 주택 매도인이 은행 등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매수인에게 매매대금 일부를 빌려주는 거래다. 매수인이 계약금 등을 지급하면 매도인은 소유권을 넘기는 동시에 해당 주택에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차용증에 정한 대로 원리금을 돌려받는다.
거래 자체가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금융회사 대출처럼 금리와 상환 조건, 채권 회수 절차가 표준화돼 있지 않아 당사자 간 분쟁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다.
최근 시장의 관심이 커진 배경에는 강화된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있다. 규제지역에서 15억 원 이하 주택은 최대 6억 원, 15억 원 초과 25억 원 이하 주택은 최대 4억 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25억 원 초과 주택은 한도가 2억 원으로 줄어든다. 집값이 높을수록 매매가격과 금융권에서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의 간극이 커지는 셈이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까지 제한되면서 부족한 자금을 매도인에게 빌리려는 유인이 생겼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 부부의 경기 성남시 분당 아파트 매각도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 부부는 지난 14일 공동명의 아파트를 29억 원에 매도한 뒤 소유권 이전과 함께 채권최고액 17억 7000만 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청와대는 대출 규제를 우회하려는 거래가 아니라 매수인 사정으로 오는 10월 말까지 지급이 미뤄진 잔금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이며, 유예 기간 별도의 이자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통상적인 유이자 셀러파이낸싱과는 차이가 있지만, 이 사례를 계기로 매도인 근저당 방식이 알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후 서울 강남권을 넘어 경기와 부산에서도 '집주인 대출' 조건을 내건 매물이 등장했다. 공인중개업계에 따르면 강남구 삼성동 '아크로삼성' 전용면적 104.9㎡ 매물에는 호가 73억 9000만원에 집주인 대출 20억 원 조건이 붙었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124.22㎡도 호가 44억 5000만 원에 매도인 대출 가능 조건으로 등록됐다.
성동구와 수원 광교신도시, 부산 해운대에서도 유사한 매물이 확인됐다. 다만 이는 매물 광고 단계로 실제 계약 체결 여부와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통계의 빈틈을 곧바로 메우기 어려운 이유는 기존 통계의 편제 범위에서 개인 간 채무가 제외돼 있고, 행정자료만으로는 셀러파이낸싱을 다른 근저당 거래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한은 가계신용은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와 조사표를 토대로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산하기 때문에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은 가계 간 대출은 편제 대상이 아니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는 사인 간 거래이다 보니 관련 통계의 개발과 공표를 계획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도 "금융위는 금융회사를 통해 금융거래를 파악하는 곳"이라며 관련 통계가 없다고 밝혔다.
국가데이터처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는 개인이나 직장 등으로부터 빌린 돈이 금융부채 중 '기타부채'에 포함된다.
하지만 부동산 매매 과정의 사인 간 대출이나 매도인 근저당만 떼어낼 항목은 없다. 약 2만가구를 대상으로 한 연례 표본조사여서 관련 대출의 잔액·금리·만기·연체 여부와 최근 확산세를 신속하게 파악하기도 어렵다.
국토부의 주택취득자금 조달 및 입주계획서에는 '그 밖의 차입금'과 자금 제공자와의 관계를 적게 돼 있다. 개별 거래의 자금 출처를 살필 단서는 있지만 매도인 대출이 별도 항목으로 분류되지 않고, 거래 이후 잔액이나 상환·연체 여부도 추적하지 못한다.
국세청 역시 이 자료 등을 편법 증여나 탈세 검증에 활용할 뿐 채무 변화를 계속 관리하지는 않는다.
법원 등기자료에서는 개인·법인별 근저당권 설정 건수와 평균 채권최고액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근저당권자인 경우에도 사업자금이나 가족 간 대여 등 설정 원인이 다양해 셀러파이낸싱만 가려내기 어렵다. 채권최고액도 실제 대출원금이나 현재 잔액과 일치하지 않는다.
거래 규모가 아직 미미한 단계에서 별도 통계를 만들면 개인정보 수집과 신고 부담만 키울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다만 대출 규제 강화로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난 자금 수요가 매도인 대출 등 사적 신용으로 이동하면 이자 부담과 사회적 비용이 커질 수 있는 만큼, 확산 여부를 살필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저당도 또 다른 금융대출 형식이고 일종의 사금융"이라며 "공식 금융시장의 대출 제한으로 금융경색이 빚어지면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이자 부담이 커져 사회적 비용이 늘어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확산 여부를 확인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당국이) 다각도에서 논의·검토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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