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전쟁 전으로 뚝…국내 주유소는 여전히 2000원대, 왜?
정부 '최고가격제' 당분간 유지…한꺼번에 해제 시 물가 충격 우려
호르무즈 열렸지만 기뢰 위험 여전…국내 기름값 인하까진 '수주~수개월'
- 이정현 기자, 김승준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김승준 기자 = 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 이후 국제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내려왔지만, 국내 주유소 기름값은 여전히 리터(L)당 2000원 안팎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당분간 유지하기로 하면서 국제유가 하락이 소비자 가격에 즉각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최고가격제가 단계적으로 완화되더라도 중동 원유 공급 정상화와 국제 석유제품 가격 안정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하는 만큼, 국내 기름값이 본격적인 하락세를 나타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나흘 연속 하락하며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다. 24일(현지시간) ICE선물거래소에서 8월물 브렌트유는 배럴당 73.74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4.33% 떨어졌고, 뉴욕상업거래소의 8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70.34달러로 3.92% 하락했다. WTI는 장중 69달러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두 유종 모두 전쟁 발발 직전 수준까지 내려온 셈이다.
시장에서는 종전 합의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 우려가 완화되면서 원유 공급 불안이 진정된 점을 주요 배경으로 보고 있다. 전쟁 당시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국제유가가 70달러대로 내려오면서 에너지 시장은 일단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다.
반면 국내 소비자가 체감하는 기름값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25일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판매가격은 휘발유가 L당 2006.79원, 경유 1998.71원, 등유 1633원이다.
전쟁 발발 직후인 2월 28일 휘발유 평균 가격이 1692.9원, 경유가 1597.9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각각 300원 이상 높은 수준이다. 휘발유 가격은 전쟁 발발 열흘 만인 3월 10일 1906.9원까지 치솟았고, 이후에도 상승세를 이어가며 5월 1일 처음으로 2000원 선을 돌파했다. 최고치는 5월 10일 기록한 2011.9원이다.
통상 국제유가 하락은 정유사 공급가격과 유통 과정을 거쳐 국내 소비자가격에 반영되기까지 2~3주가량의 시차가 발생한다. 그러나 현재는 최고가격제가 시행 중이어서 일반적인 가격 전이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최고가격제를 당분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이란 간 종전협상이 아직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데다, 협상 결렬이나 중동지역 긴장 재고조로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봉쇄될 경우 국제유가가 급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같은 공급 불안이 재연될 경우 국내 물가 전반에 연쇄적인 상승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고 보고, 당분간 가격 안정 장치를 유지하며 시장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현재 적용 중인 최고가격은 휘발유 L당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으로 지난 3월 말 결정된 이후 석 달째 유지되고 있다.
당초 시장에서는 종전 국면 진입과 함께 최고가격제 폐지 또는 출구전략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정부는 전쟁 종료 이후에도 물가 안정 효과를 고려해 제도를 유지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로 산업부는 최고가격제가 휘발유와 경유, 등유 가격을 각각 L당 200~400원가량 낮추는 효과를 내고 있으며,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상당 부분 억제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부는 최고가격제를 한꺼번에 해제할 경우 그동안 억눌려 있던 가격 인상분이 시장에 반영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신 국제유가 하락 추세가 이어질 경우 최고가격 상한 자체를 단계적으로 인하하는 방식의 연착륙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도 최근 "현재 유가 수준은 종전과 비교해 내려온 상황이라 최고가격 자체를 내릴 이유는 있다"며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국내 기름값 하락 여부가 국제유가의 일시적 변동보다 정부 정책과 공급 정상화 여부에 달려 있다고 진단한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국제유가 하락이 2~3주 후 국내 가격에 반영되겠지만 현재는 최고가격제가 유지되고 있다"며 "최고가격제 일몰 시기와 손실 정산 규모에 따라 기업의 재고 가치 평가·재무 영향 등이 명확해지는데, 불확실성이 있는 상황에서 최고가격 이하로 몇십원씩 추가 인하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장태훈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국내 정유사 공급가격은 국제 석유제품 가격인 싱가포르 MOPS를 반영해 결정되는 구조여서 국제 제품가격이 내려가면 국내 가격도 하락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현재는 최고가격제가 시행되고 있고 유통구조도 복잡해 국제가격 하락이 소비자 가격에 언제 반영될지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유가 하락은 선물가 하락으로 향후 (호르무즈 봉쇄) 같은 리스크가 없다는 기대가 반영되며 빠르게 내려간 측면도 있다"며 "실제 산유국에서 책정하는 리스크 프리미엄 가격도 과거보다 높아 정유사들이 실제 도입할 때 드는 비용은 조금 더 높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향후 핵심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 통과 물량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지 여부"라며 "공급이 정상화되더라도 중국의 원유 수요 회복이나 각국의 비축유 재축적 수요가 발생하면 유가 하락 속도는 제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통상적으로는 2~3주의 반영 시차가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원유를 들여오는데 들어오는 추가 비용이나 실제 물동량 회복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며 "최근 호르무즈 해협이 열렸지만 기뢰 문제 등으로 나오는 선박이 많지 않기 때문에 물동량 회복이 더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요소가 안정화돼야 국제유가도 안정되고 제품가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국제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다고 해서 국내 기름값이 곧바로 내려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최고가격제를 유지한 채 단계적 조정을 예고한 데다 중동 지역 공급 안정 여부도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어 소비자가 체감할 만한 수준의 가격 인하까지는 수주에서 수개월가량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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