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우려한 고환율…종전 국면에도 1500원대 '요지부동'

대통령도 의문 제기…"펀더멘털 대비 과도한 환율"
연준 매파 기조에 달러 강세 심화…중동 변수도 여전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2026.6.23 ⓒ 뉴스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수출 호조와 사상 최대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에도 달러·원 환율이 1500원대를 이어가면서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합의로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원화 약세가 지속되자, 이재명 대통령까지 공개적으로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과도한 수준"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대통령도 의문 제기…"펀더멘털 대비 과도한 환율"

24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달러·원 환율은 23일 개장 직후 1540원대까지 올랐다가 1539.1원에 마감했다. 지난달 15일부터 25거래일 연속 1500원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6월 평균 환율(주간 종가 기준)은 1522.4원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2월(1626.7원) 이후 28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1500원대 중반 환율은 우리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실제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만 놓고 보면 수출은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고, 경상수지도 반도체 수출 호조 등을 바탕으로 역대 최고 수준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경상수지 흑자는 282억 9000만 달러로 역대 2위 규모였다. 일반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는 외화 공급을 늘려 원화 강세를 견인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시장에서는 기존 환율 결정 공식만으로는 현재 흐름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수출용 컨테이너가 쌓여있다. 2026.5.8 ⓒ 뉴스1 김영운 기자
경상수지 흑자에도 원화 약세…달라진 '펀더멘털 공식'

시장에서는 그동안 고환율의 주요 배경으로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꼽아왔다. 그러나 최근 양국이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전쟁이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음에도 환율이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것은 대외 변수 외에 국내외 수급 요인과 성장 전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주식 매도와 달러 환전 수요가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 받은 원화를 달러로 교환하면 환율은 상방 압력을 받는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우리 주가가 오르다 보니 외국인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며 이들이 10% 정도, 140조 원 규모의 주식을 매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걸 환전하면서 (환율이 올랐다)"고 진단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구조적 문제라기보다 단기적 문제인가"라고 물었고, 구 부총리는 "최근 특정 종목은 다시 사기 시작해 지켜봐야 한다"며 "이런 부분이 정리되면 환율도 안정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지난달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44조 7150억 원을 순매도하며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특히 전날 국내 증시도 급락세를 보이며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를 키웠고,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는 동시에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가 발동됐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환율 움직임을 단순한 외국인 자금 이탈이나 단기 수급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과거에는 경상수지가 흑자면 환율이 안정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국가부채, 재정적자, 성장률 둔화, 기업투자 부진 등 다양한 요인이 동시에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며 "경상수지는 양호하지만 다른 경제 펀더멘털이 약화되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환율은 현재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는 성격이 강하다"며 "지금 경상수지가 좋더라도 향후 성장세 둔화 전망이 강해지면 달러 수요가 늘면서 환율이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환당국은 최근 환율 상승이 단순한 수급 요인뿐 아니라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의 투기적 거래 영향도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 펀더멘털과 괴리된 과도한 변동성이나 일방향 쏠림 현상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하반기 환율 안정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최근 세미나에서 달러·원 환율이 향후 3개월간 1480원 안팎을 기록한 뒤 6~12개월 내 1450원 수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외국인 자금 흐름과 달러 강세가 진정되지 않는 한 환율 하락 속도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 중반을 이어가고 있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환전소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서울외환시장에서 2.4원 오른 1539.4원으로 출발해 개장 직후 1542.0원까지 올랐다. 2026.6.23 ⓒ 뉴스1 김민지 기자
연준 매파 기조에 달러 초강세…중동 변수도 여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기조가 예상보다 오래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달러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환율은 미국·이란 종전 MOU 체결 소식이 알려진 직후인 15~17일 일시적으로 1510원대로 하락했으나, 이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매파적 신호가 확인되면서 다시 반등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19일 100.99를 기록한 데 이어 전날 한때 101.12까지 오르며 1년 1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 이행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양국은 MOU 체결 이후에도 일부 조항 해석을 놓고 엇갈린 입장을 내놓고 있어 시장의 경계심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란은 동결자산 120억달러 해제가 합의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은 비핵화 이행과 연계된 사안일 뿐 MOU 체결의 대가로 해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문제를 두고도 양측의 입장 차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60일간 진행될 후속 협상 결과 역시 시장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중동 리스크가 다소 완화됐더라도 외국인 자금 흐름과 연준 정책, 달러 강세가 동시에 진정되지 않는 한 환율이 단기간에 안정권으로 복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환율 급등이 원화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엔화 역시 달러당 161엔 안팎의 약세 흐름을 이어가는 등 아시아 주요 통화 전반이 달러 초강세 영향권에 놓여 있다는 설명이다.

ntiger@news1.kr